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동독과 체결한 협정을 존중하고 진행 중인 협상도 계속 추진하겠다.”

13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는 1982년 취임 연설을 통해 이같이 천명했다.

기민·자민당 연립 정부는 직전 사민당 정부가 69년부터 추진했던 ‘동방정책’(Ostpolitik)을 계승, 현실에 맞게 발전시켰다. 1990년 10월 독일은 전격적으로 통일됐고 콜 총리는 ‘통일 재상’으로 역사에 남았다.

독일 통일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대표되는 냉전 종식의 흐름 속에서 우연한 계기에 이뤄진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독일 국민들의 통일 열망과 서독 정부, 서독 정치권의 꾸준한 통일 노력이 기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서독 정치권은 동독 정책에 관한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 내며 내부 갈등으로 통일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막았다.

 

 

 

◆정쟁 접고 통일 합의 이끌어낸 서독

서독 하원이 84년 채택한 ‘독일정책 공동 결의안’은 독일 통일사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결의안의 취지는 정권 향배에 따라 동독 정책이 춤을 추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정치권의 합의는 일관된 통일 정책 추진을 가능케 했다.

서독 정치권도 오랫동안 동독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했다. 사민·자민당 연립정부 총리로 취임한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69년 기존의 동독 정책을 전면 수정, 동독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자 기민당을 비롯한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브란트 정권이 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한 뒤에도 야당은 “동독을 국제법적 주체로 인정한 기본조약은 독일 분단을 고착화하는 위헌조약”이라면서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하지만 기민당은 사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동방정책’, ‘동·서독 기본조약’에 반대 기조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사민당 정권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야당의 입장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며 동독 정책을 둘러싼 간격을 좁히려 애썼다. 각론에선 치열한 토론을 벌이면서도 합의된 정책에 대해선 초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여야는 상생의 관계였다. 사민당 브란트 총리의 과감한 동방정책은 기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 전 총리가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과의 관계를 개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민당은 친미 정권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 대소련 전초기지 역할을 자임했다. 통일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민당의 동방정책은 소련과 동유럽을 변화시키고 종국엔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게 했다.

◆정치권, ‘통일 대협약’ 마련해야

우리 정치권은 그간 정권에 따라 대북 정책이 냉탕·온탕을 오가는 바람에 남북한 신뢰구축은 고사하고 남남갈등만 키워왔다.

국회가 나름의 대북 정책 관련 합의를 이끌어낸 사례가 없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여야는 공동으로 남북관계발전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문화했다.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승계하지 않자 정치권의 합의도 물거품이 된 셈이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정부와 민간 위원으로 남북관계발전위원회를 구성, 5년 단위로 남북관계발전 기본 계획을 심의하도록 했으나 위원회는 2006년 설치된 이래 단 한차례 소집되고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18대 국회에서도 대북정책에 관한 ‘국민대협약’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2009년 한나라당 진영 의원과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초당적 통일 노력을 위한 공동 토론회를 개최했다.

진 의원(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당시 토론회 취지는 여야, 정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대북정책협의체를 만들어 정책 수립단계에서부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북측과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다”며 “협의체를 통한 정책적 공감대 형성만이 남남갈등이 남북관계 악화로 비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송 전 의원은 “‘국민대협약’이 이뤄진다면 대통령 5년 단임제에 의한 정책의 단절없이 남북관계를 우리가 이끌어갈 수 있게 되고 미국, 중국 등 관련국과의 협상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송 전 의원은 국민대협약의 내용과 관련, 냉전 종식 이래 남북 간에 이룬 3대 합의(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 10·4합의)를 국민대협약의 근간으로 삼자는 주장이다.

진 의원은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출발, 단계적이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의지 확인, 북핵 문제 해결, 남북교류 강화와 투명한 인도적 지원 방안, 이산가족 및 국군포로 문제 등 다양한 논의를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 차분히 정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편차가 있지만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면 충분히 절충점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통일 대통령을 꿈꾸며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등 온갖 장밋빛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훌륭한 통일 정책도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지원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독일 통일의 교훈이다.

조남규 기자

 

 

 

송민순(사진)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통일 과정에서 여야는 동지인데 방법이 다르다고 원수처럼 싸운다”면서 “북한이나 주변국들이 이용해먹기 좋은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송 전 장관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다툼과 관련, “진보든 보수든 위정자나 집권 엘리트들이 북한 문제를 정리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며 “북한을 악으로 보는 도덕적 강경론자도, 북한이 지고지선이라는 맹목적 타협론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18대 국회에 입성, 4년 동안 정치권을 지켜봤다.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애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 전 장관을 지난 13일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정치권의 초당적 통일 논의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18대 국회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된 ‘국민 대협약’을 만들자고 주창했다. 어떤 문제 의식에서였나.

“그동안 남북관계를 볼 때, 새 정부가 취임하면 북한은 으레 남북관계 업적을 만들어 내고픈 남측 지도자의 욕구를 이용해 칼자루를 쥐고 필요한 것을 요구한다. 이에 응하면 국내에선 ‘북한 퍼주기’ 논란 등 국민 저항이 심해진다. 집권 말기에도 대북정책에서 업적을 남기려 한다. 또 북한이 칼자루를 쥔다. 악순환이다. 누가 정권을 잡든 집권 기간에 할 수 있는 부분만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 대협약이 필요하다.”

―국회의원으로서 정치권의 통일 논의를 지켜본 소감이 어떤가.

“여야 모두 통일하자고 한다. 북한을 변화시키자고 한다.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대한민국 방식으로 변화시키자고 한다. 그런데 북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놓고 적군처럼 싸운다.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능선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방법을 놓고 싸우느라 힘을 다 소진하고 쓰러진다. 국론 분열된다. 정말 안타깝다.”

―왜 싸우는 것 같나.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니깐. 그걸 넘어서야 한다.”

―정치권이 당파성만 극복하면 되나.

“그렇다고 본다. 진보 진영은 북한이 잘못하는 것, 예컨대 북한 인권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 차원에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은 대북정책을 탄력적으로 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에게 북한은 제3국이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 북한은 변화시켜서 끌고 가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국민대타협하자는 것이다. 말없는 다수는 북한의 잘못된 것은 지적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교류·접촉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면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그 위에서 통일이라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 12월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조언을 한다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독일 정치권이 우리처럼 싸웠다면 독일 통일은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독일 주변의 그 어느 나라도 독일의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 유럽 전체가 분단된 독일을 선호했다. 하지만 국론이 통합돼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 우리 주변 상황은 독일보다 더 험난하다. 주변국 어느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 서독은 힘이라도 컸다. 우리는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 힘이 작다. 독일보다 더 국론이 뭉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분열돼 있다. 이런 상황에선 그 어떤 정책을 써도 성공할 수 없다. 33년 동안 현장에서 체득한 내 나름의 결론이다.”

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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