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를 분발시킨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인생이 짧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아이작슨과 필자

애플의 공동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애스펀 연구소에서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잡스의 전기를 쓰며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잡스의 삶과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아이작슨은 1984년 시사주간 타임의 기자 시절 잡스와 인연을 맺었으며 타임 편집장, CNN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애스펀연구소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잡스의 요청으로 그의 전기를 쓰게 된 아이작슨은 잡스를 약 50차례 인터뷰했다고 한다. 100명이 넘는 주변 인물도 취재했다. 아이작슨은 “그의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전기에 쓰고 있는 내용을 말해줬다”며 “그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긴 하지만 괜찮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잡스가 유일하게 관여한 부분은 책 표지였다. 그는 단순하고 세련된 표지를 원했다고 한다.

잡스는 죽음 앞에서 담담했다고 한다. 아이작슨은 “그는 암에 걸리기 전에도 죽음에 관한 얘기를 자주 했으며, 우리는 태어나고 죽으며 아주 짧은 삶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열정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또 “선불교 수련을 쌓은 때문인지 잡스는 윤회를 믿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그 무엇이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에 대해 강점과 약점을 모두 지닌 까다로운 인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잡스는 반문화적 인간이었다. 나는 그런 잡스의 성향이 애플이나 IT 세계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했다.

"그의 반사회적 성향은 잡스를 매우 흥미롭게 하는 한 요소이다. 잡스는 히피 이기도 했다. 잡스는 1960년대 말의 반체제 운동, 히피 운동과 실리콘밸리의 공학, 기술 운동을 하나로 합치려 했고, 그것이 바로 애플 조직의 정수(essence)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을 읽다보니 잡스는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학생으로서, 특히 조직의 보스로서 통상적인 모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작슨은 "그는 보스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모델은 아니다. 모든 이는 모든 다른 유형의 인간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잡스에게는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있었다. 아이작슨의 설명이다.

 “그는 누구보다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잡스의 창조성은 다른 생각을 하는 능력,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왔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는 컴퓨터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컴퓨터 업계를 변화시켰고, 뮤직 플레이어와 휴대 전화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음악 산업과 휴대 전화산업을 변화시켰다. 나아가  디지털 북과 디지털 무비로 영역을 넓힌 그는 출판 산업과 영화 산업 전반을 변모시켰다.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애플의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다른 것을 생각(Think Different)’한 천재였다”
 
전기를 쓰는 과정에서 잡스에게 경도된 것은 아닐까.

그는 “감정적으로 그에게 끌린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에 근거해 최대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잡스 전기에는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잡스를 입양한 양부모와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선불교 스승인 스즈키 순류, 그리고 잡스와 인연을 맺은 여러 여인들….
아이작슨은 잡스의 현재 부인인 로런 파월이 잡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그의 낭만적이면서도 통념을 거스르는 성향과 과학적이고 사무적인 성향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그녀는 잡스의 낭만적이고 반사회적이며, 감각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 비즈니스적 성향을 뒷받침했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아이작슨은 잡스와 빌 게이츠의 관계를 '연성계'(連星系)라는 개념을 빌어 표현했다. 연성계는 두 별이 중력의 상호작용 때문에 궤도가 서로 얽히는 현상을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이다. 잡스와 게이츠 두 사람은 IT 기술과 비즈니스가 합류하는 영역에서 등장한 두 거성이었다. 20세기 물리학 세계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초기 미국 정계의 토머스 제퍼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의 관계처럼.

"잡스와 게이츠는 아주 강한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다. 경쟁하는 사이인 동시에 존경하는 사이였다. 1970년대 중반에 만나 35년 이상 지속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잡스가 죽기 2개월 전이다. 게이츠가 잡스를 찾았다.
잡스가 더욱 예술적이고 열정적이며 미학적 취향을 가졌다면, 게이츠는 비즈니스 지향적 인물이었다. 잡스는 게이츠를 존경했다."

아이작슨은 잡스 없는 애플의 미래를 “향후 5년에서 10년은 번성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잡스는 생전에 삼성과 치열한 지식재산권 전투를 벌였다. 그럼에도 잡스의 전기에는 삼성 관련 언급이 없다. 아이작슨은 “잡스는 삼성을 애플의 훌륭한 동반자로 생각했지만, 삼성과 대만 기업 HTC 등이 사용한 안드로이드가 애플의 운영체제를 도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분개했다”면서 “하지만 자서전 집필 과정에서는 잡스가 삼성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전기에서 “잡스가 너무 긴장해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적은 가수 밥 딜런을 만났을 때 뿐”이라고 썼다. 잡스는 왜 밥 딜런에게 열광했을까. 아이작슨은 “잡스는 밥 딜런이 자신의 세대를 대변한 반항아이자 시인이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밥 딜런이 계속 변화했다는 점을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잡스의 죽음은 그가 비틀스 멤버 중 가장 좋아했던 존 레넌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한 기업인의 죽음이 이토록 큰 파문을 세상에 일으킨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아이작슨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잡스는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과 감성적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전 세계인들은 그가 만든 아이폰, 아이팟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그토록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제품들을 만들어낸 주인공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존 레넌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같은 분위기이다. 내가 존 레넌이 죽었을 때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자신을 전기작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내가 언론인이라는 점 때문에 부탁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내가 벤저민 프랭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헨리 키신저 등에 대한 전기를 쓴 적이 있고, 다른 사람들게 질문을 하고, 또 그들로부터 얘기를 이끌어내는데 능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는 또 자신의 전기가 객관적인 책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지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기를 순수 역사학자에게 맡기지 않은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오 와우'(Oh Wow)라고 세 번 외쳤다고 한다.
 아이작슨은 "그 의미는 누구도 추정할 수 없다. 잡스는 종종 '삶은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말하곤 했다. 잡스의 삶 중 일부도 거대한 미스터리이다."

 잡스는 젊은 시절부터 영적인 인간이었다. 인도로 자아 찾기 순례를 떠나기도 하고 단식과 금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려 애썼다. 채식주의를 고집한 이면엔 이런 영적 성향이 깔려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었을까. 아이작슨의 대답이다. "그는 선불교 수련을 쌓은 때문인지 윤회를 믿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그 무엇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인생이 전원 스위치처럼 꺼지면 공(空)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을 믿었느냐고 묻는다면 '50 대 50'이었다. ”

 잡스 전기의 마지막 대목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또 한 번 멈췄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민음사, 안진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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