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취업 사다리가 사라지거나 취약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 불황이 심화한 데다 섣부른 현장실습 제도의 변화 등이 고졸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또 임금과 직장 내 차별 등 대졸과 고졸 계층 간 격차가 커지면서 직업계고 학생들이 취업보다 진학을 선택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계고 졸업생, 취업보다 대학 진학에 발길 돌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특성화고 461개교와 마이스터교 45개교, 일반고 직업반 70개고를 포함한 전국 576개 직업계고 졸업생 8만9998명 중 2만4938명만 직장을 얻는 데 성공했다. 졸업자 취업률은 27.7%에 불과했다. 이 비율은 2009년 16.7%에서 2017년 50.6%로 꾸준히 상승한 뒤 하락세로 돌아섰다. 반면 직업계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높아졌다. 지난해 대학 진학을 선택한 학생은 취업자보다 많은 3만8215명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졸업자 중 42.5%가 대학을 선택했다. 취업자보다 14.8%포인트나 높다.

직업계고는 고졸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만큼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와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예컨대 특수목적고에 속하는 마이스터고도 졸업 이후 우수 기업 취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산업수요 맞춤형 고교다. 하지만 취업률이 낮아지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계고 졸업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우선 오랜 경기 침체와 다닐 만한 직장의 취업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계에서는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사업체의 경영 부담을 가중 시킨 것도 고졸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고졸 채용 시장의 한 축인 중소기업 현장만 해도 매출은 제자리인데 실습학생의 교육비용과 정규직 채용 후 급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2018년 16.4%, 2019년 10.9%나 오르는 등 채용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기술인력을 육성하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고졸 신입에게 줘야 할 급여가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정규직 청년을 고용하면 평생 책임져야 하는데, 정부는 2∼3년 급여 일부만 지원해주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실습형 현장학습이 학습형으로 전환된 이후 기업에서 채용을 줄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통 현장학습은 채용으로 이어져 왔다. 정부는 2017년 11월 제주도에서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현장실습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복잡하고 깐깐한 현장 점검이 늘었고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절차도 까다로워졌다. 그 결과, 2016년 6만16명이던 현장실습 참여 학생은 2019년 2만2479명으로 줄었다.

◆학력 차별 여전한 기업문화도 문제

학력에 따른 처우 등의 차별이 여전한 기업문화도 직업계고 졸업생이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실천단장은 “어디를 가나 인력을 정리할 때 고졸부터 자른다고 얘기를 한다”며 “똑같은 직무를 하더라도 고졸자와 대졸자의 월급에 차이가 나고 승진과 승급 체계가 다른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 고졸과 대졸의 평균 임금 차이는 벌어지고 있다. 2015년 정규직 기준 고졸과 대졸의 월급 차이는 98만2000원이었지만 2019년에는 104만9000원으로 늘어났다.

지방의 한 업체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했던 백모(24)씨는 “마이스터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군대 문제로 핀잔을 받았고, 신입사원 회식 땐 ‘애들은 오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군 전역 후에 기능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취업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낮아진 대학 문턱도 영향을 미쳤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대학에서 직업계고 학생들을 정원외로 선발해 같은 조건의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데다가 선택과목도 직업탐구여서 일반계 고등학생들보다 성적을 내기 유리하다”며 “내신 관리만 어느 정도 돼 있다면 수능에서 6∼7등급을 받아도 중위권 대학 이상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이 어려운 대졸자들이 소위 ‘하향취업’을 하는 바람에 직업계고 졸업자들의 취업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은 그럴 가능성이 작다고 분석했다.

박근영 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센터소장은 “직업계고 학생들은 특정 기술과 관련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대졸자들의 하향취업은 전문지식이나 기술과 상관없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직종에서 다수 발생하고 있다”며 “구직시장에서 대졸자와 직업계고 졸업생이 겹치는 부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률에 미치는 영향 역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관, 취업지원 협력체계 구축… 기업문화 개선해야

일자리 미스매치와 청년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 등장한 직업계 고등학교가 제 역할을 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의 취업지원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고졸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기업문화와 사회적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확한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관련 통계는 지난해부터 작성됐다. 교육부가 지난해 국가승인통계로 전환하면서 직업계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정확한 통계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그 전에 고졸 취업률은 일선 교사들이 직접 수기로 작성한 통계를 교육부가 취합한 형태였다. 일선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취업 약정서를 받아만 와도 취업으로 구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동안 실제 졸업생의 취업 여부 검증이 어려웠다”며 “2017년 사회장관회의에서 공공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한 방식으로 전국 직업계고 졸업자의 졸업 후 상황 조사체제를 개편하기로 결정됐고 이를 토대로 지난해 처음으로 통계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통계 개편 중이던 2018년과 2019년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률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교육부와 인사처, 행정안전부 등 다양한 관계부처가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점검하는 체계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졸 취업의 성공사례를 적극 홍보하고, 직업계고를 졸업했어도 체계적인 커리어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실제 그렇게 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관리자나 고위직으로 진출할 때 직업계고 출신이 유리천장에 직면하지 않도록 하는 등 노동시장에서 학력 위주 승진 관행 개선도 시급하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오는 만큼 민간에게 고용을 장려할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과잉학력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만큼 민간에 재정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며 “특히 중소기업에서 신규인력 운용이 원활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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