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8월 초 의회 여름 휴회 전에 한·미 FTA 이행법안(비준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 아래 의회를 압박하고 있으나, 공화당은 한·미 FTA 비준안과 함게 올린 ‘무역조정지원’(TAA) 제도 연장 조항을 따로 처리해야 한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FTA가 우여곡절 끝에 미 의회 비준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태미 오버비 미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만나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움직임과 비준 전망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11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미 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백악관은 한·미 FTA 비준안을 다음 달 6일 미 의회의 여름 휴회 전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번엔 비준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나.

“전망이 매우 밝다. 긴 여행의 막바지에 서 있다. 마무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TAA 제도 연장 문제를 한·미 FTA와 병합할 것인지, 분리해 처리할 것인지의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TAA 연장 조항을 포함한 한·미 FTA 비준안을 파나마, 콜롬비아 FTA 비준안과 함께 의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 사무실에서 막바지 절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원은 6월 말 TAA 이견을 절충했으며, 민주·공화 양당 모두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만큼 TAA를 포함한 한·미 FTA 비준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낙관한다.”

―미 의회의 여름 휴회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더욱이 의회는 정부의 채무상한 조정 협상으로 여유가 없지 않나.

“의회는 현재 정부 채무상한 조정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채 상한 조정과 한·미 FTA 비준안 현안을 다루는 백악관과 의회 협상팀은 같은 사람들이다. 한·미 FTA 협상은 정부 채무상한 증액 문제에 앞서 처리될 것으로 본다. 의회의 여름 휴회 전에 비준될 것으로 본다.”

―미 상공회의소는 그동안 한·미 FTA 비준을 위해 힘썼다. 어떤 활동들을 해왔나.

“미 국민들을 상대로 한 아웃리치(outreach) 활동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한덕수 주미 대사의 도움이 컸다. 우리는 한 대사와 함께 미 38개 주를 돌며 한·미 FTA 비준 필요성을 홍보하며 여론을 움직이려 애썼다. 한국 무역협회(KITA)와 한·미 경제연구소(KEI) 등도 방문지역 선정 단계에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방문지역에서는 그 지역에 소재한 한국 수출기업과 지역구 의원, 선거구민들을 상대로 한·미 FTA 필요성과 혜택을 설파했다. 미 국민은 일반적으로 통상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FTA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이 수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FTA가 긴요하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리려 노력했고, 그 결과 미 국민의 통상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한 대사의 한·미 FTA 아웃리치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을 텐데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매우 힘든 일정이었다. 38개 주를 돌면서 어떤 날엔 일정이 오전 4시30분에 시작될 때도 있었다. 알다시피 미국 여행은 일기가 불순한 관계로 수시로 항공기 운항이 취소된다. 그럴 때마다 한 대사는 투어 버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방문 당시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4시간 가깝게 차로 이동하기도 했다. 한 대사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추진 중인 환태평양무역협정(TPP)에는 미국 외에 8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대사들과 매주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한 대사의 한·미 FTA 아웃리치 활동이 화제가 됐다. 대사들은 TPP 추진 과정에서 자신들도 한 대사를 벤치마킹하고 싶다면서 한 대사의 아웃리치 활동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한 대사와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솔직히 한 대사와는 20년지기라고 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한 대사는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총리를 역임하는 기간에 한 대사와 좋은 인연을 맺었다. 한·미 FTA 비준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그런 인연이 자양분이 됐다. 훌륭한 파트너다. 한·미 FTA는 미 상공회의소의 역점 사업이다.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끼며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뛰었다.”

―한·미 FTA가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미 자동차 업계의 반발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들은 한·미 FTA를 좋은 협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지난해 12월 한·미 FTA를 재협상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바꿨다. 이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한·미 FTA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됐다. 미 의회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어떤 의원들은 한국의 달라진 경제적 위상을 모른 채 한·미 FTA를 반대했다. 또 어떤 의원들은 북한 개성공단 제품들이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 수출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중국 제품이 개성과 서울을 거쳐 미국에 자유롭게 수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이런 오해들이 의회를 움직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한·미 FTA의 혜택을 볼 수 있나.

“한·미 FTA 협정에 따르면 현재로선 북한 생산 제품은 한·미 FTA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개성공단 제품이 한·미 FTA 적용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우선 동의해야 하며, 미 의회가 승인하고 대통령이 서명해야 한다.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북한도 변화해서 FTA 혜택을 보게 되길 원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변화해야 한다.”

―미 상공회의소는 오바마 행정부와 갈등 관계에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통상 기업계와 행정부는 자연스런 긴장 관계다. 어느 당이 백악관을 차지해도 그렇다. 기업은 대체로 재정적으로 보수적이고 같은 지향을 지닌 공화당과 친한 것으로 사실이다. 우리도 민주당 보다는 공화당과 가깝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선거자금을 후원할 때는 철저히 의원들의 투표 성향을 토대로 결정한다. 친기업 성향 의원들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지원한다. 민주당 소속 의원 중에도 한·미 FTA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다. 그 대표적 의원이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이다.”

―한국에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여론이 여전히 높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인사 중 일부는 과거에 찬성했던 인사들이다. 노무현 정부 때 협상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있고, 당시 주요 협상 파트너가 지금은 국회에서 한·미 FTA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가 그렇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선뜻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FTA는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게임은 아니다. 과거엔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았다. 형님아우 정도의 불평등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동반자 관계다. 어느 한쪽만 전적으로 이익을 보고 다른 편은 손해보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한·미 FTA는 양국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협상이다. 그래서 한국 국회에서도 종국엔 한·미 FTA를 비준해줄 것으로 믿는다.”

―한·미 FTA 발효 이후의 바람직한 한·미 통상협력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하나.

“그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미국은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호주, 싱가포르하고만 FTA를 맺고 있다. 한·미 FTA가 성사되면 한국과 세 번째 라인을 그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은 미국의 동북아 전진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을 교두보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과의 통상관계 개선 노력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에게 한국은 매우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아시아 지역에서 통상 활동을 증진하고 싶다. 한국 역시 미국을 전진기지 삼아 캐나다와 중미, 남미 공략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미 FTA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필수적이다. 한·미 FTA는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노동계는 대체로 FTA에 부정적이다. 두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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