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맞춰 미국 보수 진영의 거두인 에드윈 풀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70)을 만나 한반도의 장래를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15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DC에 위치한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실에서 이뤄졌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풀너 이사장은 “북한 내부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자유의 불길이 북한 전역을 휩쓸게 될 것으로 낙관한다”면서 “한국은 한미동맹의 터전 위에서 북한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민주당 정부를 막론하고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핵 보유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고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발적으로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중국이 북한 해법의 열쇠라는 말은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중국을 움직일 것이냐다.
-북한 정권을 변화시키는 방안을 놓고는 두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한 쪽에선 단기적 ‘정권 교체’(regime change)을 선호하고 다른 한 쪽에선 당근과 채찍을 통한 점진적 ‘정권 진화’(regime evolution)를 추구한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끝장내는 과정을 워싱턴에서 지켜봤다.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말했듯이, 우리는 총 한 방 안쏘고 냉전에서 승리했다. 서울과 워싱턴, 동경은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연평도 주민들에게 대포를 쏘는 평양의 불량 정권과 함께 갈 수 없다. 향후 한반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나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이 한미동맹의 터전 위에서 북한에 단호히 맞서고 중국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평화적인 북한 정권의 붕괴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통신 혁명 덕분에 많은 북한 주민들이 휴대폰을 이용해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삶과 미래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풀너 이사장과 필자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해외 순방길에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도 같은 생각인가.
-미국은 소련 붕괴 이래 그 어느 나라도 대등하게 맞설 수 없는 ‘극초강국’(hyperpower)이 됐다. 하지만 요즘은 중국이 수 십 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유행이다.
“그런 전망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 경제는 분명 인도 경제 보다 규모가 크고 성장세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으며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신중하다.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매우 오랫동안 정상을 지킬 것이다.”
-올 해는 유난히도 미중 관계가 삐걱거린 한 해였다. 바람직한 미중 관계상은 무엇인가.
“미국은 중국에게 우리의 관심사가 동북아 안정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태평양 권역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미국은 100년 이상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할 수는 없다. 그 곳엔 항상 미국이 있을 것이다.”
-한일 관계는 역사적 멍에를 여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이 과거와 달리 동등한 위치까지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 있는 일본인들은 과거 속에 살고 있다. 이전의 한일 관계에 매몰돼 있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현대식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민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미 국민들은 지금 보수주의로 향하고 있다. 미국에선 사상의 경쟁력이 치열하다. 진보, 보수 양측이 이데올로기 경쟁을 통해 미국의 정책을 결정한다. 지난 선거에서 보수주의가 승리한 것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미국인들에게 너무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큰 정부 기조'는 미국의 전통에 배치되는 것이다. 미 헌법 이념과도 맞지 않는다. 헤리티지 재단에서는 독립선언문과 미 헌법이 수록된 450만 부의 소책자를 국민들에게 전파했다.”
-당신을 잘 아는 지인이 언젠가 기자와 만나 당신이 사석에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안타까워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서도 한 때 젊고 혈기가 넘치는 의원들이 칼을 휘두르며 싸우곤 했다. 한국 국회의사당에 갔을 때, 한국의 의원들이 충돌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성장통으로 본다. 미국 헌법은 23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 보다 역사가 짧다. 정치적 자유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미국이 더 많은 시간 동안 민주주의를 해오고 있다.”
◆풀너 이사장
1977년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에 취임, 헤리티지 재단을 미국 굴지의 싱크탱크로 성장시켰다. 당시 9명에 불과했던 직원은 255명으로 늘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으로 레지스대(영문학)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경영학 석사), 에든버러대(정치학 박사)에서 수학했다. GQ 매거진이 2007년 워싱턴에서 가장 힘 있는 인사 50인에 포함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한미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저서로 ‘자유의 행진’, ‘미국을 위한 리더십’ 등이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후기:풀너 이사장은 인터뷰가 끝난 뒤 미국 헌법과 독립선언서 복사본인 소책자와 자신의 저서인 '미국 바로 세우기'(GETTING AMERICA RIGHT)를 기자의 손에 들려줬다. 그의 손 때가 묻은 헌법 복사본은 겉장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닳아 있었다. 그는 "미국을 움직이는 보수주의를 이해하려면 꼭 읽어봐야 할 것"이라면서 싱긋 웃었다. 헤리티지 재단이 유력 정치인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면 지금의 헤리티지는 없을 것이다. 특정 정치인의 대선용으로 급조됐다가 명멸해간 여의도 주변의 그 수 많은 연구소들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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