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2012년이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연초부터 시끄웠지만

결국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다행이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참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서울살이도 내년이면 30년째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은지도 내년이면 24년째다.

신문기자 생활도 내년이면 21년째다.

고향을 떠난지는 더 오래돼 내년이면 33년째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

대처로 유학길을 떠나던 그 날,

신작로를 터덜거리며 달리는 냄새나는 버스 안에서

차창 너머로 걸린 무지개를 봤다.

인생에 낙제는 없다는 심보르스카의 말을 믿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규동, 거지 시인 온다  (0) 2018.10.22
野雪  (0) 2013.02.19
김치찌개 평화론  (0) 2006.04.22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