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매일 수없이 많은 통계를 접하며 살아간다. 통계를 바탕으로 정치인은 공약을 만들고 정부는 정책을 추진한다. 통계가 잘못되면 우리 사회가 길을 잃는다. 마크 트웨인의 독설에도 정확한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계청 직원들이다. 지난 17일 통계청장 집무실에서 만난 유경준 통계청장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촘촘하고 튼튼한 사회안전망”이라면서 “이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비롯해 삶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경준 통계청장이 지난 17일 통계청장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비롯해 삶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통계청이 최근 한국 삶의질 학회와 공동으로 발표한 ‘삶의 질 종합지수’가 세간의 화제다.

“사회 발전상을 드러내는 지표로 흔히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사용된다. 하지만 ‘먹고사는 생존문제’가 일단 극복되면 삶에서 양적지표보다 질적인 측면의 중요도가 올라간다. GDP라는 하나의 지표만으로는 한국의 발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사회발전상을 드러낼 수 있는 보완지표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컨대 경제개발하면 환경은 파괴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종합적으로 보는 환경계정도 필요하다. 위성을 통해서 환경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닌가. 이를 통해 GDP의 맹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에 더해 공유 경제, 인터넷 경제 등 경제가 발전하면서 GDP에는 반영이 안되는 경제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이 GDP에 보완되지 않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이를 현실에 맞게 잘 보완해서 GDP가 국민총생산을 잘 대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삶의 질 지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개발 지표만 80개였는데 진도가 안나갔다. 개별 지표를 발표해도 사람들의 반응이 없었다.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대중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사회적 컨센서스를 확보할 수 있고 좋은 지표를 만들 수 있다. 여튼 이번에 발표된 삶의 질 지표로 확인됐듯이 최근 10년간 우리 GDP는 29% 올랐지만 삶의 질은 12% 남짓 올랐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삶의 질 지표가 공개된 후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분야가 어디인지, 국민들이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무엇을 요구하는지, 도대체 어떤 정책을 도입해야 국민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삶의 질 지표를 개선하려면 학계와 시민사회의 동참이 필요하다. 이를 유도하려고 이번에 지표를 발표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질을 대변하는 지표가 이런 것이다, 라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일어나는 것인데 이런 것이 공표됨으로써 가능해진다. 지표가 총 80개니까 앞으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뺄건 빼고 넣을 건 넣겠다.”

―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표 중에 뭐가 빠졌나.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삶의 질 측정 부분에서 논란이 많아 빠졌다. 고용의 질 지표의 측정 도구로 비정규직 비율을 넣는 데 대한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고 다른 나라는 임시직(temporary worker)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발적으로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이들을 모두 비정규직 비율에 포함시켜 추산하는 것은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10% 빼고는 모두 삶의 질이 나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고용의 질을 가장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 이번에 발표된 삶의 질 지표 가운데 일부는 국민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사회부장 시절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주제로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 적이 있다. 교육 관련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삶이 질 지표 교육 부문에서 한국인의 삶의 질이 가장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교육 부문은 강남 3구 같은 특정지역이 명문대를 독식하고 있지 않나.

“청년 실업 증가 등으로 주관적으로 느끼는 교육 효과는 떨어졌을 수 있겠지만 객관적인 지표상으로는 고등교육 이수율, 유치원 취학률, 취업률 등이 올라가서 좋아진 것이다. 교육 부문 종합지수는 2015년 123.9로 2006년(100)보다 23.9% 상승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사다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공유한다는 것을 느꼈다. 통계청에서도 교육 불평등에 대한 통계가 교육의 질 평가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강남 3구의 명문대 독식같은) 교육 불평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모세대부터 자식세대에 이르는 20년 이상의 시계열 자료가 축적돼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소득 몇분위였는데 아들은 몇분위로 바뀌었는지 등의 자료가 현재는 없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이동성 평가지표가 없는 셈이다. 10년 정도의 추이는 주관적으로 물어본 자료가 있긴하다. 이에 따르면 계층 하락세가 보인다. 실제로 계층간 이동 관련 통계는 꼭 구축해야 한다고 내가 부임하면서부터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다. 준비 작업 중이나 당장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삶의 질 지표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지표를 보완해 나가겠다.” 

