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쟁법의 원리를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면 을의 눈물을 덜어주기 힘들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경쟁법의 목적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는 것’(The antitrust laws were enacted for the protection of competition, not competitor)이라는 미국 경쟁법의 판례를 종종 인용하고 있다. 본래 취지는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경쟁 당국은 가급적 시장의 거래 행위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김 위원장은 그 반대의 주장을 펴기 위해 그 판례를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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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가맹, 유통, 하도급, 대리점 분야 등의 불공정 관행 개선책과 재벌개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 경쟁법의 원리를 받아들인 공정거래법을 집행해야 하는 현실과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여론의 사이에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취임 한 달이 지났다. ‘김상조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저와 공정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만큼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공정위가 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한편으로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매일 소임을 되새기고 있다.”
―최근 가맹 분야 불공정관행 개선조치를 내놨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의 갑을 관계를 상생 관계로 바꾼다는 취지에 동감한다. 그런데 필수품목 마진 공개 등은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보공개의 폭과 수준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필수품목이고, 어떤 가격으로 공급하느냐는 핵심적 영업비밀이다. 이 때문에 공개 방법에 대해 개별 공개가 어려운 부분은 업종별 공개, 일정한 범위 내 공개 등 다양한 형태로 조율할 계획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이라는 게 기업 대 기업의 거래인데 공정위가 개입할 수 있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가맹점 종업원 임금이 변동되면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은 최저임금 인상을 염두에 둔 것인가.
“프랜차이즈는 관련자들이 공통의 이익을 나누는 상생의 모델이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가 갑을 관계인데 점주 측에는 고용의 문제가 있다. 공정위 차원에서는 갑의 을에 대한 횡포가 불공정 거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을인 점주들도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들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은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적용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부분을 가맹본부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상생협력 모델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가맹본부와 점주의 상생을 위해서는 본부가 일정 기간 직영점을 운영한 뒤 가맹점을 모집하는 등 규제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민한 부분이다. 사실 가맹본부가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확인됐을 때 가맹점주를 모으는 방식이 맞다. 하지만 이미 4200개가 넘는 가맹본부가 만들어진 현실에서 그것을 법률적으로 정해놓는 것이 맞는 방식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계약서에 정보공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하고, 해결이 안 되면 구조적으로 제약을 가하는 식이 될 것이다. 가맹본부 4200개가 모두 똑같은 ‘갑’은 아니다. 가맹본부나 가맹점주가 (매출액 등에서) 별 차이 없는 곳도 많다. 그래서 50개 주요 가맹본부 먼저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삼성전자보다 영업이익률이 높은 곳도 있다. 영업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들이다.”
―갑을 문제가 심각한 또 다른 분야는 하도급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태반이 하도급 거래로 먹고산다.
“그렇다. 갑을 문제 4대 영역이 가맹·유통·하도급·대리점이다. 얘기한 순서대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하도급 분야는 원사업자가 1차 하도급 업체뿐 아니라 2, 3차 하도급업체까지 관여하는 사실상 ‘전속거래’ 형태를 보인다. 재벌계열 대기업과 1차 하도급 거래의 불공정 문제는 많이 개선됐다. 2, 3차 하도급으로 가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진다.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더욱이 비정규직은 3분의 1까지 떨어진다. 최근 공정위가 중견, 중소기업의 갑질에 과징금을 때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을의 갑질’이다. 공정위가 고민하는 핵심이 2, 3차 하도급 거래 구조를 어떻게 공정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원사업자가 2, 3차 하도급업체에 개입할 수 없다. 특히 임금문제에 개입하면 노동관계법 위반이 된다. 그래서 법 제도 개선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이번에 14개 대기업을 만나 당부하고 싶은 게 이런 점이라고 본다. 상생 노력이 1차 하도급업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2, 3차 협력업체까지 내려갈 방안을 고민해달라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공동사업을 할 때 공정거래법의 담합금지 규정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하도급 불공정 거래 개선을 위해서는 하도급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서 협상력과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스위스에서는 중소기업들이 회사를 만들어서 공동으로 구매, 판매를 한다. 우리도 중소기업이 협력사업을 할 때 담합 예외를 인정해주고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공정위를 넘어서 범정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정위가 그런 노력을 주도하려고 한다. 하도급 기업 명단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문제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원사업자는 하도급 정보가 영업기밀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벽을 넘어야 한다.”
―하도급 정보 공개는 공정위 과제에서 빠져 있나.
“취임 이후 해야 할 일을 단기, 중기, 장기 과제로 나눴다. 하도급 거래 정보 공개는 중기 내지는 장기 분야가 될 것이다.”
―재벌개혁 관련해서 “시간이 얼마 없다”, “지배구조 개선은 사후적이고 시장접근적 방법이 좋겠다”고 말했다.
“소수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대·중소기업 간 힘의 불균형 문제 등을 해소해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재벌개혁을 몰아치듯이 하지 않고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정부는 재벌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령 개정을 통한 제도적 해결을 추진하는 등 민주주의 틀 내에서 가능한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시장접근적 방법은 소액주주나 기관투자가 등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기업 지배구조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취지다. 상법 개정(문재인 정부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까지 다중대표소송,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과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 모범기준) 활성화를 추진하고 효과를 보면서 공정거래법 규제를 얼마나 강화해야 할지를 판단하겠다. 순환출자 해소나 금산분리 등은 법률 개정 사항이다.”
―4대 그룹이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과 관련해서 상장사의 경우 30%로 해놨더니 29.9%로 만든 회사가 있다.(현행법상 오너 일가가 대기업 상장 계열사 지분을 30% 이상 갖고 있으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법 규정이 그렇다면 법을 지킨 것 아닌가.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비난 가능성은 있다. 이제 대기업은 법을 지켰다는 것만으로 안 된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와 사회적 기대에 대해 돌아보고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개선해달라는 뜻이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자발적 변화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자발적 선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법률 개정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어느 정도 합의됐나.
"다중대표소송, 전자투표 거의 다 됐는데 집중투표제, 감사위원분리선출제는 아직 논의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분리선출제 가운데 하나만 하고,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감사위원분리선출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은 곧 정치다. 정책만 하는 입장에서는 당위와 효율을 따지지만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치다. 여의도 정치 뿐 아니라 국민의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도 정치다. 공감대를 모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최근에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같은 인사들은 기업의 가업 승계를 인정해주고 그 대신 해당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른바 정부와 기업의 대타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타협론자다. 그런 타협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타협은 주고 받는게 확인돼야 한다. 약속을 깼을 때 거기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보장됐을 때 대타협이 가능하다. 하지만 타협 주체 중에 일방이 약속을 깼을 때 어떤 패널티를 줄 것인지에 대한 담보가 안되면 타협이 이뤄질 수 없다. 대타협 주장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을 펴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신장섭 교수는 좀 더 자신의 말에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좋은 말만 하면 안된다. 구체적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노조를 사회적 대타협 안에 어떻게 가져올 수 있고, 재벌의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장하성 실장이 선의를 가졌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 실현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제가 고민하는 것은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부분이다."
정리=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1962년 경북 구미 ●서울 대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 경제개혁센터 소장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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