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절의 연속이었죠.”

울산 동구에서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살고 있는 40대 후반 A씨의 자존감은 최근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를 잃으면서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학생 수가 줄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다른 피아노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는 것도 잠시뿐. 일자리는 다시 사라졌다.

A씨는 어렵사리 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이용해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이 분야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휩쓸었고, 적응도 잘 되지 않았다. A씨에게 주어지는 일은 호텔 하우스키퍼 등 단기 일자리뿐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A씨는 이혼한 전 남편과의 재결합을 선택했다. A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은 구할 수 없고, 일자리 질은 점점 낮아지니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참담했다”고 토로했다.

#2. 60대 방문 요양보호사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B씨와 같이 살고 있는 딸은 2019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딸의 실직 상태는 길어졌고, B씨마저 지난해 2월말 ‘감염 우려’를 이유로 일이 줄었다. 한 달에 약 130만원이던 소득은 반토막이 됐다. 월세·보험료·생활비 등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그대로였고, B씨 소득만으론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어렵게 취업한 딸은 직업훈련생계비 1000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코로나19를 벗어나도 모녀가 갚아야 할 다른 빚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성에 더 큰 충격파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1년6개월 정도 지났다. 코로나19를 겪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일자리 측면에서는 여성들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16일 한국은행의 ‘코로나19와 여성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올해 1월 남성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해 2월에 비해 2.4% 줄었지만, 여성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1년 동안 여성고용률은 남성보다 0.9%포인트 떨어졌고, 실업률은 남성보다 1.7%포인트 올랐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코로나19가 내 직업에 미친 영향’에서도 고용시장에서의 남녀 간 충격파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직업종사자 1만62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임금·소득이 감소했다는 답변은 전체의 35.8%였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34.0%)보다는 여성(39.9%)이 상대적으로 소득 감소의 타격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는 남성 고용률이 여성보다 1.5%포인트 더 하락하고, 남성 실업률이 1.7%포인트 더 상승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은 건설업과 제조업이었다.

경기침체기 나타나는 ‘추가근로자 효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주 수입원인 남편의 소득이 줄면서 이를 메꾸기 위해 직업이 없던 아내가 고용시장에 뛰어든다. 보건·사회복지, 교육, 숙박·음식, 도·소매 등은 경기침체 상황에도 영향이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 모두 여성 비중이 높은 산업들이다. 우리나라 여성 취업자 비중은 일반적으로 보건·사회복지(81%), 교육(67%), 숙박·음식(63%), 기타서비스(50%) 등에서 높게 나타난다.

맹점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이 같은 대면 서비스 산업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코로나19 1년 - 여성의 일·돌봄 변화와 전망’을 보면 여성 노동자 3007명 중 퇴직자의 46.1%는 회사의 휴·폐업, 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답했다. 업종별로는 교육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의 비중이 높았다. 퇴직 여성이 일을 그만둔 시점은 지난해 3월이 19.9%로 가장 많고, 4·8·11월이 각각 11%대로 나타났다. 8월과 11월은 코로나19 2차, 3차 대유행이 시작돼 권역별 거리두기가 상향된 시기다.

◆‘직장인 엄마’ 돌봄 부담 증가로 일 중단

코로나19는 특히 ‘직장인 엄마’에게 더 가혹했다. 팬데믹 1년간 30∼45세 여성의 취업자 수가 감소한 가운데 기혼여성 비중이 95.4%인데, 미혼여성은 4.6%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일을 관둔 여성 대부분은 기혼여성이었던 것이다. 또 미혼여성 취업자는 코로나 확산 초기에 6% 내외 감소한 이후 6개월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육아 등의 부담이 있는 기혼여성 취업자는 코로나19 초반 약 10% 줄어든 이후 거의 1년 동안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자녀 수가 많거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기혼여성의 고용률이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점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성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돌봄과 가사노동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분담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와 어린이집, 학원이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여성들의 돌봄 부담이 크게 늘었고 기혼 여성의 고용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재취업한 여성의 일자리의 질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코로나 시기 퇴직 후 재취업한 여성은 이전보다 더 일시적인 일자리에 취업했을 가능성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퇴직한 여성 3명 중 1명은 재취업했지만, 2명은 여전히 실직상태에 놓여있다. 20대, 저학력, 임시·일용직일수록 실직 상태가 길거나 일시적 취업-퇴직을 반복하고 있다.