― 교육청의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초중고 사교육비가 49만원밖에 안된다. 비현실적이다.

"사교육을 아예 안하거나 자녀가 없는 가구까지 포함돼 평균값이 매겨졌기 때문이다. 전 가구 평균이다. 자녀가 있는, 사교육을 하는 가구 통계도 별도로 있다. 이 통계도 같이 보도해야 한다."

― 사교육비 관련 설문 조사는 정확한가.

"고소득층이 실제 지출보다 적게 응답할 확률은 잇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원에서 자료를 받는다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 다른 부처에서 자료 협조 요청에 잘 응하고 있나.

"인식은 많이 좋아졌는데 아직도 문제는 있다. 일단 개인정보보호법 문제 때문에 자료 제공하고 피해볼까봐 조심한다. 관련 법을 개정해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아까 말한 자료를 받는 것도 7년 걸렸다. 또 부처마다 답변 형식이 모두 다르다. 주소 기입 방법도 제각각이다. 이걸 다 통일했다. 안 주려는 자료도 통계청 사망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설득해서 받으려 하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공공행정자료는 빅데이터의 보고다. 개인정보는 활용 과정에서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연구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분명한 제한 속에, 그리고 사적으로 유용했을 때 엄격한 처벌 장치를 마련해놓고 관련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들을 개발할 수 있다."

― 더 좋은 통계를 만들기위해 어느 부처 정보가 가장 필요한가.

"역점적으로 노력한 게 국세청 자료를 받은 문제였다. 소득, 기업매출, 이익 등의 정보가 국세청에 있는데 꾸준히 설득해서 많은 자료를 받고 있다. 금융관련법 때문에 처음에는 협조를 받는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원활하게 잘되고 있는 편이다. 국세청에서 기업총조사라고 해서 매출액, 영업이익을 매년 수집하고 있는데 통계청에서 이 자료를 못받고 있다가 설득해서 받았다. 100억 정도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사실 통계청도 별도로 기업 매출 등을 조사하러 나가는데 설문에 대한 응답 의지가 약하다. 2021년부터는 기업총조사도 인구총조사처럼 등록 센서스 방식으로 갈 것이다. 전 국민의 소득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기업등록부를 통계청이 작성하기 시작했다. 통계청, 국세청이 각각 기업 자료를 작성하는데 통계청의 한계는 실체가 있는 회사와 업체의 매출만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사업자 등록을 돼있지만 실체가 없어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영역이 넓게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인터넷 쇼핑 등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것을 포함할 수 없는 게 한계였다. 그 자료가 국세청에는 있다. 그걸 받아서 기업등록부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통계청 자료도 국세청에 제공해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등록이 안된 영세 업체 자료는 우리가 국세청에 제공해서 탈세 영역을 줄인다."

취업률 통계를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취업 시장으로 너도 나도 많이 나오니까 실업률이 오르긴 한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경제활동 참가가 활발해져서 취업률, 고용률도 꾸준히 올랐다. 물론 실업률이 더 많이 올라서 체감되는게 안 좋은 것이다."

― 고용·임금 부문 종합지수(103.2)도 다소 나아진 것으로 나왔다. 비정규직 비율 등을 포함한 ‘고용의 질’이 제대로 평가된 것인가. 

“비정규직 비율 증가를 고용의 질 악화로 단순 등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식으로 단순화하기 시작하면 대기업 정규직 10%를 빼고는 모두 불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또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의 형태 역시 다양화한다. 고용의 질을 가장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취임 후 업적 중 하나가 각 부처에서 자료를 받아 통계작업 효율화를 꾀한 것이라고 본다.

