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통령 당선자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전문가가 있다. 점술가가 아니고 학자라는 점이 자못 눈길을 끈다. 그는 1992년 미국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일약 스타가 됐다. 앨런 리히트먼(사진) 아메리칸대 교수다. 그는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지지율이 90%까지 치솟은 조지 H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를 예언했다. 그는 미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이 탄생한 2008년 대선 결과를 3년 전에 예측했다. 1984년 이후 치러진 일곱 번의 대선 결과를 모두 맞혀 ‘대선 족집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 올해 실시되는 미국 대선의 결과를 물어봤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플로리다 경선을 계기로 ‘롬니 대세론’이 재점화되고 있다. 롬니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것으로 보나.

“공화당 경선은 초반 3개주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1위가 제각각인 전례없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아이오와 1위는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뉴햄프셔 1위는 롬니, 사우스캐롤라이나 1위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다). 롬니의 플로리다 승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이후 형성된 롬니와 깅리치의 팽팽한 균형이 깨지고 무게중심이 롬니 쪽으로 이동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플로리다가 끝이 아니다. 3월부터 6월 사이에 치러지는 경선에는 수많은 대의원들이 걸려 있다.”

―롬니의 플로리다 경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출구조사에서는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깅리치를 더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롬니의 몰몬교 신앙이 공화당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롬니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롬니의 몰몬교 신앙은 부인할 수 없는 경선 변수다. 복음주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몰몬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은 대체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몰몬교도를 유대교도나 여성보다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공화당 대선 주자 중에서 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맞수로 가장 적합한가.

“여론조사 지표상 오바마에 대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화당 후보는 롬니다. 중도파인 롬니의 지지율이 다른 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대다수 미국민들이 중도 성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선 초반의 지지율이 최종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개발한 대선 결과 예측 시스템에 따르면 롬니든 깅리치든 본선에서 오바마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당신이 개발한 대선 예측 시스템의 원리를 설명해 달라.

“내가 동료 교수와 함께 개발한 대선 예측 시스템은 1860∼1980년에 치러진 모든 대선 통계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다. 우리는 이를 기초로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13개 변수를 추출해냈다. 이들 13개 변수 중 6개 변수 이상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현직 대통령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이 원리의 근저에는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의 성적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성적표는 집권 중반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다른 대선 예측 시스템과 달리 조기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9개 부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부정적 평가는 3개였고 나머지 1개는 판단이 유보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항목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았나.

“첫째, 대선 전에 치러진 중간선거 결과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현직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집권 민주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내주며 참패했다. 둘째, 장기 경제 전망이다. 미국은 사실상 경기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오바마는 경제 이슈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카리스마 부족이다. 오바마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통령도 아니고 국민적 영웅 후보도 아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 토론 당시 선두에서 이를 주도하지 못한 채 끌려다녔고 뛰어난 화술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 국면 속에서 국민을 분발시키지도 못했다. 2008년 대선이 끝난 이후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도 약화됐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오바마가 긍정적 평가를 받은 항목은 어떤 것들인가.

“단기 경제 전망 변수는 올 대선 시점에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판단 유보 평가를 내렸다. 나머지 9개 변수는 오바마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우선 오바마는 유일한 민주당 대선 후보다. 현역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당내 도전 없이 재선을 치르게된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진보 성향의 제3후보가 오바마 표를 잠식하지 않게 된 것도 오바마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첫번째 임기 동안 건강보험 개혁과 획기적인 경기부양책 등 이전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도움이 된다. 또한 통치 능력이 위협받을 만한 사회 불안 요인이 없고, 아직까지는 정권 차원의 스캔들이 없다는 점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한결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다. 오바마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피그만 실패’(케네디 미 행정부가 1961년 4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바 망명자들로 침공군을 조직, 쿠바 피그만을 공격했다가 실패로 끝난 사건)와 유사한 실책이 없다. 오히려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는 대선 예측 변수가 아닌가.

“여론조사 결과는 반영하지 않는다. 이 예측 시스템은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고 있는지, 집권당이 의정 활동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지 등과 같은 큰 그림에 바탕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맞수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탁월하면 예측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나.

“물론 현직 대통령과 맞붙는 상대 후보의 카리스마도 평가 항목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공화당 대선 주자로 뛰고 있는 그 누구도 카리스마가 넘치거나 국민적 영웅인 사람은 없다.”

―당신은 2년 전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확신했다. 올해 들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선 예측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장기적 경기 전망이 밝지 않은 만큼 경제는 분명 중요한 대선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다.”

―대선 전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 달라.

“92년 대선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남부 억양의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후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빌 클린턴 캠프의 참모였다. 그 여성은 과연 민주당이 92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여부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확신시킨 뒤 클린턴 캠프에 내 저서와 메모를 전달했다. 클린턴 후보의 대선 승리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바다. 2008년 대선에선 공화당이 필패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전화번호부에서 아무나 골라 민주당 후보로 내세워도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3년 후에 미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미국 대선이 항상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의 양자 대결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선을 치르려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된다. 제3후보가 기존 유력 정당과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대선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언론도 제3후보를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고 유권자들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도 제3후보에겐 불리한 대목이다.”

―당신의 정치 성향은 보수와 진보 중에서 어느 쪽에 가깝나.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과 재정규제 개혁, 이라크 철군, 미 자동차 산업 구제 등 많은 부문에서 업적을 남겼다고 본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 앨런 리히트먼 교수 약력

▲미국 브랜다이스대,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아메리칸대 교수

▲1993년 올해의 교수상 수상

▲미 법무부 인권조사위원

▲‘백악관으로 가는 열쇠’(The Keys to the

White House)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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