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2007년 7월3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법이 통과될 때만 해도 이 같은 기대가 현실로 이뤄질 것이란 장밋빛 희망이 있었다. 2009년 로스쿨 체제가 본격 출범하고 11년이 지난 현재, 로스쿨은 다양성 함양 대신 ‘현대판 음서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9일 세계일보 조사 결과 올해 6대 로펌 신입 변호사 10명 중 7명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출신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출신 학부 역시 SKY 일색이었다. ‘SKY 학부→SKY 로스쿨→대형 로펌 취업’이 공식처럼 굳어진 것이다. 대학별 전문분야를 키우고, 학생은 원하는 분야에 특화된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 인력을 다양화한다는 이상적 로스쿨 모델은 온데간데없고 고질적인 ‘대학 줄세우기’와 학벌주의만 악화된 모양새다.

법조계에선 “로스쿨의 존재 의의를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들린다. 전문가들은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대 로펌 신입, SKY 로스쿨 출신이 77%

로스쿨 제도는 법조 현장의 학벌 장벽을 오히려 공고히 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진학 때부터 SKY를 포함한 서울권 주요 대학에 입성하지 못하면 이후 로스쿨 진학·취업 과정에서 법조계 주류에 안착할 확률은 극히 낮아졌다.

올해 6대 로펌(김앤장·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에 입사한 187명의 신입 변호사 중 SKY 로스쿨 출신은 143명이나 됐다. 사법연수원 출신 2명을 제외하면 전체 신입 변호사 10명 중 약 7명(77.3%)이 SKY 출신이었다. 학교별로는 서울대가 72명(38.9%)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36명·19.4%), 고려대(35명·19%)가 뒤를 이었다. 대형 로펌은 검사·로클럭(재판연구원)과 함께 로스쿨생이 가장 원하는 취업지다.

SKY가 아닌 신입 변호사 역시 대부분 서울권 로스쿨 출신이었다. 비 SKY 중에선 성균관대가 14명(7.5%)으로 가장 많았고, 한양대(6명·3.2%), 중앙대(4명·2.1%), 이화여대(4명·2.1%), 서강대(3명·1.6%) 순이었다. SKY 출신과 비 SKY 서울지역 출신 입사자를 합치면 94.6%나 됐다. 사실상 서울 지역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하면 6대 로펌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 셈이다.

지방 로스쿨 중에선 경북대와 부산대, 인하대가 2명씩 6대 로펌 입사자를 배출했고, 전북대와 전남대, 아주대, 충남대에서 1명씩 6대 로펌에 취업했다. 올해 6대 로펌 입사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로스쿨은 9개교(강원대·건국대·경희대·동아대·제주대·동아대·충북대·영남대·원광대)다.

지방 로스쿨에 재학 중인 A씨는 “회계사 등 전문자격증이 있거나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드문 경우가 아니면 대형 로펌에 들어간 경우는 주변에서 거의 없다”며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들은 리트(LEET·법학적성시험) 몇 수를 해서라도 SKY 로스쿨을 간다”고 했다.

◆공식화된 ‘SKY 학부→SKY 로스쿨→대형로펌 취업’

대형 로펌 취업자가 SKY 로스쿨 일색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SKY 로스쿨 입학자 대다수가 SKY 학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20살 안팎에 SKY에 입학하지 못하면, 대형 로펌 취업길이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계층사다리를 늘리기 위해 만든 로스쿨이 오히려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다양한 진로 모색이나 인생 역전을 꿈꾸기 힘들게 만드는 형국이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올해 전국 24개 로스쿨(인하대 제외)을 상대로 ‘2021학년도 입학생의 출신대학 자료’를 받은 결과, SKY 로스쿨에 입학한 SKY 대학 출신은 87.1%였다. 학교별로 보면 서울대 로스쿨 신입생 153명 중 138명(90.2%), 연세대 신입생 126명 중 108명(85.7%), 고려대 신입생 124명 중 105명(84.7%)이 SKY 학부 출신이다. 자연히 대형 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출신 학부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올해 대형 로펌 5곳(김앤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입사자 중 80.6%는 SKY를 졸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범위를 서울 지역 로스쿨로 넓히면 SKY 학부 출신이 싹쓸이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지역 로스쿨 중 SKY 학부 출신 비율은 90.2%였다. 서울 지역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는 비SKY 출신은 10명 중 1명뿐이라는 얘기다. 지방대 로스쿨의 경우 SKY 학부 출신은 28.8%였다.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등 확 바뀌어야”

법조계에선 로스쿨 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법조인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등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변호사시험은 암기 위주에다 합격률이 정해져 있어, 로스쿨에 다니는 3년 내내 시험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를 자격시험화하면 학생들이 관심 있는 전문분야를 3년 동안 파고들 여유가 그나마 늘어날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기대한다. 각자 전문분야를 기르면 출신 학부·로스쿨의 ‘서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질 수 있다.

방효경 변호사(법무법인 피앤케이)는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 되면, 학교에서 변호사 시험공부는 최소화로 하고 남는 시간에 전문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SKY 로스쿨이 아니어도) 대형 로펌 내 전문팀에 가는 게 가능해진다”고 했다.

교사 출신의 박은선 변호사도 “변호사시험의 합격률 통제가 (현 상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변호사시험만 붙자’는 생각으로 공부하다 보니 전문성에 대한 중요성이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잠깐 타올랐던 ‘방통대 로스쿨’ 논의도 대안 중 하나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방송통신대학교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법학 학점 12점 이상만 이수하면 방통대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현재까진 통과 가능성이 낮지만, 방통대 로스쿨이 실현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변호사로 유입될 길이 늘어난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다양한 법조인 양성’을 내세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오히려 학벌주의를 공고화하는 현상에 대해서 현직 로스쿨 교수들은 제도 설계부터가 불공정했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자격 시험화’로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외대 로스쿨 이창현 교수는 29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의 지원이 많고 또 SKY로스쿨의 선발 인원이 서울대 150명, 연세대·고려대 각각 120명으로 다른 로스쿨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SKY 출신이) 대형로펌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수한 자원이 몰리고 환경이 좋다 보니 SKY 로스쿨에서는 상승작용이 일어나고 반대로 지방의 로스쿨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로스쿨 제도 설계 자체가 불공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사법시험의 합격자 배출자 수를 토대로 로스쿨 정원이 정해진 것 자체가 지방과 서울 소재 로스쿨의 가장 큰 격차”라고 꼬집었다. 이어 “서울대 로스쿨은 일부 필수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꿔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준비 부담을 덜어줬지만 정작 엄격한 학사 관리에 책임이 있는 로스쿨 협의회나 교육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로스쿨) 1학년들이 반수해서라도 SKY, 서울대 로스쿨을 진학하려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 소재의 한 로스쿨 교수는 “대형 로펌을 목표로 한다면 애당초 지방의 로스쿨을 선택하지도 않는다”며 “학생 수도 적은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는 서울에 빼앗기고 (지방대 로스쿨 출신의) 변시 합격률도 갈수록 떨어지면서 악재만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로스쿨 도입 당시 제도 연구에 참여했던 건국대 로스쿨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은 ‘변호사시험 자격 시험화’를 전제로 만들었다”며 “변시를 상대평가에 의한 선발시험처럼 운영하면서 제도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변시 합격에 목매게 되면서 로스쿨 교육은 황폐해지고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됐다”며 “결국 로스쿨도 변시 합격을 위해 학벌로 대표되는 ‘범생이’를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로서의 성공 여부는 자격시험 통과 후에 결정될 내용”이라며 “로스쿨 교육을 충실히 받았다면 변호사 자격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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