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이 2012년 대선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재선 도전을 선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재선 캠프를 풀가동하고 있다. 최근 당 주자들의 교통정리가 이뤄지면서 공화당 진영의 대선 경선 구도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문제 등을 이슈화하며 백악관과 민주당을 상대로 전초전을 벌이고 있다. 1971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이래 40년 동안 미국 정치 현장을 지켜온 찰스 랭걸 의원(민주·뉴욕)을 19일(현지 시간)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사무실에서 만나 미국 정치를 주제로 환담했다.


찰스 랭걸 의원과 필자


-당신은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나를 진보주의자라고 규정한다면 그 질문엔 답변할 수 없다. 무엇이 진보주의인가?”

-진보주의자는 현 상황을 지속시키기보다는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도 바꾸길 원한다. 그들도 미국의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사회보장 제도를 나쁜 방향으로 뜯어고치려 한다. 문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누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느냐다. 그렇다고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누구도 항상 옳거나, 그를 수는 없다. 당신이 내 견해를 듣고싶다면 구체적으로 현안을 특정해서 물어야 한다.”

-당신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몇몇 이슈에선 진보주의자다. 하지만 나는 (대다수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낙태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나는 정부가 가난한 사람이나 제도의 희생자들을 돕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들은 모두 좋은 교육을 받아서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들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국가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들을 진보 진영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변하고 있다. 그는 희망과 비전, 삶의 질 향상을 설파한다. 하지만 현재 보수진영에선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없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이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표한다고 보느냐. 수 많은 미국인이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그들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실상 모든 정치인들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국민들이 공화당을 선택했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국민들이 공화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유권자들은 현역 정치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내쫓아 버렸다. 일자리를 잃고 생활비는 쪼들리는데 자녀들마저 대학에서 중퇴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해보라. 꿈이 사라진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폭발했다.”

 

-내년 선거 전에 유권자들의 분노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나.

“원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권자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당명과 관계없다. 중간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공화당이 지난해 석권한 지역들은 그보다 앞선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차지했던 곳이다. 시소게임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보나.

“누가 대항마로 나서느냐가 관건이나 재선 승리를 낙관한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공정한 납세 정책을 바란다고 믿는다.(공화당은 부유층 감세 지속을, 민주당은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 부유층 감세조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보장을 포함한 사회보장 정책을 추진하길 바라고 석유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로 인해 멕시코만 연안이 기름띠로 뒤덮히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권(공화당 주지사가 배출된 일부 주에서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하는 법률이 채택되고 있다)은 헌법적 권리 이상의 천부적 권리라는 것이 대다수 미국인의 판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들(공화당)은 나처럼 믿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오바마 재선을 낙관하는 이유다.”

-최근 들어 미국 정치의 당파성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초당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날 선 대립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정치 갈등이 위험 수위다. 비정상적이다. 문제는 정치 갈등의 수위다. 일정 수준의 정치 갈등은 나쁘지 않다. 우리는 정부의 운영 방식을 결정해야만 하기 때문에 진보, 보수 진영의 치열한 갈등은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를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정치 갈등은 해롭지 않다.”

 

찰스 랭걸 의원이 19일(현지시간)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사무실에서 한국전쟁 50주년 기념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랭걸 의원 뒤로 사진을 찍는 필자의 모습이 비친다.

-한국은 민주주의 운영 측면에서 결함이 노정되고 있다. 국회의사당 내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할 정도다. 한국 정치권에 해주고싶은 말은 없는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긴장을 푸세요.(웃음). 한국에서 이뤄지는 어떤 일이든 한국인들이 스스로 풀어가야 한다.”

-미 연방하원 선거에서 내리 21선(미 연방하원의원 임기는 2년)을 기록했다. 오랜 의정 생활에서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 같다.

“지난 세월 의정 활동을 하면서 내가 정치적으로 직면했던 많은 문제는 대부분 가치, 철학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보장받아야 한다. 미국인이라면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론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은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시절에서 흑인 대통령이 배출된 시대로 진보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의원으로서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농담조로) 처음으로 의원 선서할 때였다.(웃음) 내가 추진한 법안들이 통과되는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주의)를 철폐시키기 위해 남아공 정부와 남아공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들에 징벌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주도했다. 결국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졌다. 큰 보람을 느꼈다. 아이티 군부독재 정권을 축출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미국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민권법은 거리에서 울부짖던 이들의 인권을 법제화한 것이다. 내 법안들이 가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당신도 누군가를 도울 때 그들의 고통스런 얼굴 위로 번지는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남을 돕는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인터뷰 도중 랭걸 의원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북한 해법을 놓고 확연히 갈려 있다는 말을 듣자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기자가 “보수주의자”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통일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한국이 강해지려면 사회보장 등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경쟁 원리와 공존해야 한다”면서 “한국 국민들에게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찰스 랭걸 의원 약력

·1930년 미 뉴욕 할렘 출생,,고등학교 중퇴,·한국전쟁 참전,·뉴욕대,·세인트존스대 로스쿨,·뉴욕주 검사,·뉴욕주 의회 의원,·미 연방하원의원,·미 하원 세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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