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 대표(사진)는 8월 11일 “현재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나 르완다 등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강간 행위와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면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국의 과거사 갈등 현안으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틀러 대표는 광복 64주년을 앞두고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하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현재 진행형인 국제적, 보편적 인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하원을 비롯, 유럽연합과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의회 등이 결의안을 통해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사과를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2007년 당시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했던 마이클 혼다 의원은 결의안을 계기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다. 그것은 현명한 접근법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 문제를 회피했다. 무시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무시 정책이 일본에게 득이 되는가.

“그들은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가 21세기 들어 보편적 인권 문제로 부상했다는 점을 일본은 간과하고 있다. 르완다나 콩코, 다르푸르, 보스니아 등지에서 자행되는 강간 범죄가 거의 매일 신문을 장식하고 CNN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그 위로 한국과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의 종군 위안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 인권은 민주화된 나라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등에 지고 있는 일본의 부담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이 나온 지 2년이 됐다. 그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가.

“결의안 통과 당시 힘을 모은 미국 내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안 공동체의 결속력이 커졌다. 위안부라는 대의 아래 무려 200여개의 그룹이 뭉쳤다. 전쟁 중이라도 강간은 범죄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고양되고 지난해 그런 취지의 유엔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것도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낸 아시안 공동체의 역량 덕분이다. 유엔 결의안 통과 직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기조 연설을 했을 정도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한 목소리를 내게됐다. 사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중국의 과거사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만큼 이 위안부 문제는 미국의 안보와도 관련돼 있다.”

-위안부 활동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위안부 활동 이후 일본인들 사이에서 솔직히 ‘왕따’가 됐다. 일본측 기금에 의존하는 연구소들이 언제부턴가 나를 초청 대상에서 제외하기 시작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내가 운영하는 아시아폴리시포인트 회원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위안부 활동에 관여한 일을 후회하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아시아 여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내가 치른 얼마간의 희생은 미미한 것이다. 누군가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하지 않겠나.”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특파원 리포트]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9월 4일자 한국 관련 기사에서 동해 대신 ‘일본해(Sea of Japan)’를 표기한 지도를 게재했다.

문제의 지도가 첨부된 NYT의 기사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 활동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예산 축소와 정치권의 관심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기사와 일본해 표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NYT의 외교안보 전문기자인 데이비드 생거도 지난 6월16일자 기사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 언급을 인용, “미국은 ‘일본해’에서 북한 선박과 화물선을 추적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력과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썼다. 일본해 단독 표기는 NYT의 관행이다. 미국의 다른 유력 신문과 소속 기자들도 거의 모두가 이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연안호 선원 석방’ 기사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행 표기하면서 동해를 앞세웠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뉴스거리가 되는 게 작금의 미 언론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관행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동해 알리기’ 광고를 게재한 가수 김장훈씨와 같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개선될 수 있는 장기적 과제다.

한일 과거사 현안과 관련된 미국 내의 ‘일본 편향’ 기류가 미 언론의 문제만은 아니다. 워싱턴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일 과거사 관련 활동가들은 미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일 과거사 현안에 눈을 감거나 ‘일본 편향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07년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 대표는 지난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지일파 관료들과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위안부 결의안에 반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코틀러 대표가 실명으로 지목한 한 싱크탱크 인사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국무부 요직에 발탁됐다. 부시 행정부에서 동아시아 현안을 담당했던 인사는 정권이 바뀐 뒤 싱크탱크로 돌아갔다. 미 예일대에서 국제 관계학를 전공한 코틀러 대표는 누구보다 일본을 좋아하는 국제관계 전문가다. 처음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어느 일본인 가정집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 그였지만,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신념으로 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가 운영하는 연구소의 일본계 후원금이 뚝 끊겼다. 어떤 싱크탱크들은 행사 초청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미 정부 내의 일부 관료와 싱크탱크, 미 언론이 일본을 중심으로 한통속이 되어 돌아가는 요란한 만화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일본의 선거혁명으로 철옹성 같던 자민당 체제가 54년 만에 무너지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질적으로 변화된 일본의 새 정부를 맞아 신미일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워싱턴 외교가는 ‘대등한 미일 관계’를 내세운 하토야마 유키오 차기 일본 총리 시대에도 부시 정부 시절의 굳건했던 미일 동맹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전망하는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가 부시 정부의 미일 관계를 복원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선 곤란하다.

34년 동안 일본 외교관으로 봉직한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는 미 프린스턴대 교수 시절인 2006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밀월관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역사왜곡과 신사참배 같은 과거사 문제로 이웃인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는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만 주력하는 일본 정부의 외교 정책은 잘못됐다고 진단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일본의 안하무인격인 처신은 미국의 침묵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일본이 한, 중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아시아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 부시 정부의 잘못된 외교 정책을 정상화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 현안에 눈감았던 부시·고이즈미 밀월 기조에서 탈피, 미래 지향적인 동북아 정책 구상을 펼쳐보이길 기대한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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