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이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성공을 도울 수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2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번 정부가 표방한 창업부터 혁신성장,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 성장, 이런 맥락의 핵심에 모험자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모험자본 활성화의 주체는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아닌 벤처, 증권회사가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자산운용허브’의 기치를 내걸었다. 노무현정부가 주창했던 ‘동북아 금융허브’를 발전적으로 계승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면밀한 투자 전략과 신뢰 구축을 통해 한국에서도 금융의 삼성전자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금융투자업이 문재인정부의 혁신성장을 추동하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금융투자업계는 뭘 원하는가. 

“정부와 국회가 과감히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 하나가 기업금융 한도를 늘려주는 것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는 증권사의 기업금융 한도를 확대(증권사 자기자본 100%→200%)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박근혜정부에서 발의돼 정무위 법안심사소위까지 통과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로 바뀌면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이 법안은 사실 문재인정부가 주창한 ‘생산적 금융’ 기조에 부합하는 것이다. 최종구 신임 금융위원장의 취임사 화두가 그것이다. 이제 금융이 가계대출 같은 비생산적 분야 대신 벤처, 중소기업처럼 새로운 성장동력,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에 돈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본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투자업계는 모험자본 활성화, 증권화를 통한 유동자금 흡수방안 등 다른 금융업권이 할 수 없는 생산적 금융분야를 고민하고 있다. 증권사의 기업금융 한도 확대도 그 일환이다. 그렇다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도와줘야 하는 게 맞는데 오히려 여당의 동력을 못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법안을 여당이 왜 반대하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 정부 기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빨리 하자고 해야 할 판인데 집권 여당에서 반대하니 황당하다. 증권사 기업금융 가운데 90%가 신용이 낮은 A등급 이하 기업용 대출이나 채권 인수다. 중견 기업 이하 기업에 대출이 나갔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정부가 원하는 것 아닌가. 증권회사는 대기업과 거래하는 은행과 경쟁할 수 없다. 은행과 우리는 노는 물이 다르다. 은행처럼 부동산 대출하기 위해 신용공여 한도를 늘려 달라는 것도 아니다. 기업 대출도 중소기업으로 제한하라고 하면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에게 새 정부를 도울 수 있는 ‘총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은행이나 보험업에 비해 금융투자업이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얘기해 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추석 연휴 이후에 그런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증권사 균형발전 100대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 증권사도 법인 지급결제, 외환거래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보험은 10년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비과세인데 펀드와 주식은 안 된다. 이런 게 국내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해외 금융투자업과의 관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도 존재한다. 홍콩, 싱가포르, 런던에서는 증권사들이 다 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예 못하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회사 간 합병 가격을 법에 명시하고 있는 규제다. 문제가 됐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건만 해도 기업은 법을 준수했지만 당시 합병비율이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았다.” 

-올가을엔 초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한다.  

“10월이면 초대형 IB 지정, 단기금융업 인가가 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증권회사 다 합쳐도 자기자본금이 48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10조원, 중국의 중신증권도 50조원에 달한다. 증권회사가 큰 프로젝트, 국제적인 인수금융 업무를 하려면 어느 정도 덩치가 있어야 한다. 자본금이 크고 덩치가 크면 위상도 신뢰수준도 올라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KB금융이 전 계열사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행사 지침)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민연금도 적극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핵심은 국민연금이다. 일본 정부연금투자펀드(GPIF)는 우리의 국민연금 같은 조직이다. 운용액이 1500조원 규모다. GPIF가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면 정부 의도대로 연금을 사용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다. 그래서 GPIF는 국내 주식투자를 전부 펀드 방식으로 아웃소싱한다. 현명한 방법이다.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다. 펀드 내 주식 의결권은 자산운용사가 행사한다. 일본처럼 하면 국민연금 이사장이나 기금운용본부장이 감옥 갈 일이 없다. 우리 국민연금도 의결권행사를 과감히 100% 아웃소싱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행사자 대신 감독자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노무현정부 당시만 해도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 펼쳐지면서 자본시장이 들썩들썩했다. 지금은 흐지부지된 느낌이다.  

“노무현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 금융허브는 미국이나 영국, 홍콩처럼 외환, 파생, 상품시장 등 모든 금융업권을 아우르는 금융중심지가 되겠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그 구상은 성과 없이 좌초됐고 오히려 주요 외국계 증권사가 철수하면서 금융허브로서 위상이 더 떨어졌다.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보다 섬세하고 과감한 금융 허브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펀드 시장이 1000조원을 넘어서는 시대가 됐다. 1500조원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수치다. 전문사모운용사 100개가 새로 생겼다. 재야의 고수들이 운용사로 들어오면서 시장도 커지고 상품도 다양해졌다. 자산운용업은 상전벽해에 가까운 변화다. 펀드 백가쟁명의 시대에 진입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시아권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운용업 시장이 될 것이다. 은행은 세계적으로 속지성이 강하지만 자산운용업은 속지성이 별로 없다. 누가 돈을 잘 운용하다고 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찾게 된다. 일본도 저금리가 지속되니까 기관, 개인이 못 견디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홍콩이 갈수록 중국화하고 있다. 중국이 패권국가화하면서 홍콩이 불안해한다. 홍콩에 들어가 있던 돈을 유치할 수 있다. 외국돈 1000조원 정도 들어와 있으면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에도 수천조원 규모의 돈이 들어가 있다.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온화한 기후, 우수한 치안 등 우리 입지가 더 좋다.”  

 


-감나무에서 저절로 감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글로벌 투자회사를 유치하려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법인세율이나 개인소득세율을 경쟁국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 투자자들의 근무여건도 중요하다. 자녀를 위한 국제학교, 배우자 취업기회 보장 같은 지원책이 필요하다.”  

―취임 직후 ‘황영기가 전사하든 자본시장이 바뀌든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에 대한 규제혁파는 처음 생각했던 것의 반도 다 못했다. 이유가 있다. 증권회사는 은행이 견제한다. 증권사 쪽에서 법인지급 결제, 외환업무 취급, 융자한도 증가 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취임 3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그대로다.” 

 


-코스피가 2007년 7월 2000선에 도달한 뒤 10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코스피 3000, 5000선 시대는 꿈에 불과한가. 

“북한 핵 문제와 정부의 경제정책 불확실성을 제외한다면 지금 증시 여건은 굉장히 좋다. 북핵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없다.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은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기업 경영 간섭에 신중해야 한다. 정부가 급하다 보니 기업들이 불안감을 토로한다. 경제정책에 불확실성이 있다 보니 기업은 투자와 고용에서 몸을 사린다. 삼성전자 착시효과를 없애고 나면 과연 기업들이 활발하게 재투자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인들을 만나 보면 걱정부터 한다. 주가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기업실적과 지배구조개선을 통해서 코스피 3000선으로 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4000, 5000선으로 가려면 신종 사업, 알리바바와 같은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와야 할 것이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약력 
 
●서울대 무역학과, 런던 경제학스쿨(LSE) 석사●미국 뱅커스 트러스트 아시아담당 부사장●삼성투자신탁운용 대표●삼성증권 대표●우리금융회장 겸 우리은행장●KB금융지주 초대회장●차병원그룹 총괄부회장●법무법인 세종 고문●금융투자협회 공익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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