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사회안전망’으로 불리는 보험 산업이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각종 규제 속에서 새 먹거리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해외 시장은 낯설고 2021년부터 도입되는 새로운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은 보험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대미문의 위기다. 4차혁명의 진전, ‘문재인케어’(문재인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등이 몰고 올 보험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는 보험사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보험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손해보험협회를 이끌게 된 김용덕 손보협회장은 “보험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소비자 신뢰회복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보험업계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보험사들이 과거의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인 보험 소비자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손해보험협회 회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문재인케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3800개 비급여 항목(의료 치료비에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치료)의 급여화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비급여 의료에 있다는 문제의식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전의 정책들처럼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에 그치지 않고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의 완전한 해소’로 접근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했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차질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 대상이 늘어나면 실손의료보험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보험료를 내리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문재인케어 시행으로 얼마만한 반사이익을 얻게 되는지를 우선 평가해야 한다. 현재 중립적인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결과가 나오면 합리적인 접점을 찾겠다. 다음달에 유병자 실손보험이 나온다. 앞으로 고령자 전용 실손보험을 확대하는 등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손보업계는 그동안 실손보험 적자를 이유로 문재인케어 시행 여부에 관계없이 보험료 인하는 어려우며 보험료 인하에 앞서 병원의 과잉진료와 보험사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실손보험료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받아서 보험사에 일일이 팩스로 넣어주고 있다.

“현재 실손보험 청구절차는 복잡해서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를 위한 진료서류를 보험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행법령 개선이 필요하고 의료기관과 보험사 간 전송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지금도 일부 보험사는 개별적으로 병원과 협약을 맺고 자동으로 보험료가 청구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더 많은 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환자들이 원하는데 병원에서는 왜 안 해주나.

“의료 정보가 공개되길 꺼린다. 자기공명영상(MRI) 사진만 해도 병원끼리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는데도 이 사진을 다른 병원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도 방향은 맞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의료계는 비의료기관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의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보험업계로서는 이 서비스를 활용한 상품 개발이 필요하지 않나.

“우리는 민간회사가 개인이나 가정에서 활용되는 기기를 부착해 콜레스테롤, 혈압, 체지방을 측정하는 행위도 의료행위로 판단한다. 그렇다보니 정보통신기술(ICT), 웨어러블 기기 등을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도 이런 서비스가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 선진국처럼 이런 서비스가 허용되면 보험사는 건강관리를 잘하는 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려줄 수 있다. 보험 가입자는 웨어러블 기기로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게 되니 전체적으로 국민건강이 증진되고 의료비용이 줄어든다. 다행히 지난달 새로운 헬스케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의료법상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민관 합동 법령해석팀을 신설해 그런 상품과 서비스가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저촉되는지를 신속히 판단하도록 했다. 일단 한발짝 진전됐다.”

-IFRS17 시행을 앞두고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지금은 보험부채를 원가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IFRS17 체제에서는 시가평가제도로 바뀐다. 그러면 보험사들의 부채규모가 훨씬 커진다. 그렇게 되면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RBC비율·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을 높이기 위해 자본금을 더 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험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내 보험건전성 감독기준인 한국형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나온 것이다. IFRS17 시행 전에 자본금을 충분히 쌓으라는 취지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제도이고 단기간에 자본금을 확 늘리려면 여러 무리가 따른다. 기준 바뀐다고 건전한 회사가 부실한 회사로 전락하면 문제가 있다.(국내 손해보험사 평균 RBC비율은 2017년 9월 기준 250.19%로 양호한 상태다.) 적응 기간을 둬서 새로운 제도가 소프트 랜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보험사의 건전성은 강화하되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감독당국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는 보험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감독당국에 건의하고 IFRS17과 K-ICS가 연착륙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혁신기술들이 출현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기술이 발전하거나 사회가 발전하면 새로운 위험이 등장한다. AI나 자율주행, 드론,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과거에 없던 위험이 생겨난다. 사회 전체를 생태계로 본다면 미래의 손해보험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의 사이사이를 메우며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위험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보험 업무의 각 단계에서 빅데이터 등 발전된 기술을 도입해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사고 시 자동차 결함인지, 시스템 결함인지를 놓고 분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나 시스템 개발 업체 모두 보험을 들어야 한다. 사회,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장 영역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조금 앞서가고 있는 선진국 시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0일 미국에서 콜택시앱 우버의 시험주행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3월 20일 추가 질문)

“자율주행차 산업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제도적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험상품도 보험 본연의 역할인 피해자 보호에 빈틈이 없도록 변화하여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관련 제도나 법규도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시장도 보험사의 새로운 먹거리다.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에서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실력이 되나.

“실력을 다 갖추고 나가면 언제 나가겠나.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가서 진출하고 실패하면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고 가야 한다. 우리 금융권은 국제화 수준이 낮다는 것이 큰 제약 요인이다. TNI(Transnationality Index·초국적 지수)라는 게 있다. 금융회사들의 해외영업 이익, 해외 직원 수 등을 지수화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4∼5%에 머문다. 금융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 영국, 미국은 우리보다 10배에서 20배 정도다.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우리 금융도 세계화 전략을 세워서 나가야 한다. 우리 금융은 국내 비즈니스만 하고 있다. 은행, 카드, 보험, 증권 다 똑같다. 근래 들어 조금씩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고 있는데 관련 보험상품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려동물 인구가 2015년 기준으로 약 457만명에 이른다. 지금은 반려동물에 대한 동물병원 수가 같은 것들이 제대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공개가 안 되고 있어 반려동물 보험 발달이 더딘 상태다. 반려동물 등록이 제대로 안 돼 있는 탓도 있다. 반려동물 산업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야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도 관심을 갖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는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공시하는 등 새로운 보험상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

정리=백소용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김용덕 손해보험협회 회장은


●1950년 전북 정읍 출생 ●용산고 ●고려대 경영학과 ●행시 15회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부 국제담당 차관보 ●관세청장 ●건설교통부 차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고려대 경영대 초빙교수


 

●IFRS17
2021년 1월 1일 시행되는 새로운 국제보험회계기준으로,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보험사는 최초 보험 계약 시 계산에 따라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할 보험금을 준비하면 됐지만, IFRS17이 시행되면 현재 시장금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대량 판매한 보험사들은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는 훨씬 많은 적립금을 쌓아야 한다.

●K-ICS
IFRS17 도입에 따라 현행 지급여력비율(RBC비율) 기준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급여력제도이다.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건전성 지표로,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눠서 계산한다. 보험업법에서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당국은 150% 이상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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