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가 열리면서 저축은행의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저축은행의 존재 이유가 뭔가.
“당장 급한 사람을 도와주는 빠른 서비스다. 예를 들면 모두가 서울대병원이 좋은 것을 알지만 바로 진료를 받지는 못한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죽는 것보다는 가까운 병원에서 우선 응급치료를 받는 게 낫다. 기업이나 서민이 은행에 가면 지점장, 본점 심사 거쳐야 대출을 받는다. 그거 기다리다 다 죽는다. 그 공백을 저축은행이 채워 준다.”
-사람들은 저축은행 하면 흔히 고리대출을 떠올린다. 드라마 등 각 매체에서도 저축은행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저축은행 중 괜찮은 회사는 대출금리가 은행보다 1∼2% 높은 정도다. 어떤 곳은 은행과 금리가 비슷한 데도 있다. 저축은행 차원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포용적 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약 21개사가 38개 중금리 상품을 출시해 판매하며 시장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우리은행, DGB대구은행, Sh수협은행 등과 연계대출 업무협약을 맺어 대다수 저축은행에서 은행권 대출심사에서 아쉽게 거절된 고객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런 연계대출은 부실률이 은행과 비슷하다.”
-저축은행이 고객을 상대하면서 유의해야 할 부분은 뭔가.
“돈 버는 데 혈안이 돼서는 안 된다. 저축은행 간판만 보고도 눈물이 나는 고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얼마 전에 지방에 갔다가 ‘나는 ○○은행 마크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는 사람을 만났다. 모두가 외면할 때 자신을 믿고 5000만원을 빌려준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가는 곳마다 그 은행을 홍보한다. 저축은행들도 그렇게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주는 고객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요즘처럼 저축은행 이익이 괜찮을 때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문 중에 최고가 입소문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당시 사태가 남긴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객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리정보는 물론 각종 경영정보 등을 수시로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저축은행 소비자 포털 구축도 준비하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예금보험공사 기준에 맞춰 꾸준히 건전성을 강화해 왔다. 업계에서는 자기자본비율은 8% 이상, 고정이하여신비율은 8% 이하를 안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올해 2분기 기준 국내 저축은행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14.3%로 지방은행의 평균(15.3%)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도 하락해 6%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은 주로 고령층이 이용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지점을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데다 모바일 환경이 익숙한 20~40대에는 비대면 거래시스템이 타업권에 비해 발달하지 않은 저축은행이 그렇게 비쳐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 업계에서 모바일뱅킹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공동 모바일금융 애플리케이션(앱)인 SB톡톡 등을 출시하는 등의 노력으로 젊은층 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전체 이용자 중 20~30대가 70%를 차지한다.”
-한편으론 비대면 채널 강화가 고령층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점을 통한 대면영업 강화와 혁신적인 디지털화를 통한 비대면 채널의 강화, 사실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금융환경의 중심이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모바일 플랫폼 발전에도 애쓰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업계는 오프라인 지점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며 고객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신뢰관계를 이어가며 ‘관계형 금융’의 묘를 이어가는 것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재무·신용등급 등 정량적 정보뿐만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현장을 발로 뛰면서 확인했을 때 얻은 정성적인 지표 역시 고객과의 거래에서 중요한 요소다.”
-최고금리 인하 이후 저신용자가 저축은행에서도 밀려나 사채로 내몰리지는 않았나.
“7등급 이하 저신용자 대출비중이 인하 직전보다 소폭 하락한 측면이 있지만 꼭 최고금리 인하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국내외 경제상황, 가계부채 문제, 저축은행 영업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대출원가 절감을 통해 금리 인하로 인한 영향을 흡수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만 고객에게 부실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보다 높은 EL(기대손실)을 지닌 저신용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는 있다. 저신용 서민의 높은 금리는 높은 손실률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혁신이 화두다. 저축은행의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없는가.
“핀테크 발달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 비율을 맞추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에 대해서는 서민금융 확대 차원에서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비율의 예외를 인정한다든지,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비율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저축은행에는 별도의 규제 예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저축은행의 규제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드사, 인터넷은행까지 뛰어든 중금리 시장에서 저축은행의 비교우위는 무엇인가.
“그간 저축은행만이 축적할 수 있었던 서민대출 관련 데이터들이다. 현재 저축은행은 2012년부터 햇살론, 사잇돌대출 등 다양한 서민금융상품을 취급하면서 쌓은 현장경험과 상품운영결과에 대한 데이터들을 신용평가시스템에 접목하는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보증보험에서도 사잇돌대출 관련 소득수준, 근속연수, 연체정보 등을 저축은행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종합적 데이터들이 머신러닝으로 정밀 분석된다면 타업권과 비교했을 때보다 정교한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축은행의 예금보험료율이 과거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불거졌던 2011년 0.4%로 책정된 이후 멈춰 있다. 은행(0.08%), 보험·증권(0.15%) 등 타 금융사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회원 저축은행들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도 내려가지 않는 예보료율이다. 그동안 저축은행들의 자본건전성과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는데 같은 예보료율을 적용받는 것은 죽은 자의 짐을 산 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우리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칭찬을 좀 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신이 나서 더 잘할 수 있을 텐데….”(웃음)
“당국에서는 저축은행의 자금세탁방지 능력 부족을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그간 관련 제도 이행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온 우리 업계로서는 정말 당혹스럽다. 그동안 저축은행은 타업권과 동일한 수준으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충실하게 준수해 왔기 때문이다. 2015년에는 외부 컨설팅을 통해 내부통제 체제를 정비하고 관련 시스템을 고도화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권고하는 위험기반(RBA) 자금세탁방지체계 구축도 진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금융업의 춘추전국시대다. 저축은행의 혁신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저축은행이 과거의 과오로 인해 여전히 타 금융업에 비해 많은 규제부담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가)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고 시대에 맞게 바뀌지 않은 규제들을 일시에 풀고,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축은행의 경쟁력이 커지고 경영환경이 더욱 좋아져야만 결국 서민금융생활 지원이라는 저축은행 본연의 역할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려면 예대마진 위주의 단순 수익구조를 탈피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과거의 멍에를 벗겨줄 필요가 있다. 문제가 우려된다면 위반 페널티를 강화하면 되지 않나.”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김라윤 기자 ryk@segye.com
△경북 경주(1950년생) △대구고, 성균관대 법학과 △1977년 상업은행 입행 △1999년 한빛은행 인사부장 △2002년 우리은행 기업금융단장 △2008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2011년 우리은행장 △2013년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 △2014년 12월 우리카드 고문 △2015년 제17대 저축은행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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