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회’ 기치를 내걸고 19대 국회가 문을 연 지 3개월을 넘겼다. 지난 4·11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거센 정치 불신을 절감하며 여의도 국회에 입성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특권 없는 국회’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 달라진 건 없다. 이런 국회를 향해 끊임없이 ‘자성’을 촉구하는 이가 있다.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군수를 지내고 환갑의 나이에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단 늦깎이 황주홍 의원(민주통합당)이다.

 

 

 

그는 의정활동의 단상을 담은 ‘초선일기’를 쓰고 있다. 이를 통해 늑장 개원하고,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여의도 정치판을 향해 “공복(公僕)답게 행동하라”고 외치고 있다. 당 지도부나 동료 의원들에겐 그의 존재가 편치 않을지 몰라도 국민들은 속이 후련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정치판이라서 그의 존재가 더욱 돋보인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황 의원을 만나 한국정치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강진군수를 세 차례나 지내며 지방자치 현장을 지켰다. 국회의원이 돼서 지난 3개월 동안 중앙정치를 체험해 본 소감은.

“크게 다른 건 준법의식이다. 시장, 군수들은 일하면서 과민하다 싶을 정도로 실정법을 준수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국회는 그렇지 않더라. 법을 만드는 국회가 더 준법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의외로 대범하게 법을 어긴다. 헌법조차 손쉽게 무시해 버린다. 국회 개원은 국회법에 규정돼 있는 강제조항인데 그런 것 정도는 아랑곳않고 무시한다. 19대 국회에 쇄신특위가 만들어졌는데 국회 쇄신 거창할 것 없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준수하면 된다.”

―정치권이 왜 그런다고 생각하는가.

“잘못된 문화와 관행 탓이다. 의원들은 언필칭 헌법기관이란 말을 즐겨 쓴다. 잘못됐다. 최상위 헌법기관은 국민이다. 의원들이 자신들만 헌법기관인 양 행동하면서 법령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법령 위반 정도는 국익이란 관점에서 양해될 수 있다는 최면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에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그것도 국회의원들이 특별하다는 자의식에 비롯된 결과인가.

“그런 것 같다. 의원은 벼슬아치가 아니다. 봉사기관의 공익요원이어야 한다. 국민들이 의원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해 주고 있다. 그런 만큼 직무수행과 연관된 권한 외의 특권, 기득권은 싹 내려놓는 것이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옳다. 요즘 유행하는 경제민주화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그걸 안 하니깐 국민 입장에선 분통이 터진다.”

―국회의원들이 어떤 특권들을 내려놔야 한다고 보나.

“국회의원의 겸직은 말이 안 된다. 여기서 돈 받고 저기서 돈 받고, 이게 가능한가. 월급이나 적은가? 인턴까지 9명이 의원 한 명을 보좌한다. 9명을 붙여줄 정도로 일이 많다는 것이다. 무슨 겨를이 있어 겸직한다는 건가. 다른 공직은 못한다. 왜 의원만 겸직하나.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주민소환제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만든 법인데 소환 대상에 의원은 빠져 있다. 그래서 지난 7월에 동료의원들과 함께 국회의원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이런 것들이 시대착오적인 특권들이다.”

―의원 배지 착용도 반대하고 있는데 그건 사소한 문제 아닌가.

“그렇지 않다. 정치 쇄신과 국회 개혁의 출발선이다. 거기에 특권의식이 담겨 있다. 국회 대정부 질의 때도 국무총리를 상대로 국무위원들 배지 달지 마라고 촉구했다. 국회 쇄신특위가 제도권 의식의 상징인 배지 안 달기만 이뤄내도 큰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여야 할 것 없이 공천헌금 의혹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공천헌금을 근절시킬 방안은 없는가?

“첫째로는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단위 자치단체장들에 대한 정당 공천제도가 폐지돼야 한다. 그래야 지자체가 자기 논리와 자기 필요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일본은 정당공천제가 없다. 미국도 정당공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원들이 이 특권을 놓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무기로 지역구 시장이나 군수를 수하처럼 부린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믿고 있지만 공천헌금도 오간다.”(황 의원은 강진군수 시절 정당공천 폐지운동을 주도했다. 2010년엔 정당공천 폐지 소신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비례대표 의원 공천과정에서 공천헌금 의혹 사건이 터졌다.

“비례대표제도라는 것이 상위 순번만 차지하면 저절로 의원이 된다. 당 지도부의 한두 사람이 각별히 챙기면 의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다. 마치 왕이 너는 영의정해라 하듯이, 당 대표나 당 실권자가 너는 4년 동안 의원하라고 점지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21세기 현대민주주의에 부합한가. 직능, 직업적 비례를 반영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지역구 의원들이 다 감당해 낼 수 있다. 개별 의원 지역구에 장애인, 택시, 노동자 문제들이 다 녹아들어 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중앙당의 과도한 권력 집중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는 50석 넘는 비례대표 의원을 중앙당이 다 결정한다. 어마어마한 권력이다. 중앙당의 권력 집중은 국회의 순조로운 의정활동을 사실상 제어, 방해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당론이 수시로 발급돼서 개별 의원들의 독자적인 입법, 의정활동을 제약한다. 중앙당이 비례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 공천권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의회에서 흔히 이뤄지는 크로스 보팅(교차투표)이 우리 국회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앙당 공천권이 문제라면 공천제도 자체를 상향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그렇다. 공천 위원 열댓 명이 무슨 수로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 이르는 후보자를 평가할 수 있느냐. 이번엔 (민주당 4·11 총선 공천과정에서) 후보자 면접 5분씩 했는데 옛날에는 면접도 없었다. 공천권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면 된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 놓은 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지금은 영향력 있는 몇 명이 정당을 움직여가고 있다. 과두제나 다를 바 없다.”

 

―상향식 공천이 성공하려면 민도가 더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이 문제라면 문제 아닌 게 뭐가 있겠나. 개인적으로 정치의 유일 척도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비록 틀렸을지라도 옳다고,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민심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옳다고 생각한다. 민심을 능가하고 제압할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은 민주제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게 존재하면 민주제는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더욱이 지금 국민은 넘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민심이 보다 정교해졌다. 국민이 지시하는 대로 정치가 가면, 그 길이 바로 한국 정치를 개선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정당정치가 위기라고 한다. 올 대선에선 정치인이 아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뜨고 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본다. 안 교수가 난세의 영웅이라서가 아니다. 기성 정치권에서는 국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후보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안 교수에게 국민의 지지가 쏠리는 게 아닌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마당인 정당의 위기도 정상은 아니다.

“정당정치가 문제라면 정당 밖에서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선거 때마다 외부에서 수혈한 사례가 많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나 조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런 경우다. 미국에서도 아이젠하워 장군이 공화당 대선후보로 수혈돼 대통령이 됐고, 비록 실패했지만 사업가인 로스 페로가 민주·공화 양당체제에 반기를 들고 대선에 나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경종이다.”

―소신 발언으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 게 작금의 정치 현실이다.

“당사자에게는 뼈아픈 소리이고 그의 지지자들에겐 불쾌한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이다. 여론 무시가 정치 불신을 낳는다. 여론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치러야 한다면 기꺼이 치르겠다.”

<약력>
전남 강진(1952년생) 광주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미주리대 정치학 박사 아·태평화재단 부총장 건국대 교수 강진군수(3선) 19대 국회의원

대담=조남규 정치부 차장

사진=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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