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세계의 눈이 동북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아시아 중시 전략으로 선회한 미국과 21세기 패권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이 태평양 주도권 다툼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북한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동북아 정세의 유동성이 더 커졌다. 미국 내 대표적 아시아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 겸 아시아연구소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은 동북아 지역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역내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한 지렛대”라고 강조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를 지난 달 워싱턴DC 조지타운대 연구실에서 만나 동북아 정세 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스타인버그 교수와 필자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유럽 지역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은 150년 전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 그 어느 나라도 패권국으로 부상해선 안 된다는 일관된 기조다. 19세기에 미국은 유럽의 아시아 제패를 막기 위해 중국을 개방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1922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체결된 ‘해군군축조약’(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5대 해군국이 군함의 총량을 제한하기로 합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맹주로 떠오르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잘 알다시피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아시아로 세력권을 넓히려는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전쟁이었다. 이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은 역내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어느 한 나라가 너무 강력해지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은 큰 나라가 아니지만 미국엔 매우 중요한 나라다.”

―한국이 통일되면 아시아의 또 다른 ‘호랑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미국은 통일된 한국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통일 한국은 ‘중립적 호랑이’가 될 수 있다. 분명 미국은 중국과 가까운 통일 한국을 원치 않는다. 그런 상황은 미국과 일본 모두에게 악몽이 될 것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압록강까지 확대되길 원치 않는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인정이 필요하다. 중립적인 통일 한국은 역내 이해 관계국 모두에게 이익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하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고위 당국자로는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국은 지금 중국을 포위하는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하는가.

“그렇다. 중국 ‘봉쇄 정책’(containment policy)이다. 미국은 50년 대부터 소련을 상대로 그런 정책을 취했고 지금은 그 대상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들어 한·미,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호주 군사기지에 미 해병대를 주둔시키도록 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행보를 우려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친분이 있는 수많은 중국 소식통들이 내게 전한 중국 지도부 내부 기류다. 클린턴 장관의 미얀마 방문은 남중국해를 하나로 묶겠다는 미국 정책의 결정판이다. 미얀마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종속적이지는 않다. 독립 이후 중립 외교 정책을 표방했고 지금은 균형 외교를 하고있다.”

―미얀마와 관련해선 미 상원 군사위의 리처드 루거 의원 등이 북한과의 핵 커넥션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미얀마 권위자인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과거 미얀마 군부 실력자(1992∼2011년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였던 탄 슈웨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의혹 수준일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2012년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사안은 무엇인가.

“북한의 핵 개발이다. 북한이 핵 능력을 키워나가면 일본 등 주변국의 국수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 한국도 70년대에 자체적으로 핵 개발을 시도한 전력이 있지 않느냐. 일본 내에는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북한의 핵 능력이 지속된다면 일본도 언젠가는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핵 도미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은 김정일 사후에도 핵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의 전망이 어긋났으면 좋겠다.”

―북한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이 연착륙할 수 있다고 보나.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할 당시에도 몇 년이 걸렸다. 젊은 김정은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김정일이 몇 년 더 살았다면 군부를 통제하면서 김정은의 권력 기반 강화를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정권 붕괴의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이는 모두에게 좋지 않다. 중국도 바라지 않고 한국도 갑작스러운 북한 붕괴에 따른 통일 비용 부담을 원치 않을 것이다. 미국도 동북아의 불안정 국면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 한다. 미국은 북한이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개방에 나선 중국 모델로 나아가길 바란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로 붕괴하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김정일 사후 북한의 새 지도부가 어떤 형태를 띠든 한·미는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을 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미국의 아시아·북한 정책이 변화할 것으로 보나.

“그렇게 많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화당은 일반적으로 중국, 북한을 민주당보다 더 의심한다. 공화당은 지금 중국,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이지만 막상 정권을 잡게 되면 복잡한 외교·안보 현실을 도외시한 채 기존 정책을 변경하기는 힘들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12월 한국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승리하면 한·미 관계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약간의 긴장 관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스타인버그 교수 프·로·필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 교수 겸 아시아연구소장 ▲맨스필드 태평양문제센터 소장 ▲국무부 국제개발처 아시아·중동 담당 책임자 ▲아시아재단 한국 사무소장 ▲미국 다트머스대·하버드대, 영국 런던대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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