"저희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SV)는 착한 일,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지속적인 생존과 성장이 목적입니다.”
SK수펙스추구위원회 이형희 SV위원장(사장)은 10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 자체가 성장에 관한 개념”이라며 “박수를 받으며 돈을 벌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과 연결되는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겠다는 취지다. SK에서 20년 가까이 대관(CR) 업무를 담당해온 이 위원장은 올해 초 이 같은 최태원 SK 회장의 꿈을 실현할 총괄 책임자로 선택됐다.
이 위원장은 “지금의 글로벌 룰 세터(rule―setter: 규범과 제도를 설계하는 주체)는 세계적 자본”이라면서 “그들이 지금 ‘사회적 가치’, ‘기업 시민’(포스코가 추구하는 경영이념)과 같은 공공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누가, 이를테면 최태원 회장이 애기한다고 해서 따르는 게 아니다”며 “세계적인 조류 안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그룹의 변화 배경을 설명했다.
SK는 올해 초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안에 있던 ‘사회공헌위원회’를 ‘SV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위원장이 이끄는 SV위원회는 그룹 내 관계사가 창출하는 SV를 수치화해 평가할 지표를 만들고, 이를 핵심성과지표(KPI)에 50% 이상 반영하겠다고 선언해 재계의 관심을 끌었다.
―‘사회적 가치’란 개념이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보면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려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란 구절이 있다. 과거엔 싸고 배부른 빵이 선택을 받았지만 이제는 몸에 좋고 환경에도 좋은 빵이 선택받는 시대다. SK는 이런 시대 변화를 전략에 반영해 좀더 지속가능한 사업 방식을 택하려는 것이다.”
―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달러 수준이다. 아직은 이윤을 더 투자해서 성장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다르다. SV를 추구하는 것이 성장이다. 환경문제, 사회문제는 우리한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규제가 들어올 수 있다. 또 한편으론 남들이 위기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할 때 거기서 큰 시장,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은 가장 기업다운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돈 버는 방법,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SV를 추구하는 것이다.”
―압축성장 시대의 성장전략과는 다른 길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은 아닌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 룰세터가 누구냐. 글로벌 자본들이 큰 권한을 갖고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룰을 만드는 게 아니라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이제는 이런 것(SV 등)에 세계적인 공감대가 생겨버렸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자본의 포식자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그쪽 생각이 바뀐 것인가.
“많이 바뀌었다. 최근 국제사회에선 자본주의가 주주이익만 좇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애플, 페이스북, JP모건 등 200개 미국기업 CEO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지난 8월 ‘포용적 번영’을 강조했다. 이들이 ‘기업의 사명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은 가장 상징적인 변화다. 이윤을 극대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주주 자본주의를 재검토하자는 거다.”
―다른 기업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포스코와 많이 소통하는데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 기관 투자가에게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는 필수적인 고려사항이 됐다. 이 조류에 대응하지 못하면 자본조달은 점점 어렵고, 더 나아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SV는 대세이고, 보편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런 사업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SK 사업 모델이 과연 미래에도 안정적일까. 정유나 석유화학, 정보통신기술(ICT)은 모두 수십년 전 모델이다. ICT만 해도 망을 깔고 트래픽 많이 일으켜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사업 모델이었다. 이젠 아니다. 구글 같은 곳이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들이 망을 까나, 아니다. 그들은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T맵과 동부화재가 협업한 연계상품 보험을 예로 들겠다. SK는 운전자 습관을 알게 되고, 소비자들은 할인 혜택을 받는다. 동부화재는 소비자로부터 이익을 얻고, 국가적으로 보면 사고율이 15% 정도 떨어진다. 어느 지점에 과속, 사고가 많은지 데이터가 쌓인다. 안전은 높아지고 비용은 떨어진다.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데서 돈을 번다면,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어느 누가 반대할 것인가. 여기에 들어가는 기술이 인공지능(AI), IoT(사물인터넷), 센싱, 데이터 처리 등이다. 이런 연구개발(R&D) 지출이 많아지겠지만 이것을 비용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투자를 할 때 어디에 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납세, 고용 등은 기업 본연의 활동이다. 이를 SV로 평가한다는 게 옳은 접근인가.
“SK가 납세, 고용을 SV로 규정한 이유는 이들 가치를 다른 고객 가치와 동일하게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즉 경제적 가치만 측정하는 ‘싱글 보텀 라인’(Single Bottom Line) 관점에서 납세, 고용은 줄여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 보텀 라인’(Double Bottom Line)에서는 납세, 고용을 늘릴 경우 SV가 높아진다.”
―그래서 일자리를 늘렸나. 고용의 질도 중요하다.
“고용은 경직성이 바탕에 깔리기 때문에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우리 그룹의 채용 통계를 보면 정규직 비중이 확대됐다. 전체 채용 면에서도 삼성그룹 다음으로 많이 늘렸다.”
―기업에는 부정적인 요인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매출은 맥시마이즈(Maximize), 비용은 미니마이즈(Minimize), 그래야 이익이 맥스마이징(Maximizing)된다고 하는 판단이 주류였다. 저는 요즘 옵티마이즈(Optimize), 즉 최적화가 맞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매출을 맥시마이즈에 집중하면 부작용이 많다. 주주에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니 단기 실적을 올리고 투자를 줄인다. 장기적 관점을 가진다면 올해 이익이 줄더라도 내년 이익을 더 크게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임기가 정해진 최고경영자(CEO)들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 우리 이익을 늘리는 것과 사회적 압력에 따른 비용의 상관관계를 볼 줄 아는 게 CEO의 능력이라고 본다.”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보면 SK의 SV 경영은 어디쯤 와 있는가.
“이제 서울을 빠져나가는 톨게이트 근처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4월 SK가 출연한 비영리 연구재단이 출범해 공기업 28곳과 평가 지표와 기준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엔 독일 바스프와 손을 잡고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비영리법인을 출범했다. SV 계량화 연구와 글로벌 표준화 작업이 목적이다. 중국 국유자산 관리감독위원회 및 산하 국영기업과도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여태 거기 밖에 못 갔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거다. 이제 계획 수립 단계다. 실행이 됐구나 하려면 최소 3∼4년, 길게는 5∼10년은 걸릴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 작은 건 많이 바뀔 거다. 하지만 그 정도 하려고 회장이 그렇게 얘기하고 그룹에서 이런 조직을 만든 게 아니다. 사업만 놓고 보면 에너지 쪽이 제일 SV와 역행한다. 전환돼야 할 에너지원을 다룬다. 그런 부문을 변화시키기가 가장 힘들 것 같다. 전기차 배터리 같은 걸 하는 게 결국 선제적으로 준비하자는 취지다.”
―SK CR(대관) 업무를 오래 담당했다. 본인 역할은 뭐라고 보는가.
“SK에서 CR는 ‘이해관계자의 기대와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에게 우리가 뜻하는 바를 올바르게 알려 경영에 도움이 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오해하기 쉽고 이해하기 어려운 SK의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알려 신뢰와 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제 스스로의 미션이자 회장께서 바라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담=조남규 산업부장, 정리=조현일 기자
이 위원장은 ●1962년 경북 안동 ●신일고등학교●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SK텔레콤 사업총괄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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