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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L 스팀슨 연구소의 링컨 블룸필드 회장이 워싱턴 DC 연구소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북핵 문제 등 국제적인 안보 이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핵 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며 전 세계 핵무기 감축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스팀슨 연구소도 핵무기 감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핵무기 감축 구상은 실현 가능한 것인가.
“오바마 정부의 핵무기 제로 구상은 조지 슐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나 샘 넌 전 상원의원 등이 주도한 핵무기 감축 구상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다. 이 구상은 성공이냐, 실패냐로 일도양단할 사안이 아니다. 핵무기 보유국들이 체계적인 공조를 통해 단계적으로 성사시켜 나가야 할 사안이다.
미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열강은 50년 전에 핵 위협 및 억제 전략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이제 핵무기는 더 이상 유용한 외교정책 수단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50년 전의 낡은 핵무기 위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지난해 12월 북미 고위급 회담 개최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강인하고 직접적인’ 대북 정책 기조가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바마 정부는 가장 위험한 한반도 현안인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진영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그를 알고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그만한 인물이 없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오바마 정부는 지금 북한에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북한이 1994년 북핵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공동성명 합의를 어기면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신뢰 회복 조치 없이 북핵 상황을 진전시켜 나갈 수 없는 입장이다. 이제는 북한이 신뢰를 보여야 할 때다.”
―이란 핵문제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그 누구도 이란 정부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는다.
“테헤란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미국 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하지만 지난해 이란의 대선 과정에서 이란 국민들이 반정부 투쟁에 나서고 이란 정부가 시위대를 강경진압하는 상황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는 이란 핵 사태의 새로운 국면이다.
석유 자원과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이란의 집권층은 급속히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은 모두 적법한 정부를 국민이 선출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으나 이란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은 이란의 향후 행동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이란이 무모한 핵개발을 지속한다면 모든 옵션이 열려 있다. 미국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동 지역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것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미국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은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테러리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전개하고 있는 군사적 조치도 중요하지만 이번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에 연루된 나이지리아 청년의 경우처럼, 왜 중동의 젊은이들이 테러리스트로 변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무고한 탑승객을 목표로 한 나이지리아 젊은이는 어리석은 희생양이다. 그를 테러 현장으로 내몬 이슬람 성직자는 부도덕한 이슬람의 전형이다. 그들은 지금도 예멘의 은신처에서 또 다른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중동의 동맹국들이 젊은이들의 급진화를 막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 출범 이후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일 관계가 전례없는 갈등을 겪고 있는데.
“미일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양국 국민 간의 관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중국이나 이란, 북한이 제기하는 도전들을 말할 때, 그 것은 민주적 제도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일본은 민주적 제도 하에서 국민의 정부를 창출했다. 하토야마 정부는 오랫동안 그들이 반대했던 정책들을 재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를 반미주의가 아닌 일본 정치의 건강한 진화로 간주한다. 후텐마 이슈는 도전적이기는 하나 미일 관계를 해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종국에는 일본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이 도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이 중국 정부의 검열 문제에 반발하면서 미중 양국 사이에 갈등 국면이 전개됐다. 이번 ‘구글 사태’는 중국이 과연 미국과 함께 이른바 ‘G2’(주요 2개국)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을 낳고 있다.
“G2는 다분히 상징적 개념이다. 일당주의 국가인 중국은 모든 비용을 치르더라도 권력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경직된 자세로는 사회적·경제적 어려움, 재난, 국제적 도전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나는 16억 중국 국민이 자유롭게 외부 세계와 교류하길 원한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 정부의 자국 국민에 대한 인권 침해나 언론 탄압, 인근 국가 주권 침해 등을 용인해선 안 된다. 이로 인한 미중 양국의 갈등이 양측의 위험한 대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중 양국은 다양한 수준에서 많은 대화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한국 내에서는 ‘사용 후 핵 연료’의 재처리가 원천 금지돼 있다. 한국 정부는 2014년 만료되는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도 일본처럼 국내에서 재처리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보나.
“이 문제는 한국을 특정해서 접근하기보다는 핵 비확산 체제 유지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2006년 이후 이란을 비롯한 수많은 중동 국가들이 민수용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으며, 곧바로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문제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고려할 때, 한국의 목소리는 핵 비확산 체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한국뿐 아니라 개별 국가들이 각자의 국익에 따른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국제적 규범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북한이나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가 더욱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견해가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보유해 온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2012년 4월 한국에 넘길 계획이다. 한국 내에서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불안정한 안보 환경 등을 이유로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전작권과 같은 현안은 한미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할 필요가 있다면 한미 양국의 충분한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점에 관해 한국 내 여론이 충분한 합의를 이루고 있지 않다고 본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한미 동맹은 더욱 강력한 동맹으로 남을 것이며 전작권 전환이 한반도 안보를 결코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미 프레처 스쿨 법학·국제관 계학 석사, 1988년 미 국무부 국제안보분야 수석 부차관보, 1991년 댄 퀘일 미 부통령 안보분야 보좌관(부차관보), 1992년 국무부 극동담당 부차관보, 2001년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차관보, 현 스팀슨 연구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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