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출신 인사의 변호사 개업 문제가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돼온 ‘전관예우’ 관행과 맞물리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총리 후보자인 안대희 전 대법관이 대형 로펌에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낙마한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전직 대법관의 돈벌이에 부정적이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대법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개업조차 막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만나 그의 반대 논리를 들어봤다. 변협이 최근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조치와 관련해법조계 안팎에서는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는 오히려 “대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도 전관예우 적폐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변호사 개업을 만류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31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 회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공익 활동을 하기 위해 변호사 개업 신고를 했는데 이를 철회하라는 변협의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공익 목적의 활동은 변호사 등록만으로 가능하다. 굳이 변호사 개업을 하겠다는 것은 사익을 취하기 위해 사건을 수임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전관예우’ 폐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면 개업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지난 30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 모습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은 대법원 상고사건(2심 판결에 대한 불복신청으로 대법원에 제기)을 거의 독점한다. 일반 변호사에게서 상고사건을 의뢰받고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도장값’으로 수천만원을 받는다. 재작년까지 3000만원이었는데 작년에 5000만원까지 올랐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무리 대법관 출신 변호사라고 해도 도장값으로 3000만원이면 너무 많지 않나.
“지금은 대법관 출신들이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다보니 그러지 않는 몇 사람이 상고사건을 독점한다. 그래서 도장값이 올라가는 것이다. 도장값 수천만원은 최종판결을 앞둔 소송 당사자인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대부분은 주위에서 빌리거나 대출을 받아서 어렵게 마련한다. 최고 법관으로 재직하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젊은 변호사들은 이런 사실 앞에서 절망하고 있다. 후배 법관들은 전직 대법관 도장이 찍힌 사건 앞에서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
―변호사 숫자가 늘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더 증폭되고 있는 것 같다.
“로스쿨이생기고 변호사가 양산되면서 등록변호사가 2만명을 훌쩍 넘었다. 광복 이후 변호사가 1만명이 되는 데 100년이 걸렸는데, 2만명 되는 데 8년밖에 안 걸렸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6년이면 3만명 된다. 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변호사 배출 숫자에서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은 1810명인데 우리는 근 2500명이다.”
―변호사 수가 늘면 국민에게 더 많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나.
“그건 이상적인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재작년 로스쿨 출신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에 아직 취업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수습 때 100만원 받고 일했던 변호사가 정식 채용이 안 돼서 계속 100만원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고급 인력인데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제대로 활용할 방안은 없나.”
“지금은 국가소송을 변호사 자격 없는 공무원이 수행하고 있는데 이래서는 국가가 패소할 확률이 높다. 미국에서는 행정부 안에 변호사 일자리가 많다. 국가가 당사자인 소송은 변호사 자격 있는 사람이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행정부 공무원들이 반대한다. 자기네 밥그릇이니까. 노무현정부에서 가동됐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행정부 내 법무담당관을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로 임명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이 법안은 행정부 법무담당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해서 무산됐다.”
―변호사들이 너무 좋은 일자리만 찾아다니는 것 아닌가. 공익적 일자리도 있는데.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월 200만원 준다고 해도 달려올 변호사들이 많다. 실제 변협 관련 재단에는 월 200만원 받고 일하는 변호사가 있다. 지금은 그런 자리도 없다는 게 문제다. 얼마 전에 부산시에서 7급 계약직 변호사를 공채했다. 초창기엔 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7급엔 지원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일부 있었지만 지금은 간다. 일자리가 없으니까.”
―행정부에서 변호사 직역을 확대하면 사법시험은 폐지해도 되나.
“사시와 로스쿨은 다른 문제다. 서민의 아들딸이 판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놔야 한다. 사시 존치는 서민 정책이다. (책상 서랍에서 편지 한묶음을 꺼내보이며) 고등학생들이 내게 보낸 편지들인데, 집안이 가난해서 로스쿨엔 갈 수 없지만 꼭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다.(하 회장은 농부의 아들이다)”
―실력 없는 로스쿨 졸업생이 판사나 검사로 임용됐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판검사 임용뿐만 아니라 일류 로펌에 들어간다든가, 사시 1차도 합격하지 못한 사람이 로스쿨을 거쳐 판사가 된 케이스가 있다. 자격 미달자가 유명 로펌 ×××에 들어가 있고,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로스쿨 출신이 치르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로스쿨 출신을 법관으로 채용하고도 누굴 판사로 임용했는지 공개를 안 한다. 이러니 로스쿨 제도 자체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임용 즉시 공개해야 한다.”
―로스쿨 출신과 사시 출신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로가 상대 탓에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사시 출신은 로스쿨 출신 때문에 자기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로스쿨 출신은 반대로 연수원 출신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협이 ‘김영란법’(공직자의 금품수수 및 부정청탁 방지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김영란법 자체는 환영한다. 검사가 벤츠를 받아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 그런데 위헌적 요소가 있다. 왜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하나. 내가 대한변협 신문 발행인이고 변협 공보이사가 편집인이다. 우리처럼 정부 예산 한 푼도 받지 않는 민간 언론이 왜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하나. 본래 김영란법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언론은 공공성이 강한 곳이어서 들어간 것 아닌가.
“그런 논리라면 언론 외에도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민단체도 들어가야 하고, 의료·법률·공기업도 다 포함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공무원인데 왜 빠졌나. 한마디로 과잉입법이다.”
―‘법관평가제’가 호평을 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 운용하고 있나.
“사건 담당 변호사가 항목별로 재판장을 평가한다. 판사가 “늙으면 죽어야지”, 이런 발언을 하면 밑에다가 적게 돼 있다. 평가표를 모아서 점수를 매긴다. 지금은 인터넷, 모바일로도 평가한다. 베스트(best) 법관 10명씩 뽑아서 발표한다.”
―워스트(worst) 법관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그러려고 했는데 난리가 났다. 대신 법원이 자체적으로 법관 평가를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3년 전 워스트 법관 한 명은 승진에서 탈락했고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아서 승진 대상이었는데 전보 조치된 사례도 있다. 법관 평가 이후 법정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검사도 사실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인데 평가해야 하지 않나.
“사실은 검사 평가가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할 때 구타도 했다. 지금도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 변론권이 침해되고 있다. 인권 침해 요소가 있었는지, 회유·압박이 있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올해가 영국 귀족들이 왕을 굴복시켜 승인 받은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정 8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확히 800년 되던 지난 2월23일 변협 회장에 취임했다. 소명으로 알고 검사 평가도 정착시키겠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김민순 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1954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25회, 변호사 개업(1986) ▲서울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1997),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2001),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2003), 법무부 법무행정혁신자문위원(2005), 방송위원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방송심의위원(2006), 서울지방변호사회장(2007),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저서 ‘하창우 변호사의 변호사 길라잡이’
'조기자가 만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0) | 2015.12.29 |
---|---|
김승희 식품의약품안전처장 (0) | 2015.10.27 |
강신명 경찰청장 (0) | 2015.08.19 |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0) | 2015.06.17 |
이종찬 전 국정원장 (0) | 2015.03.04 |
문정인 연세대 교수,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대담 (0) | 2015.02.04 |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0) | 2015.01.01 |
유현석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0) | 201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