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대면 진료 한계 드러나
정부, 작년 2월 전화로 약 처방 허용
노인 상시 질병 관리·소외지역도 이용
환자 만족도 87% 달해 긍정적 평가
“환자상태 설명 어렵고 과잉진료 늘 것
대형병원에 쏠림 가속화” 반대 목소리
의료진 만족도는 49.7% 그쳐 ‘대조적’
“AI 확산으로 확대 불가피” 관측 많아
#1.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은 지난해 6월 비대면 진료 운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비대면 운영 병동은 의료장비를 동시에 100대까지 전자의무기록(EMR)과 연동해 환자생체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기록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체온과 혈압, 산소포화도 등 생체상태를 각 병동과 복도, 진료실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2. 서울대병원은 코로나19 1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5일부터 한 달여 동안 문경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담당했다. 환자 관리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원 중인 환자가 착용한 웨어러블 장비를 통해 혈압과 산소포화도 등의 데이터가 병원정보시스템에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의료진은 환자와 스마트폰 화상통화로 하루 2회 문진하고 고혈압약이나 당뇨약 등을 처방했다.
원격의료는 국내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2000년대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해왔으나 눈에 띌 만한 진전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대면진료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필요에 따라 속속 비대면 시스템을 도입하고, 정부는 감염병 상황에서 전화 처방을 허용했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19가 지나가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원격진료 한시적 허용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의료법상 원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예외가 인정됐다. 정부는 지난해 2월24일부터 전화로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12월에는 감염병 위기 ‘심각’ 단계에서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24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이뤄진 전화 상담·처방은 총 9462개 의료기관, 약 145만건에 달한다.
재외국민에 원격의료 제공도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6월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 사업 2개에 임시 허가를 내줬다. 재외국민에게 2년간 전화·화상으로 의료상담과 진료를 할 수 있고, 환자가 요청하면 처방전도 발급할 수 있다.
환자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은평성모병원 정형외과 박형열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2월24일~3월7일 이 병원에서 시행한 전화 진료에 참여한 환자 906명을 설문한 결과 전화 진료 전반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는 87%였다. 환자들은 편의성(79.9%)과 상호 소통(87.1%), 신뢰도(87.1%), 재이용 의사(85.1%)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병원들도 태도가 변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해 정부의 비대면 진료 활성화 방침에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초진환자의 경우 대면진료와 적절한 대상 질환 선정 등 기본 원칙을 전제하면서도 국민 편의 증진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찬반 논쟁 있지만 피할 수 없는 흐름
고혈압과 당뇨 등 반복적인 처방이 필요한 환자는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병원을 오가는 불편을 덜 수 있다. 의사와 원격으로 상의해 처방받을 수 있다면 고령층의 상시적인 질병 관리도 가능하다. 의료시설이나 의료 인력이 부족한 소외지역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는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가 혹시 모를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의료진과 의료기관도 감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의료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국가경제를 성장시킬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CT(정보통신기술)와 인공지능(AI) , BT(바이오), 의료를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연평균 14∼15%씩 성장하는 해외 원격의료 시장 장악을 위해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박은철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원래 타임스케줄보다 30년은 앞당겨질 것”이라며 “구한말 쇄국정책 같은 규제로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수입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료계는 우려를 제기한다. 원격진료 시 오진 가능성과 개인정보 유출, 기기 구축 비용 증가, 과잉진료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은평성모병원 연구팀의 전화 진료 만족도 조사에서도 의료진 만족도는 49.7%에 그쳤다. ‘대면진료에 비해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이 어려웠다’(91.6%), ‘환자 또한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83.9%) 등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대형병원으로의 쏠림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형병원과 서울 등 대도시 병원에 대한 선호가 높은 상황에서 지방의 동네 의원들의 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비율로만 봤을 때는 병원 의사들이 60%가 넘기 때문에 찬성할 것으로 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공의 등 병원 내 의사들 일부가 개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섣불리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원격의료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정혜선 교수는 “옳다 그르다를 떠나 최근 원격진료를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편리성을 알게 된 사람들의 요구가 커지고, AI 확산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도입될 것”이라며 “의료인의 결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화가 오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美, 전자장치로 환자 건강 파악… 코로나 후 활용률 ‘쑥’
해외 주요국은 오래전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이후 원격진료가 확대되는 추세다.
24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비대면 의료 시장은 2015년 181억달러에서 지난해 355억달러, 올해 412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 차원에서 원격의료를 금지하는 법은 없다. 주별로 원격의료를 순차적으로 도입했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1997년 법이 제정되면서 본격 시행됐다. 전자장치를 통해 환자의 건강정보를 의사에게 전달, 환자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최근 코로나19 경제대책의 하나로 원격의료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던 각종 제도적 장애물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미국 내 전체 환자 기준 11% 정도에 머물렀던 원격의료 서비스 활용률은 코로나19 이후 46%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은 2019년 발표한 국민보건서비스(NHS) 장기계획을 통해 디지털치료제와 원격의료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2022~2023년 원격의료를 NHS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영국도 원격의료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NHS 앱을 통해 영국의 모든 1차 병원과 연결되도록 해 모든 국민이 앱을 통해 진료기록을 열람하고, 장기 복용하는 약은 자동으로 처방받도록 했다. 일부 병원은 앱을 통해 원격진료도 할 수 있다.
일본은 20여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원격의료를 확대해왔다. 1997년 낙도와 산간벽지 환자를 대상으로 9가지 만성질환에 대해 원격진료를 처음 허용했다. 2015년 지역 제한을 없애고, 재진환자로 원격의료 허용대상을 확대했다. 2018년에는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일본 ‘온라인진료의 적절한 실시에 관한 지침’을 보면 원격진료에 대해 의사·환자 간 사전합의가 필요하며, 진료계획도 사전합의해야 한다. 초진, 급성 질환 및 돌발사고 환자, 새로운 질환에 대한 약품 처방의 경우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한다.
중국은 2014년 ‘의료기구의 원격의료 추진에 관한 의견’을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개념을 수립하고 온라인병원을 개소했다. 온라인병원은 실제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온라인을 통해 원격진료와 처방 등이 모두 가능한 병원을 말한다. 온라인병원은 재진만 가능하며, 초진 때는 이용할 수 없다. 2014년 광둥성 제2인민병원이 최초의 온라인병원으로 설립된 이래, 900여개가 운영 중이다.
이진경·정진수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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