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서'(Birther).

영어 사전에도 없는 이 단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미국 출생설을 부인하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보다 더 오른쪽에 서 있는 극우 성향 인사들이다. 지난해 중간선거 당시 미 전역에서 거세게 불었던 보수적 정치운동인 '티 파티'에도 이들 '버서'들이 대거 참여했다.

 112대 미 의회가 개원한 지난 5일(현지 시간) 개막식 취재차 연방 의사당으로 들어가다가 열성 '버서' 회원인 테레사 카오를 만났다. 그는 개막식에 참석한 의원들과 개막식을 보러온 관람객들을 상대로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 출생사실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테레사 카오
 
 그는 “출생증명서 복사본은 15달러면 발급받을 수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식 출생증명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바마는 케냐에서 출생했으며 오바마의 하와이 출생설은 1961년 하와이에 살고 있던 그의 외할머니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뒤 “의회는 당장 오바마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케냐 출생설에 관한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케냐의 저명한 인사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케냐 출생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면서 오바마 할머니인 새라 오바마와 피터 오게고 주미 케냐 대사 등을 거론했다. 
 선뜻 수용할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그 태도가 너무 진지하고 열정적이어서 한동안 그의 견해를 경청했다. 한국 특파원이라고 소개하자, "한국 언론에서 다뤄주면 너무 멋진 일이 될 것"이라면서 반겼다. 그는 기자가 개막식을 보고 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카오를 다시 만난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미 언론은 6일 카오가 미 연방 의사당 본회의장 내에서 의사 방해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미 하원의원들이 221년의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 전문을 낭독하는 역사적 순간에 “오바마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의회 경찰에게 끌려나가면서 "나는 테레사"라고 외쳤다는 문구가 그와의 우연찮은 만남을 상기시켰다. 전날 그가 써준 이름을 확인해보니 틀림없는 카오였다.
 
 하원 본회의장 방청객에 앉아있던 카오는 이날 프랭크 팰론(민주) 의원이 “미국에서 출생한 시민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대통령 피선거권 관련 헌법 조항을 낭독하는 도중 “오바마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소리쳤다. 임시 하원의장인 공화당의 마이크 심슨 의원은 의사봉을 3번 두드리며 의사 진행 방해를 금지한 하원 의사규칙을 읽었다. 그리고 의회 경찰에게 카오의 체포를 명했다.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 내에도 카오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의원들이 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이날 NBC 방송에 출연, “공화당 의원 12명이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 출생설을 믿지 않고 있는데 당신 견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와이주 정부가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태어났다고 발표한 만큼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면서 “다른 의원들의 개인적 견해는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국면이 전개되면 카오와 같은 버서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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