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이 먼저 희생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 청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11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 가장이 돼야 했던 김동연의 아픔이었다. 김 부총리는 청년을 살리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사회보상체계’와 이를 결정하는 방식인 ‘거버넌스’(governance)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일보 창간 29주년을 맞아 이뤄진 김 부총리와의 특별인터뷰는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김 부총리는 규제개혁과 관련, “대부분의 규제는 그 규제로 인해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이 있고, 그 규제를 풀려면 그들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면서 “사회적 대타협은 아니더라도 ‘스몰딜’ 정도의 타협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인데 이해당사자들만 모여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도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가 거론한 국민 참여 공론화 방식으로는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때 쓰인 ‘공론조사’ 등이 거론된다. 그는 “올해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과제를 몇 개라도 뽑아 공론화하고 싶다”면서 “작은 과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초기 추동력을 확보하고 더 큰 규제를 개혁하겠다”고 덧붙였다. 청년 일자리 문제와 관련, 김 부총리는 “기존 방식과 틀을 넘어 획기적인 발상으로 실효성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만들겠다”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민간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하려고 생각 중이고, 올해는 민간에서 일자리가 더 많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3%로 잡았다.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고 여러 위험 요인이 있지만 3% 성장을 달성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성장률보다 중요한 것은 질 높은 성장이다. 수출만 잘 되고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빈약한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져 양극화 문제 등을 극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 올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는 원년이 된다.

“구조개혁이 되지 않고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갈 수 있는 국민소득 최대치가 3만달러대일 수도 있다. 4만달러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 관행과 의식 등의 근본적인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 올해 세계경제 전망이 낙관적인데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이번 기회가 구조개혁의 적기’라는 인식하에 개혁에 나서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가 좋아지니 우리는 괜찮다’면서 편안한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는 우리에게 통찰력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그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양극화에 따른 중산층의 구매력 부족 등에서 찾으면서 고통스러운 구조개혁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도 갈림길에 서 있다.”

― 우리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나.

“당연히 구조개혁을 하는 동시에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 국제경제나 우리 경제 여건으로 봐서 올해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개혁하기 좋은 시기다. 지금까지 구조개혁이 어려웠던 것은 공고하게 짜여진 기득권 내지는 기득권 카르텔을 변화시키지 못해서다.”

 

 

―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킹핀’(king pin·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치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5번 핀)을 넘어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 문제를 볼링의 핀에 비유하면 이렇다. 맨 앞의 1번 핀을 ‘저성장’, 그 뒤의 2번 핀을 ‘청년 실업’, 그 옆의 3번 핀을 ‘저출산’이라고 가정해보자. 1번 핀을 넘어뜨려도 2번, 3번 핀이 쓰러지지 않는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성장률이 올라간다고 청년실업이 해결되거나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우선 사회보상체계를 바꿔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사람과 투자를 혁신시키기 위해서는 사람과 돈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명문대에 입학해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직하려 한다.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승자 독식구조, 가진자들만의 리그, 기득권 카르텔,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 양극화 같은 기울어진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사회보상체계가 킹핀이고 보상체계를 결정하는 방식인 거버넌스가 또 다른 킹핀이다.”

― 노동시장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실패로 끝났다. 어떤 복안을 갖고 있나.

“궁극적으로 고용 유연성을 포함하는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 시점에서 바로 유연성 얘기를 하면 못 갈 것이다. 고용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서다.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안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서 고용 안정·유연(Securexibility:Security+Flexibility) 모델이다. 누군가 일시 실업상태가 됐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일거리를 찾을 가능성과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너무 안정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노동자가 그런 문제에 부딪히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실업급여 지급수준을 높이고 지급 기간도 늘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안정성을 일정 수준으로 높인 뒤 유연성도 같이 얘기해서 사회적 타협을 이뤄야 한다. 최근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는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회적 신뢰가 생긴다.”

 

― 규제 개혁도 해묵은 과제다.

“우버 같은 카풀앱을 하려면 택시기사가 반대한다. 편의점에서 비상약품 파는 것은 약사들이 반대한다. 의·약대 정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례가 있다. 타협과정에서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국민도 참여해야 하고 손해보는 당사자에 대해서는 합리적 보상책을 성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호주에서는 우버 수익 일부로 택시업자에게 보상한다. 자유무역협정(FTA)할 때는 찬성하는 산업에서 생기는 이익이 반대하는 측에 어떤 형태로든 돌아갔다. 노동개혁이나 규제개혁도 그런 길로 갔으면 좋겠다.”

― 노동개혁, 규제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은 사회적 타협을 정부가 주도했다. 독일 사민당 정부가 성공시킨 하르츠 개혁이 대표적이다.

“하르츠 개혁도 정부가 프로펠러 역할을 했지만 밀어붙이기보다는 수많은 대화와 타협을 했다. 독일은 대화와 타협이 일상화된 나라다. 우리도 정부가 중심 역할을 맡아서 끌고 나가야 하지만 노조와 사용자, 시민단체, 정치인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대화하고 타협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에 동감하지만 속도가 빠르다. 2020년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조정돼야 하지 않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는 조치다. 내수 활성화를 통해 지속적 성장을 이뤄낼 출발점이기도 하다. 물론 인상 속도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신축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와 일자리안정자금의 집행 등을 감안해서 신축적으로 하겠다.”

―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이 시장 원리에 배치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영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30인 미만 고용사업주에게 월급 190만원 미만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소득분배 왜곡이 낳은 양극화 때문에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 보완 조치는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주면 좋겠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은 한시적으로 하려고 생각한다. 다만 올 한 해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원 기간은 상황을 보아가며 판단할 것이다.”

 

― 강남 집값 상승, 과도한 수준인가.

“최근 서울 일부 지역 재건축, 고가아파트의 가격상승세는 정상적인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고가주택, 재건축 아파트 중심의 상승, 전세 안고 집을 사는 ‘갭투자’ 증가, 전세가격 안정 등을 감안하면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보유세 인상 주장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보유세 인상은 조세형평성 측면이나 거래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다는 조세정책적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다. 앞으로 재정개혁특위를 통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 보유세 인상 과정에서 다주택자 등의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 거래세와 보유세 비중,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겠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이천종 기자, 사진=남제현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충북 음성(1957년생) ●덕수상고 ●국제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행정고시 26회 ●경제기획원 예산실,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 전략기획관, 산업재정기획단장, 재정전략실 재정정책기획관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획재정부 2차관 ●국무조정실장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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