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마다 공공병원 추진 활발
신·증축 통해 5000병상 추가 확보 계획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국고 지원 확대
부산·대전·광주·울산 등 설립 적극 나서
시설·장비 등 열악해 부정적 인식 팽배
기존 문제점 해결 없이는 확충에 한계
위기 때 거점병원 역할 못 하면 무의미
“공공의료 확대 신중 접근을” 목소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공공의료 강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는 공공병원을 신·증축해 5000개 병상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공공병원 신축 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고, 공공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을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병원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공공의료 강화 움직임에 대해 내실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병원 예타 면제… 부산·대전·광주 등 설립 움직임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400병상 규모의 지방의료원을 2025년까지 20개 내외로 확충해 5000병상을 확보한다는 게 핵심이다.
10일 이 방안에 따르면, 진료권 내 적정 규모의 병원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앞서 신축한 6곳을 포함해 의료원 최소 9곳을 신축한다. 이를 통해 약 3500개 병상을 늘린다. 11곳은 증축할 예정이다. 적십자병원을 비롯한 지방의료원은 전국 41곳, 병상은 1만450개다. 이 중 11곳을 증축해 2022년까지 병상을 약 1700개 추가한다. 이들 지방의료원은 감염병 및 중증응급의료의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비와 시스템을 갖춘다.
정부는 공공병원을 신축할 때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기로 했다. 지방의료원 신·증축에 대한 국고 지원도 도(특별자치도 포함)와 시·군·구에 한해 3년간 한시적으로 50%에서 60%로 확대하고, 165억원으로 설정된 의료원 신축 국고보조 상한액은 상향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지방의료원을 신설, 매입 등의 방법으로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정한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과가 어려운 공공의료원 설립의 최대 관문인 예타 조사가 면제되자 공공병원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부산시는 사하구 신평동 신평 지하철역 공영주차장 부지에 서부산의료원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난으로 파산한 민간병원을 인수해 동부권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전시는 동구 용운동 17만8000㎡ 규모에 310여개 병상을 갖춘 대전의료원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진주권에도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8년 만에 공공병원 설립이 본격화하고 있다. 경남도는 서부경남 공공병원 설립 후보지로 진주시 정촌면 옛 예하초등학교 일원을 선정했다. 오는 8월까지 설립 운영계획과 타당성 조사를 완료하고, 9월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울산과 광주도 예타 조사 면제를 기대하며 공공병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적자를 호소하는 인천적십자병원을 인수해 제2인천의료원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적·질적 갖춰져야 공공의료 역할 수행”
전문가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의료기관에는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보험 적용 진료를 통해 질병에 따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표준진료를 민간병원에 제시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하지만 현재의 공공의료기관은 비효율적이고, 시설과 장비, 인력 상황도 열악해 의료의 질이 낮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처럼 인력난과 적자경영 같은 기존 지방의료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병원 수만 늘린다고 공공의료가 확충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정부의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은 관련 법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며 “실행력을 담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취약지 공공병원은 몇 개가 필요한지, 얼마의 예산을 들일지 책임성이 필요하다”며 “병상 수를 지금보다 늘려 공공의료가 전체 의료시스템 내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안전장치로 존재감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지방의료원 중 300병상 이상은 6개밖에 없다. 정부 계획에 따라 증·신축해도 300병상 이상 병원은 15개 정도에 그친다”며 “공공의료시스템 강화를 위해서는 양적으로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 확대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구나 감염병 대응을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공공병원 설립만이 답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박은철 교수는 “감염병은 올림픽 주기와 비슷하게 발생한다. 감염병 대응을 이유로 공공병원을 만들게 되면 평창동계올림픽 후에 방치되는 슬로프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처럼 대규모 감염이 벌어질 경우 공공병원이 거점병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일반병원과의 차별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민간병원은 악이고, 공공은 선이라는 프레임은 나쁘다”며 “중요한 것은 현재 있는 공공병원이라도 병원답게 만드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공공병원이라고 세금 더 쓰면서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터지면 그냥 일반병원처럼 운영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경·정진수 기자 ljin@segye.com
“지역 간 불균형… 의사 수 확대” vs “기존 인력 균형 배치가 우선”
공공의료 확충과 지역 의료 시스템 강화 논의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인력’ 문제다. 병원을 추가로 짓고, 병상을 확충해도 의료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사 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 의료계는 기존 인력의 균형 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의사 수 확대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 간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1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35개 지방의료원 중 26곳은 의사 수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간호사가 부족한 공공의료원은 35개 중 34개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학년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명씩 증원해 총 4000명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부족한 지역의사 인력을 확충해 수도권과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지역 내 의료 이용률을 보면 2017년 기준 서울은 93%이지만, 경북은 23%이다. 치료 가능한 환자 사망률도 서울은 인구 10만명당 40.4명인데, 충북은 53.6명으로 차이가 있다. 소아외과, 역학조사관 등 필수·특수분야 인력은 더 부족하다.
시민사회단체도 의사 확충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민관 협의체인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전체 의사 숫자가 부족해 지역과 공공분야의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만큼 의대 증원과 국립의전원 등 공공분야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료인력·서비스의 지역 간 불균형 상황에 동의하면서도 의사 수 확대가 능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우리 국민의 1인당 의사 외래진료 횟수가 연간 16.6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1회)의 2배가 넘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의사 1인당 환자 진료 횟수도 OECD 평균(2181회)의 3배가 넘는 7080회다. 의료계는 지역, 전공, 병·의원 등이 불균형하게 배치된 것이 문제라며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비수도권과 해당 분야에서 일하도록 더 높은 의료수가를 적용해주는 등의 유인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의료계 파업으로 정부가 한발 물러서면서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의정협의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양측 의견 차로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1차 회의 후 지금까지 7차례 회의를 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최근 다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에 논의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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