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의료비나 약제비 등을 적절하게 청구했는지를 평가하는 기관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행위는 2만개, 사용되는 약은 2만5000종에 달한다. 어떤 의료 행위가 적절한지, 의료비와 약값은 적정한지를 감시·감독하는 곳이어서 ‘의료계의 감독원’으로도 불린다. 심평원이 일을 잘 해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의료비 관리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모범국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에게 의료비는 여전히 버거운 부담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심평원 서울지원 집무실에서 손명세 심평원장을 만나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 방안 등을 물었다.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심평원 서울지원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국민의 의료비부담 경감 방안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남제현 기자

 

―병원이나 제약업체에서는 심평원 직원들을 싫어할 것 같다.

“1977년 박정희정부가 북한과의 체제 경쟁 차원에서 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당시 다른 분야에서는 북한을 넘어섰는데 의료 부문에서는 북한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외국에서 나왔다. 병원 문턱이 높아서 아픈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한가. 그래서 사회보장체계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다. 당시도 반발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보건의료 분야는 시장실패 요인이 많다. 병원이나 제약업체 같은 공급자가 정보의 비대칭이 강한 재화(치료 행위, 치료 약 등)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교정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도입하려하자 전경련은 근로자 의료보험료의 50%를 기업이 부담하면 경영이 어려워진다면서 반대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기업의 의료보험 지출을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참여를 유도했다. 500인 이상 기업 1700개 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 200여만명이 혜택을 받게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중소기업으로 확대 도입햇고 노태우 대통령은 자영업자와 농어촌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의료보험 제도를 실시했다. 기업 의료보험은 보험료 수입이 많아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았지만 보험료 수입이 적은 지역 의료보험은 상대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았다. 그래서 두 의료보험의 통합론이 제기됐지만 기업 측에서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두 의료보험을 통합한 현행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부담 능력대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혜택은 동일하게 받는 의료보험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전액보장’ 공약을 내걸었다. 얼마나 이행됐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4대 중증질환 비급여(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항목을 많이 급여로 끌어들여서 한때 62%까지 떨어졌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최근 65%까지 3%포인트 정도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이 비급여 항목 때문에 많은 돈을 의료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비급여 항목을 관리하고 보장률을 70%까지 올려나갈 계획이다. 최근 국회에서 의료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비급여 진료비용의 항목과 기준, 금액에 관한 현황을 조사·분석하고 결과를 공개할 수 있게 됐다. 32개에 불과하던 공개 항목이 시력교정술인 라섹·라식과 치과술인 금니 등의 비급여 항목 등을 포함해 52개로 확대됐다.”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 찍자고 하면 좀 부담스럽다. 그것도 가격이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MRI 비용을 병원별로 조사해서 공개하고 있다. 똑같은 MRI 진료지만 병원에 따라서 진료비가 2∼3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를 공개함으로써 환자가 보다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비급여 의료비가 감소하게 된다. 이를 통해 MRI에 지출하는 국민의 의료비는 절반까지 줄어들고 다른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용도 점진적으로 적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의료인들의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서비스) 점검이 의무화됐다. 국민에게 어떤 서비스가 가능한가.

“의료법·약사법이 지난 9일 개정돼 새해부터는 의사와 약사가 약을 처방하고 조제할 때 의약품 정보를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모든 전문의약품에는 고유한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유통단계마다 추적·관리하게 된다. 그러면 위조·불법 의약품을 차단할 수 있다. 이렇게 축적된 전 국민의 의약품 사용 데이터를 일반에 개방한다. 국민은 최근 3개월 동안 본인이 투약한 약품의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건강관리와 의료서비스에 대한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기관이 환자의 의약품 복용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중복처방 방지 등 진료의 질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건의료자원 신고일원화가 새해부터 시행된다. 어느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나.

“지금까지 보건의료 인력·시설 등 자원에 대한 신고·관리 체계가 의료법을 근거로 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국민건강보험법을 기반으로 하는 심평원 두 곳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때문에 신고가 중첩되고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번에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함에 따라 2016년 1월부터 의료기관과 약국 휴·폐업, 의료인 수 신고 등 13개 보건의료자원 신고업무에 대해 하나의 기관에 한 번만 신고하면 되도록 신고절차가 일원화된다. 내년 한 해 동안 중복신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 24억원 정도가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 상반기에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났다. 보건당국과 의료기관 등의 선제 조치가 아쉬웠던 대목이다.

“동의한다. 심평원 차원에서는 메르스 발병 지역인 중동 방문자들을 실시간으로 병원에 알려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기여했다. DUR 서비스를 통해 환자들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자 정보를 병원에 알리는 조치를 메르스 사태 초기(5월20일 메르스 첫 번째 환자 확진)부터 시행하자고 건의했지만 초기에는 이뤄지지 못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행된 6월9일부터 체계가 갖춰지고 업무가 진행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중에는 메르스 감염자 발생 병원을 다녀간 사람들의 정보까지 다 병원에 제공했는데 메르스 사태 동안 심평원이 의료기관에 제공한 의료정보만 6만건에 달했다. 전자방역시스템에 따라 실시간으로 질병 감시가 이뤄진 것은 세계 보건의료 역사에 기록될 만한 값진 경험이었다.”

―환자 정보 관리는 다른 한편으로 개인 정보유출의 위험도 있는 양날의 칼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심평원은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보안강화 등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안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기민하게 준비를 하기 때문에 심평원이 설립된 이래로 건강정보와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의학계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 한의학 부문을 홀대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금까지는 가루약인 한약재만 보험적용이 가능했는데 내년부터는 짜먹는약과 알약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국민입장에서는 한약 복용이 보다 편리해진다. 한의약에 대해서는 최대한 급여항목을 열어주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현재 전 국민이 연간 의료비로 지출하는 비용이 한 해 104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급여항목으로 심평원이 구매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62조원인데 한방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비급여 항목 진료와 약값을 포함해도 여전히 미미한 상황이다. 최근 몇 가지 사안을 두고 양의와 한의가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데 한국의 전체적인 의료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양측이 힘을 합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평원 원장으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

“올해는 세계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 다음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의제는 ‘보편적인 의료 보장’이 될 것이다. 유엔이 지속가능개발목표의 실천 방안 중 하나로 보편적 건강보장을 꼽은 적이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 국제적인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심평원은 다음달 14∼15일 서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해 국가 간의 보건의료 경험을 공유하고, 보편적인 건강보장을 달성할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WHO(세계보건기구)와 월드뱅크, 록펠러재단 관계자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뛰어난 보건의료시스템을 알릴 계획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수출길이 열리면 우리나라 의료인과 의약품, 치료재료도 함께 해외로 나갈 수 있다. 우리의 의료 인프라를 수출하게 되면 ICT(정보통신기술) 회사도 함께 수출될 수 있고 우리의 시스템이 외국에 깔리면 계속해서 용역비 등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재임 기간뿐 아니라 퇴임 이후에도 이 분야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이재호 기자

손원장은…

●1954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의대, 연세대학교 보건학 석사, 박사

●세계의료법학회 부회장

●WHO(세계보건기구) 집행이사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원장

●제8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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