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도 이보단 넓을 거예요.”

취업준비생 이모(32)씨는 2년 넘게 준비하던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올해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 채용’을 도입하면서 취업 문이 크게 좁아졌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채용공고를 기다리려니 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겨우 지원서를 내도 합격 문턱을 넘으려면 비대면 면접·인턴 등 산 넘어 산이었다. 이씨는 “채용공고가 올라와도 2∼3명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것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지원하려는 기업이나 직군에서 공고 자체를 내지 않을 수도 있어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급변한 채용 환경이 청년세대를 압박하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 전형을 바꾸고 문턱을 높이면서 취업준비생들은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됐다. 첫 사회 진출이 늦어질수록 양질의 일자리에 안착할 확률은 줄어든다. 그만큼 생애 소득이 적어지고, 계층·세대 간 격차도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고학력을 기반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어 ‘인생 역전’이 가능했던 과거 세대의 공식은 청년들에게는 꿈같은 얘기가 됐다.

◆기업이 뽑아줄 때 기다리는 취준생들

코로나19 쇼크를 입은 기업들은 지난 1년간 채용 규모와 방식을 크게 바꿨다. 통상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하던 ‘공채시즌’이 사라지고 상시 채용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5대 기업 중 정기 공채를 유지한 곳은 삼성뿐이다. 2019년 현대차가 공채를 폐지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LG도 상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올해는 롯데가 상반기부터 공채 대신 상시 채용을 도입했다. SK는 올해 상반기 공채를 진행하지 않고 내년부터 상시 채용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의 상시 채용 도입은 코로나19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적시 적기에 뽑아 쓰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선 불확실성 증대로 구직활동이 고달파졌다.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예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공채를 계획적으로 준비했다면, 이제는 언제 뜰지 모르는 채용공고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며 “기업마다, 부서마다 공고를 내는 시기가 제각각이어서 내야 하는 이력서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상시 채용은 기업 상황에 따라 아예 신규 인력을 뽑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취업준비생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실제 코로나19로 기업들의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더 경직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에 상반기 계획을 물어본 결과 ‘상반기 신규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답한 기업은 17.3%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채용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8.8%)보다 두 배나 늘어났다. 상반기 채용계획을 세운 기업은 36.4%로 전년(58.7%)보다 크게 줄었는데, 이들 기업 중 채용 규모를 늘린 곳은 30%에 불과했다.

청년세대의 고용상황도 여전히 암울하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3월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31만4000명 증가했다. 코로나19 쇼크로 13개월 연속 감소한 취업자 수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지만, 청년세대의 고용실태를 살펴보면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통계청 분석에서 청년층으로 분류된 15∼29세의 고용률(취업자 대비 인구)은 43.3%로 전년(41.0%) 대비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연령대를 세분화하면 대졸 취업자로 볼 수 있는 25∼29세의 고용률은 전년도와 같은 67.4%에 머물러 있다. 15∼24세의 단기 일자리가 늘어나 청년층의 고용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보일 뿐, 취업준비생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청년세대가 취업난으로 입은 타격은 다른 세대보다 깊고 오래간다고 진단했다. 추후 경제가 정상화되더라도 청년세대의 늦어진 취업에 따른 승진 지연과 경력 상실 등의 여파가 10년간 지속된다는 분석이다.

채용 환경이 급변한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 변화인 만큼, 시장 변화에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예전처럼 기업이 공채로 대규모 인력을 뽑아 교육하는 구조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원하는 사람만 원하는 시기에 뽑겠다는 구조여서 청년 일자리는 씨가 말라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설익은 비대면 채용, 취준생에겐 이중고

상시 채용으로 취업문이 좁아진 것뿐 아니라 문턱 자체도 높아졌다. 상시 채용으로 전환한 LG와 KT의 경우 ‘채용 연계형 인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2∼4주 정도의 인턴을 마친 뒤 최종 면접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취업 기간이 길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구직 기간에, 길게는 한 달가량 미래를 저당잡혀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인턴이 재택근무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높다. 취업준비생 박모(28)씨는 “인턴의 장점은 회사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데, 재택으로 하면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다를 게 없다”며 “들쭉날쭉한 채용 전형을 고려해가며 인턴까지 준비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된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도입된 비대면 채용 방식의 평가 기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반응도 있다.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통상 면접은 지원하는 회사의 인재상이나 분위기 등을 보고 준비하는데, 인공지능(AI) 면접은 평가 기준을 알기 어렵다”며 “인재상이 서로 다른 회사가 면접에서 같은 AI 프로그램을 쓰는 경우도 있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AI 채용 교육기관 다온컴퍼니의 최준형 대표는 “AI 면접은 말하는 내용보다는 표정이나 말투와 같은 태도를 주로 평가한다”며 “AI 면접을 준비할 땐 카메라를 보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AI가 딥러닝을 할수록 정교한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채용시장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구성·조희연 기자 ks@segye.com

계층 간 칸막이가 공고해지면서 일터에서의 갈등 구조가 전통적 ‘노사’에서 ‘노노’로 이동하고 있다. 기득권 사수에 나선 정규직과 철옹성 입성을 바라는 비정규직이 충돌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보호받는 정규직과 거대 노조의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4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이후 노노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를 찾아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를 특별 조사했고, 고용노동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31만6000명 중 64.9%인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인국공을 방문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서울대 비학생 조교들은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기간제 교사들과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정규직의 반발도 거셌다. 서울대 정규직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으로 들어와 비교적 수월한 업무를 하면서 같은 대우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며 반대했다. 근로자 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을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기간제교사연합은 “전교조가 반대한 것에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노노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국공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여론은 폭발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론 취업준비생까지 논란에 뛰어들었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그만큼 신규채용 인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1500명이 근무하는 공사에 1900명이 직접고용됐는데 신입을 뽑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노 갈등을 노동자 간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로 본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정규직은 한번 진입하면 평생 보장받는 철옹성에 있지만 비정규직은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에 같은 노동자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의 생산성을 높여 신규채용의 여력을 확보해야 갈등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된 노조 역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기활황으로 근로자가 귀했던 1987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조가 경영에 개입할 정도로 힘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기득권이 돼버린 노조가 이익단체 모습이 아닌 노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양극화가 축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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