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대단한 자리다.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서 국회의원을 꿈꾼다. 당선된 다음에는 재선, 3선 의원이 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최근엔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종북주의자들까지 이 대열에 가세한 느낌이다.

그런 속에서 별종이 나왔다. 정장선(54) 전 의원이다. 당선이 확실시됐던 상황에서 돌연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싸우는 국회가 부끄러웠다”면서 떠났다. 그는 부끄럽다고 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대선이 임박하면 더 사납게 싸울 것이다. 이런 국회를, 이런 정치를 떠난, 정 전 의원은 뭐라 할까. 그를 18일 국회 의원회관 앞 야외 벤치에서 만났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평택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 터미널에서 국회까지는 지하철(9호선)이 바로 연결돼서 편하게 왔다.”

 그는 야인이 되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한다. 최근엔 후불제 교통카드도 만들었다. 차량은 승합차인 카니발을 갖고 있다. 직접 기름을 넣어보니 비싼 기름값에 가슴이 철렁하더란 얘기도 했다.

―바깥에서 보니 국회가 어떻게 보이던가.

“국회는 늘 짧은 시간에 쫓기다 보니 큰 그림을 못 보는 수가 많다. 의원들은 국민의 입장보다는 소속 정당의 시각, 지지층의 시각에서 현안을 바라본다. 그 시각에 매몰된다. 그래서 국회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국민, 특히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수 있다.”

―19대 국회가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요즘엔 의원 특권 중 일부를 개혁해나가고 있다.

“권위주의 차원에서 부여된 특권은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만 특권 해소는 부차적 문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 신뢰 회복이다. 국회와 정당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 경제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위기를 걱정하는데 정치는 더 심각한 퍼펙트 스톰을 맞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도 못 냈다. 올 대선에서도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만 바라보고 있다.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태로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왜 정치권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나.

“여야가 논쟁은 치열하게 하되 궁극적으로는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걸 전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고질적인 지역 갈등과 계층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갈등들을 국회나 정당이 해소하기는커녕 대리전을 펴며 오히려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각자 자기 진영의 논리는 충실히 대변하지만, 날이 갈수록 국회는 국민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맞아죽어도 합의를 도출해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일부 대선 주자들이 ‘정치 교체’를 주창하고 있는데 비슷한 취지인 것 같다.

“그런 구호는 누구든 외칠 수 있다. 앞선 정치 지도자들도 같은 구호를 수없이 외쳐왔지만 여지껏 고쳐지지 않았다. 정치 지도자들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초월자 입장에서 법이나 예산 통과만 지시해 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미국 대통령처럼 국회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직접 나서서 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여당도 청와대의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지 않았는지, 그리고 야당은 대안정당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18대 국회 임기 말에 통과된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이 정치권의 타협 문화 조성에 기여하지 않겠나. (몸싸움 방지법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면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다.)

“과거엔 여당의 날치기 관행 때문에 야당이 법안 상정 자체를 죽기살기로 막았다. 18대 국회에서도 사학법 개정안이나 방송법 개정안, 4대강 예산 등과 같은 쟁점 법안이 계류된 상임위는 예산이고 법안이고 전체가 파행됐다. 몸싸움방지법은 법안 상정을 자유롭게 하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허용해 충분히 토론하도록 했다. 일부에선 법안 처리가 늦어질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더 빨라질 수 있다.”

정 전 의원과는 2000년 16대 총선 직후 초선 의원과 초짜 국회 출입기자로 처음 만났다. 그는 1995년 경기도 의회 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당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명망가 중심의 한국 정치권에선 흔치 않은 성공담이다. 그런 그가 4선 고지 앞에서 훌훌 털고 여의도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앞으로 뭘 할 건가.

“다문화와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해 보려한다. 지금 다문화 가정들을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고 있다. ‘함께하는 세상’이란 이름도 지었다. 약칭 ‘함세’다. 다문화 현장을 찾아서 애로 사항도 듣고 이들을 위한 간행물도 발행할 계획이다. 평택에는 공장들이 많아서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민자는 전체 국민의 1% 정도인데 앞으로 더 늘 것이다. 사회는 다원화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은 외국인들에 배타적이고 우리 사회는 이들을 수용할 태세가 안 돼 있다. 협동조합 운동은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재벌들은 무차별적으로 소상공업 영역까지 침투해 지역에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심하다. 직접 협동조합과 연계해서 그들의 생존을 모색해 보고 싶다.”

그는 의원 재직 시절에도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평택의 다문화가정협회로부터 행복한 다문화가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국회에 남아서 하면 더 효과가 크지 않겠나. 굳이 의원직을 던질 이유가 있었나.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 국회를 나온 건 아니다. 지방의원부터 20년 가깝게 의원 생활했는데 솔직히 정치에 회의가 들었다. 정치권이 사회 갈등을 해결 못하고 더 증폭시키는 현실이 자괴스러웠다. 서민 위하는 정치를 한다고 했지만 형식적으로 한 부분도 많았다. 현장과 부딪치면서 정말 정치를 계속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다른 보람된 일이 있는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었다.”

―재산이 동료 의원들에 비해 적은 편이더라. (2011년 3월 공직자위원회가 공개한 그의 재산은 3억9800만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하고 집사람하고 지하 전세방에서 시작했다. 이사를 9차례나 했다. 도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는데 당시 지방의원은 사실상 명예직으로 급여 자체가 없었다. (중학교) 교사인 집사람 봉급으로 생활했다.”

―국회의원 3선하지 않았나.

“세비 통장에 들어온 돈 중 절반은 집사람 생활비로 주고 절반은 내가 썼다. (그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노모가 최근 암 수술을 했다.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평택에 아파트 마련하면서 대출 받은 돈을 지난해 겨우 갚았다. 그때 집사람이 보내온 메일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메일엔 ‘우리는 이제 빚이 없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의원 재직 시절 출판기념회를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모금한 돈은 선관위 보고 의무도 없고 상한도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후원금 모금 수단이다.

―왜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았나.

“싸우기만 하는 국회와 그 일원인 내 모습을 담은 책을 내기가 부끄러웠다. 다른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을 비난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 마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 정 전 의원이 지금 책을 쓰고 있다. 몽골을 알리는 책이다. 그는 17·18대 국회에서 한·몽골의원친선협회 회장을 맡았다. 몽골대에 ‘북극성 장학회’를 만드는 등 양국 간 교류·협력을 위해 애쓴 공로로 몽골 정부로부터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몽골 친구들은 그에게 ‘알탄 가다스(북극성)’란 이름을 헌사했다. 그는 집필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24일 몽골로 떠났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알탄 가다스’가 떠난 국회의사당은 19대 국회 개원 축하 플래카드를 내건 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 있었다.

대담=조남규 정치부 차장, 사진=김범준 기자

■ 정장선 前 의원은

 ●경기 평택(54) ●성균관대, 연세대 행정대학원 ●경기도의원 ●16, 17, 18대 의원 ●열린우리당 제4정조위원장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 및 정책위 수석부의장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민주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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