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전역의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만년 꼴찌를 면치 못했던 미 워싱턴 DC 공립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향상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외면 속에 매년 감소 추세이던 학생 수도 올 들어 3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국계인 미셸 리(40)가 워싱턴 DC 교육감으로 부임한 이후 생긴 변화들이다. 미셸 리 교육감의 29개월 재임 기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공교육 개혁이 한국 공교육 현장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그를 지난 11월10일 워싱턴 DC 교육청에서 만났다. 이날 인터뷰는 이종걸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과 미셸 리 교육감의 면담 석상에서 이뤄졌다.
-
◇미셸 리 교육감이 표지인물로 나온 2008년 12월8일자 타임지.
세계일보 자료사진
“인종과 소득 변수가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면, 내가 처음 이곳 교육감으로 부임해 왔을 때 (관내 공립 고등학교의)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의 학업 성취도 격차가 무려 70%포인트에 달했다. 저소득층 자녀들이 많은 학교는 시설도 형편없고 학업 성취도 역시 낮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그 격차를 50%포인트까지 줄였다. 물론 여전히 격차가 큰 편이다. 그 격차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5년 뒤엔 그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본다. 인종과 사회경제적 수준이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최대 도전 과제이다.”
- ―어떤 수단으로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나.
“우리는 올해 새로운 교사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과거의 교사 평가 시스템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부임했을 때 (9학년 학생의) 8%만이 수학 성취도 평가를 통과했다. 92%는 일정 기준 이하의 성적을 냈다는 의미다. 그래서 교사 평가의 50%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결과와 연동시켰다.
많은 교사들이 이런 방식을 싫어했다. 많은 교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임하기보다는 ‘내가 맡은 학생은 가난한 집 아이라서 방과후 학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등 학생들의 학업 부진을 학생 탓으로 돌리며 변명거리를 내세우기 바빴다.
그런 교사들에게 나는 ‘아이들이 가난하다는 등의 이유로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당신이 믿는다면, 당신은 교사 대신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교사라면, 그런 난관과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미셸 리 워싱턴 DC 교육감이 지난 10일 워싱턴 DC 시내에 위치한 교육청 면담실에서 공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 ―교사 노조와 갈등이 심하다고 들었다. 교육 개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사 노조나 워싱턴 DC 의회,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력해야 하지 않나.
“모두가 조화롭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 임무는 교사 노조도 시 의회도 아닌,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일부 어른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옳은 결정들을 내려왔다. 누군가는 정치적 이유나 다른 미친 짓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노조나 시 의회는 나에게 골이 나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욕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어려서부터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았다. 최근엔 예산 부족 탓에 교사를 해고해야만 했다.”(그는 지난달 3일, 시 의회가 ‘서머스쿨’ 예산을 줄이자, ‘학업능력이 뒤처진 학생들을 위한 서머스쿨은 폐지할 수 없다’면서 대신 교장과 교사 등 388명을 해고했다.)
- ―어떤 교사들을 해고했나.
“기존의 해고 관행은 오래된 교사 대신 경력이 짧은 교사를 먼저 해고하는 식이었다. 나는 이런 방식이 전략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참 교사가 나쁜 교사도 아니고 오래된 교사가 좋은 교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워싱턴 DC의 공교육은 엉망이었다. 현 교육 시스템 안에서 30년을 지낸 교사는 30년 동안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해온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같은 ‘연공서열’ 방식의 해고 관행을 깨뜨리고 ‘연공’(seniority)이 아닌 ‘질’(quality)에 근거한 해고 방식을 도입했다. 교사들은 이런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옳은 일이었다.
교육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면 교사 노조나 시 의회가 반발하더라도 앞으로도 주저없이 이런 결정을 내릴 작정이다. 교사 노조나 시 의회가 그동안 잘 지내면서 무슨 결과를 낳았는가? 그들은 아이들에게 나쁜 결과를 만들어냈다.”
- ―교육 개혁을 점진적으로 하는 대신 충격적인 방식으로 진행한 것 같다.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었는가.
“점진적인 방식이 필요한 지역도 있을 것이다.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같은 곳이다. 그 곳은 학생들의 80% 이상이 학년별 학업 성취도 평가를 통과한다. 그 비율을 80%에서 82%, 84%, 86%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면 바람직한 진보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8%다. 2%씩 매년 올린다면 5년 뒤에도 18%밖에 안 된다. 워싱턴 DC처럼 학업 성취도가 낮은 곳에선 그런 식의 점진적인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내가 만약 학부모라면 10년, 20년 뒤에나 성과물이 나오는 지역의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지 않는다.”
- ―공립학교가 사립학교와 같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나.
“만약 우리가 사립학교와 같은 자율성을 확보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사립학교는 그들이 원하는 교사를 뽑고, 그렇지 않은 교사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
반면에 공립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교사를 선택할 능력을 제한당하고 있다. 수많은 규정과 규칙들이 장애물로 작용한다. 우리를 보다 자유롭게 해준다면 우리는 확실히 사립학교 못지 않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 ―한국 공교육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한국 교육 체계를 이곳만큼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2008년 4월 뉴욕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이 나에게 지적한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이 대통령은 한국 내에서 사회경제적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진다는 언급을 했다. 한국에 있는 내 사촌들은 그들의 자녀를 방과 후나 주말에 학원에 보내고 있다. 학원은 돈이 많이 든다. 만약 아이들의 성공이 부모가 제공할 자원의 유무에 좌우된다면 그런 사회는 시스템의 붕괴를 낳을 것이다. 미국 교육에 인종 변수가 있듯이, 한국 교육엔 경제적 변수가 있는 것이다. 인종 변수든, 경제 변수든 민주적 사회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교육 시스템이 이런 변수들을 평등하게 만들어 주는 ‘평형장치’(equalizer) 역할을 하는 사회라야 민주적 사회라고 생각한다.
공교육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은 빈부에 관계없이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공교육 시스템이 열등해서 돈으로 구입하는 다른 추가적인 것으로 공교육을 보충해야만 한다면, 그런 상황은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한다.
학교 수업을 통해 최상의 교육이 이뤄져야만 그런 불평등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한국 아이들은 너무 많은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특히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미셸 리 교육감 경력
1969년 미시간주 출생, 코넬 대학 졸업,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공공정책),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미국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교사 활동, ‘새로운 교사 프로젝트’ 창설해 10년 동안 1만명 이상 교사 배출, 2007년 6월 워싱턴DC 교육감
'조기자가 만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스시붐 주역인 야시로 사장 (0) | 2010.12.27 |
---|---|
한국전 참전용사, 찰스 랑겔 미 하원의원 (0) | 2010.06.12 |
펀치볼 용장, 존 놀런 변호사 (0) | 2010.06.01 |
‘美 안보 싱크탱크’ 스팀슨 연구소 블룸필드 회장 (0) | 2010.02.06 |
로스-레티넨 미 연방 하원의원의 사랑방 후원회 (0) | 2009.11.04 |
민디 코틀러, 일본의 각성을 촉구하다 (0) | 2009.09.06 |
이민 1.5세대 해너 킴, 미 의회를 움직이다 (0) | 2009.07.28 |
미국진보센터(CAP) 루디 드리온 부소장 (0) | 2009.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