"13개 기관, 24개 부처의 자료를 받아서 전수조사 형태의 인구 센서스 조사를 효율화시킨 것이 큰 역점 사업이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가 일일이 묻고 질문해야 하던 인구 센서스 전수 조사 형태의 설문을 각종 부처에서 받은 행정 자료를 이용해 간소화, 효율화했다. 13개 기관, 24개 부처의 기초자료를 융복합했는데 행안부, 국세청,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에서 기초자료를 수집해서 2015년 등록 센서스로 전환했다. 7년 동안 각 기관들을 설득해서 정보를 수집한 결과, 이제는 기초 항목은 통계청이 설문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서 추가적인 설문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설문 조사 비용이 절반 정도 절감돼서 1450억원 가량 줄었다. 2015년 히트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전 국민의 20%를 조사하게 됐는데 이 정도 표본을 잡고하면 정확도는 99%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이 많은 세대가 출생 신고를 늦게한 경우가 많았고 언니 이름으로 사는 사람, 부인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발견됐다."

 

― 소득·소비 부문 종합지수(116.5)도 삶의 질이 개선된 부문 순서에서 상위 랭킹 3위 안에 들었다. 소득 불평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했는데 선뜻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0에 가까우면 평등하고 1에 가까우면 불평등)는 불충분한 지수다. 지금은 가구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하고 있다.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의 개인 금융소득 자료 등을 활용해 소득통계를 보완해야 불평등 정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이런 방식으로 산정한 ‘신(新)지니계수’는 오는 12월 나온다.)” 

―우리나라 분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2015년까지는 저소득층에 대한 공적 이전소득이 증가한 덕분에 소득분배가 개선됐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불평등 수준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추세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소득분배가 악화했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갈수록 더 증가하는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빈곤 노인들이 많아졌다. 노인들에게 일괄적으로 주었던 기초연금의 기저효과가 사라진 것도 소득분배가 나빠진 한 요인이다. 노인은 계속 유입되고 청년 실업률도 악화일로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분자, 분모로 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니계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원래 높기도 하지만 조사가 촘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도 지니계수가 높은 수준이다. 우리가 영미식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꼭 짚어서 필요한 것 위주로 하다보니 소득 불평등도가 높은 국가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세계 몇 등이라는 식의 비교는 위험하다. 지금은 현금 급여만 소득계정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선진국일수록 사회적 현물 형태로 복지 지원을 많이 한다. 보육료나 노인들의 무료 지하철 이용 등이 모두 사회적 현물 제공이다. 현물 지원까지 통계에 포함시키면 소득분배율이 더 개선될 것이다. 지니계수를 15% 이상 개선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2015년 지니계수는 0.295였다. 2016년 지니계수(오는 5월 발표)는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달 발표된 2016년 4분기 가계동향에서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반면 소득 5분위(상위 20%) 소득은 늘었다. 이런 지표가 추세를 반영한다고 본다.”

― 0.30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나.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그럴 것으로 본다.” 
 
―지니계수가 오는 12월부터 바뀐다는데.
"아니다. 12월부터 나오는 것은 맞는데 기존에 있는 것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63년 동안 해오던 거라 과도기가 필요하다. 다만 2011년부터 나온 신 지니지수를 행정자료를 보완해서 좀 더 정교하게 하겠다는 수준으로 이해해 달라. 가계동향조사를 63년간 해왔는데 8700 가구에 매월 가계부를 보내달라고 해서 매월 소비지출소득을 조사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지니까 답변을 안하기 시작했다. 회수율이 75% 정도인데 고소득이 몰려있는 강남구는 50%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펏 2010년부터 1년에 한번 하는 걸로 바꿔서 응답율을 80~90%로 높였다. 고소득층은 샘플을 더 많이 잡아서 통계 왜곡을 교정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이에 더해 행정자료를 이용해서 개인 금융소득 등 사람들이 대답하기 꺼려하는 부분까지 반영하려고 한다. 오는 10월에 금융자료를 받아서 이를 반영한 지표를 12월에 내놓는다."


