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은 세금 걷는 기관이 아니다.”

취임 1년6개월을 맞은 김영문 관세청장은 거침이 없었다. “취임하기 전까지 관세청의 주된 목표는 ‘신속 통관’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신속 통관이 목적이라면 관세청을 없애 버리면 된다. 수사기관의 존재 목적이 수사이듯이 관세청의 존재 목적은 물류 국경을 수호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39년 만에 검사 출신 청장을 맞은 관세청은 대대적인 혁신 대상이 됐다. 검사 출신 관세청장 등장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김 청장이 취임하자마자 한진그룹 일가의 밀수·탈세 사건, 북한산 석탄 위장 반입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한진그룹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던 통관 담당 국장을 포함해 세관직원 220명이 교체되기도 했다. 김 청장 체제의 관세청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뀌었다. 지난 7일 국회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에서 대기 중이던 김 청장을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랫동안 운용돼온 성과관리평가시스템을 없애 버렸다. 개선해서 활용할 수는 없었나.

“관세청 성과관리시스템(CPM: Customs Performance Management)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CPM은 과거 노무현정부에서 정부업무평가를 도입한 이후 2012년에 관세청이 자체적으로 도입한 시스템인데, 도입 당시에 평가 지표와 방식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매년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 질곡이 생기게 마련이다. 성과관리시스템으로 모든 업무를 지표화하고, 매년 상향되는 기준에 맞춰 성과를 끌어올려야 하니 부작용이 생긴 거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과잉 단속과 추징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업무 성과마다 배점이 정해져 있으니 상대적으로 성과 내기 어려운 큰 사건은 덮어두고, 성과가 보장되는 작은 사건을 여러 건 처리하는 사례도 생겼다. 객관적으로 지표는 좋은데 일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간부나 직원들도 실제 CPM이 폐지될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을 것이다.”

―그럼 업무평가는 어떻게 하나.

“직원들에게 정부업무평가에서 꼴찌를 해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각 세관장들에게 분기별로 기관 운영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 여건에 맞는 혁신과제를 자체적으로 발굴해 추진할 수 있다. 자율성을 높인 것이다. 각 평가 항목마다 점수를 매기지 않지만 세관장의 운영보고서와 직원 관리를 포함한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나중에 결과가 나올 것이고 불만이 있다면 비판을 달게 받겠다. 분명한 것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객관적 기준을 세우고 업무 평가를 한다고 했는데 사실상 객관적 기준이 없었다. 매년 100% 달성되는 평가는 평가가 아니다. 평가 지표가 없어지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조사, 단속으로 실적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법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어떤 성과가 있나.

“사전계도와 예고단속 등 사전 예방 중심으로 업무 초점을 맞추고, 고의적으로 규정을 어기는 사례는 단호하게 단속하고 있다. 자발적인 성실신고세액이 전년 대비 20% 늘었고, 조세 분쟁은 감소했다. 무역 관련 경미 사건은 지난해 360여건에서 100건 가까이 감소했고, 휴대품 자진신고가 지난해 10만건에서 15만건으로 증가했다. 대신 4조4600억원 상당의 재산국외도피·불법외환거래·조직밀수 등 중대범죄를 대거 적발했다.”

 

―내년 관세청의 핵심 추진 과제는 무엇인가.

“수출입 분야에 대한 총력지원이다. 특히 중소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지원하면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전자상거래수출 종합지원대책’이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전 세계 전자상거래 규모가 14%정도다. 전자상거래를 활용한 수출입 거래가 앞으로 무역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가 시장을 선점하려면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하고 배송비용을 줄여야 한다. 반품 절차도 쉽게 이뤄져야 한다. 우선 수출 신고 항목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간소화하려고 한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품이 판매되면 전산을 통해 자동으로 수출신고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개인이나 업체가 물품 보관과 배송, 수출 통관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물류센터도 설립할 계획이다. 반품되는 물품의 재수입 면세 절차도 줄이려고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세청이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관세청이 가진 수출 통계를 가공·분석해 가격 경쟁력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부분도 고민하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반대 입장이었는데.

“입국장 면세점을 관세청이 반대한 이유는 면세점의 본질과 맞지 않아서였다. 면세품은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면세해주는 것인데 입국장 면세점은 이에 맞지 않다. 무엇보다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담배를 2500원에 살 수 있지만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4500원에 사는 소득의 역진성 문제가 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규제혁신 차원에서 정부가 입국장 면세점 도입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관세청 차원에서는 입국장 면세점이 도입되더라도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할 계획이다.”

―해외여행자 휴대품 면세한도(600달러)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면세 한도가 576달러다. 유럽연합(EU) 주요국가도 430유로 정도 수준이다. 다만 해외여행이 보편화하고 정부가 입국장 면세점 시범사업에 착수하기로 했으니 절충안 차원에서 현재 600달러 면세 한도 이외에 별도 면세를 부과하는 술(1병·1리터·400달러), 담배(1보루), 향수(60mL)를 통합해 1000달러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여행자 편의를 높이면서도 조세 형평성 문제와 서비스 수지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한진그룹 일가 밀수 관련 조사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신용카드 해외 구매 내역이다. 직원들도 물건을 옮겼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입증이 어렵다. 우리는 전담 수사팀을 편성해서 100명 넘게 소환조사하며 수사했다. 수사기록만 7000페이지에 달한다. 그럼에도 수사 결과가 국민들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할까 우려된다. 미흡한 부분에 대해 비판받을 것은 받겠다.”

―수사 대상인 한진그룹 일가(조양호 한진회장 부인인 이명희씨와 자녀인 현아,현민,원태씨) 모두 검찰에 송치되는가.

“일부는 송치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구속영장이 반려된 조현아씨에 대해서는 영장을 재신청하지 않을 계획이다.”

―관세청의 수사권 확보 문제는 검찰과 잘 협의되고 있나.

“잘될 것이라고 본다. 관세법이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범을 수사하다보면 횡령이나 사기 사건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관세법 위반은 성립하지 않고, 횡령이나 사기에만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관세청은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그대로 검찰에 넘겨야 하는데 검찰은 처음부터 다시 수사해야 한다. 기왕에 사안을 잘 알고 있는 관세청이 수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관세청이 북한산 석탄 위장반입 사건에 늑장, 부실 대응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사건 수사에 대해 확인 요청이 왔을 때 정부가 ‘노코멘트’로 대응을 했다. 정보 제공 국가에서 밝히지 말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 때문에 언론과 국회에서 확인이 왔을 때 ‘북한산 석탄이 들어왔다는 정보를 받았고, 관세청이 수사하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가 북한을 비호하고 은닉하고 있다는 의혹이 확대 됐다.”

―이 사건 피의자가 해외의 제3자에게 석탄 대금을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것인가.

“그 부분은 제3자를 조사해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제3자를 조사할 권한이 있는 나라가 적극적이지 않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추가로 드러난 북한산 석탄 위장반입 건도 다른 국가에서 정보를 제공받은 건인가.

“우리가 직접 인지해서 하는 수사다. 북한산 석탄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곧 수사결과를 발표할 거다. 국회에서는 러시아산 석탄을 다 조사하라고 하는데, 몇 십만건을 다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해도 서류가 위조가 돼 있으면 밝혀내기가 어렵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박영준 기자

 


 
김영문 청장은 △경남 울산(1964년) △경남고·서울대 법학과 △사법고시 34회 △대구·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검사 △법무부 법질서선진화 과장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장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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