재취업 여성의 코로나19 이전 일자리는 상용직 비중이 60.4%였으나 코로나19 이후 재취업한 일자리는 임시·일용직 비중이 57.1%였다. 상용직 비중은 42.9%에 불과했다. 시간제 비중도 코로나 이전엔 43.0%였지만 이후엔 49.3%로 증가했다.

여성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남성보다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2021년 1분기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여성의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1.81점(10점 만점)으로 남성(1.61점)보다 높았고, 불안(4.97점)도 남성(4.27점)보다 더 많이 느낀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직업·사회·가정생활 등 일상생활에 방해된다고 느끼는 정도는 4.57점으로 역시 남성(4.27점)보다 더 점수가 많았다. 특히 어린 연령대의 자녀를 둔 경우가 많은 30대 여성의 경우 우울위험군 비중이 30.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아이 돌봄 부담 증가, 세 끼 식사를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가사업무 가중 등의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성고용 안전망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고용시장의 성별 양극화를 촉진시킨다며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중장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정 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고용조정 사업장의 상당수가 여성·임산부, 육아휴직 사용자를 우선 대상으로 했다는 조사 결과는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과거 경제위기 시 성별 불평등 양상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정책연구팀장은 “여성의 경제활동 시작 단계에서부터 전문성을 키워가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가족돌봄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고용시장이 불안해지거나 가족돌봄을 위한 인력이 필요한 경우 여성은 언제든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박 팀장은 이어 “중장기적으론 산업 다각화를 대비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진행해 여성을 산업이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에 고용 안정화 측면에 가점을 주는 등 여성고용 안정화를 위한 기업과 정부의 합의가 필요하다. 가족돌봄의 역할이 여성에게 한정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중에서도 20대 ‘직격탄’… 극단적 선택 급증

20대 여성은 코로나19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일자리 위기를 더 많이 경험했다. 일자리를 잃으면서 우울감은 커졌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대 여성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한 전국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온 자살시도자는 2만2572명이다. 이 중 20대 여성이 4607명으로 전체의 20.4%를 차지한다.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비율이 높다. 증가율도 가장 가팔랐다. 전체 자살시도자가 최근 1년 사이 2만1545명에서 2만2572명으로, 4.7% 증가할 때 20대 여성의 증가율은 33.5%(3449→4607명)로 늘었다.

복지부의 최근 ‘2021년 1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도 적신호가 켜진 20대 여성의 정신건강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전체 우울위험군 비율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 3.8%에서 올해 22.8%로 6배 증가한 가운데 20대 여성의 우울위험군 비율은 30.4%로 나타났다. 이는 30대 여성(31.6%)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20대 여성은 지난해 3월 4.6점(10점 만점)으로 우울감이 가장 낮았으나 급격하게 증가해 최근 조사에서는 7.1점으로 1년 만에 점수가 크게 높아졌다. 주로 숙박음식점업과 서비스·판매직 등에 종사하는 20대 여성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 안정성이 악화하면서 정신적 압박을 더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가운데 특히 저학력 여성에게 일자리 위기가 집중됐다. 고졸 이하 20대 여성의 절반가량(44.8%)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퇴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퇴직·실직 비율은 높았지만 대부분은 당국의 고용위기 대응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대 여성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6.4%로 다른 연령대 여성(24.0%)보다 낮았고, 고졸 이하 여성 수급률은 7%로 이보다 더 낮았다. 비필수인력, 재택근무 불가 일자리를 관둔 비중 역시 20대 여성이 다른 연령대 여성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의 경우 미래 준비에 대한 불확실성과 취업 및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 감소, 사회적 관계 위축으로 코로나19 충격파가 더 클 것으로 진단했다. 배은희 울산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사업팀장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사회적 지원 서비스가 줄어들고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기에 우울, 자살 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안, 공포, 스트레스 등은 코로나19라는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이것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울, 불안장애, 중독문제, 심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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