 
 

 

― 대선 주자들마다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통계청장으로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 국민에 대한 정확한 소득 파악이다. 병을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우리 국민 48%가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 이들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누가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취약층의 복지를 위해 개별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를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복지를 제공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국민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고용보험만 해도 전체 취업자 3분의 1 정도가 미가입 상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실직이라도 하면 당장 낭떠러지행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누가 얼마나 빈곤하고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회안전망 보완은 노동유연성 제고하고도 관련이 있다. 노동시장 유연하게한다고 하면 대기업과 공기업 측에서 바로 해고 촉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공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해고돼도 고용보험 등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다. 하지만 고용보험에서 빠져있는 사람은 정말 문제다. 정작 보호돼야할 사람들은 고용보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시스템 안으로 전부 포함시켜야 노동시장이 유연화돼도 충격이 덜할 수 있다. 해고돼도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을 정상적으로 받으며 부활의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지금 노동 유연화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안전망 잘돼있다. 사회안전망은 노인빈곤도 포함한다. 세율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차등 지급하는 것이 좋다. 차등 지급의 기본이 소득 파악이다. 그게 안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통계청이 그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일단 임금 근로자부터 데이터베이스 구축 중이고 그 다음이 자영업자다. 그건 우리가 기업총조사하니까 매출액 등을 근거로 추정이 가능하다.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 등을 이용해서 일용노동자 소득도 다양한 추계 방식을 동원해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일부 대선주자가 공약으로 제시한 ‘기본소득’ 지원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보나.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주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얼마나 줄지를 알려면 소득 파악부터 해야하는게 맞지 않겠나.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소득세를 안낸다. 지금 기본소득 논의가 오가는 나라들은 이미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는 상태이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산업안전망이 잘 되어 있는 국가에서 근로의욕 감퇴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추가로 일하게 하도록 주자는 것인데 한국은 사회안전망부터가 부실핟. 게다가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조차 부분적으로 시행한 후에 일단 효과를 보고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1만명씩 기본소득 주는 집단과 안 주는 집단 비교해서 돈 받은 후 근로의욕 감퇴 여부를 가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지 않은가. 누가 얼마나 가난한지부터 정확히 알고 이왕이면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통계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국세청과의 협업을 통한 ‘기업 등록부’ 작성을 제1의 과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등록부는 전 국민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만 정작 실체가 없어 소득 파악이 되지 않았던 기업에 대한 정보를 국세청에서 넘겨받아 통계청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와 합치고 있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다른 부처의 협조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소득 파악은 능력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부자 증세’든 복지 정책이든 임금 근로자부터 각종 자영업자까지 정확한 소득 파악이 가능해져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래야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할 수 있고 저소득자에게는 데이터에 근거한 차등화된 지원을 할 수 있다. 세수확보에서 ‘세율’을 생각하기 이전에 넓은 ‘세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48%가 세금을 안내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 이전에 소득파악 시도 없었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위한 소득파악위원회까지 있었다. 소득이 정확히 파악되면 고용보험공단, 산재보험공단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한군데서 파악하고 같이 징수하면 된다. 그렇게 통합 공단만들어서 국세청 밑에 두려했는데 공단의 반발이 심했다. 구조조정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투명한 정부다. 고소득자에게 많이 받고 저소득자는 지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넓은 세원이 필요하다."


― 정확한 데이터가 좋은 정책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데 동의한다. 

“통계 데이터도 일종의 공공재라 시장에만 맡기면 과소 생산된다. 유료이던 통계자료들이 정책수립과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2015년 말부터 모두 무료로 전환했다. 2016년 마이크로데이터 이용건수는 3만1654건으로 전년(1만4398건)에 비해 2.2배 증가했다. 현재는 지난 1월1일 기준 통계청과 타 기관 자료 총 266종을 수집해 93종을 서비스하고 있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김라윤 기자

 
유경준 통계청장 
 
●1961년 서울 출생●부산 해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관●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재정·복지부장●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제15대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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