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직원들의 근무 복장이 확 바뀌었다. 청바지에 면티 차림도 예사라고 한다.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조직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기업 문화를 스타트업처럼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은 회사에 도착하기 전에 앱으로 하루 동안 근무할 자리를 고른다고 한다. 부서간 칸막이를 없애고 다양한 의견을 융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른 회사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존의 획일적인 업무 행태와 평가 시스템을 고쳐나가고 있다.
기업들이 왜 이럴까. 국내외 생존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탓이리라. 이제는 더 이상 규모의 경제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재빨리 변신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가격 경쟁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경영학자인 윤석철은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제품의 가치> 제품의 가격> 제품의 원가’라는 ‘생존 부등식’을 제시했다. 소비자가 특정 제품에서 느끼는 가치는 가격보다 커야 하고, 가격은 기업의 원가보다 커야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기업은 소비자에게 가치에서 가격을 뺀 만큼을 주고 가격에서 원가를 뺀 만큼을 받는다. 기업과 소비자가 상생의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산업화 시대의 우리 기업은 ‘가격> 원가’의 경쟁력을 통해 지금의 위치까지 도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가격> 원가’의 부등식만 놓고보면 이익 최대화가 목표다. 그러려면 임금을 누르고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가격> 원가’의 부등식에서는 우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오래전에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이념의 잠에서 깨어난 중국은 어느 사이에 자동차와 조선, 철강,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로 등장했다. 우리가 세계 1위라는 메모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부문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이 와중에 대기업 노조들은 매년 파업을 무기로 제품 원가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가격> 원가’의 부등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코너로 몰고 있다.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원가가 높아져도 ‘가치> 가격> 원가’의 부등식을 충족시키는 기업은 생존한다. 그런데 가치를 높이는 일이 말처럼 쉬운가. 가치는 원가처럼 계량화하기도 어렵다. 어떤 제품이 10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해서 구매했지만 사용 과정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잘 샀다고 만족할 수도 있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려면 소비자의 욕구를 감지하고 이를 제품과 연결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실패와 실수를 용인하고 기탄없는 의견을 환영하는 분위기에서 제대로 발현될 수 있다. 기업들이 조직원들의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짜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기업이 세금을 내거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가치를 높이는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상법과 세법을 개정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신뢰 지수도 상품 가치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다. 유기농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풀무원은 인삼 제품 판매를 접었다. 재배 과정에서 농약 사용이 불가피한 인삼 제품에서는 미량이라도 농약이 검출된다는 이유에서다.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유기농 식품업체라는 이미지를 지킨 것이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신뢰도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거꾸로 소비자의 신뢰를 갉아먹는 자충수를 두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각고의 노력으로 생존 부등식은 만족시켰지만 정부의 규제나 기득권의 이해에 밀려 퇴출되는 기업과 서비스도 있다. 규제와 기득권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카풀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 서비스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멀쩡한 혁신 기업의 목을 조르는 꼴이다. 계속 이러면 한국 경제의 생존 부등식을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조남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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