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불현듯 김종대(66·사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떠올랐다. 그는 1975년 봄 책방에서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을 접한 뒤 39년 동안 이순신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저서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쓰고 이순신 강연을 다니고 ‘이순신 스쿨’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람들은 그를 ‘이순신 전도사’로 불렀다. 영화 ‘명량’의 흥행 돌풍에 그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졌으리라. 7일 부산에 살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우 최민식이 열연한 ‘명량’의 이순신이 그가 그린 이순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자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명량’을 보면서 영화 속 이순신과 저서 속 이순신이 동일 인물처럼 느껴졌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원인이 역사적으로 규명이 안 됐다. 일본은 패배한 이유를 모른다. 이순신은 명량해전 전날 저녁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가르쳐 줬다고 썼다. 명량해전 승리 후에는 ‘이는 실로 천행이었다(此實天幸)’고만 했다. 나는 그 신인이 무슨 얘기를 했을까, 오래 고민했다. 이순신의 내면 세계를 추측해봤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다.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구하려는 이순신의 정성이 지극해서, 하늘을 움직인 것 아닌가. 이순신은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생각이 나와 같았다.”
―‘명량’ 제작 과정에 참여했나.
“헌법재판관 시절인 2년 전쯤 우연찮게 김 감독과 국밥집에서 만났다. 나의 이순신 강연을 들었던 김 감독의 형이 다리를 놨다.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를 기획 중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내 책을 읽고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김 감독과 나는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원인에 공감했다. 김 감독은 내가 지은 시(詩)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명량’을 찍었다고 한다.”
김 전 재판관의 저서 ‘이순신’은 이 시로 끝난다. ‘한산 바다 거북전선/적의 탐욕 응징했고/명량 바다 열두 전선/배달 불꽃 되살렸네/…/영웅으로 태어나서/성웅으로 돌아가니/거룩하다 님의 생애/죽었어도 살았도다!’ 김 감독은 최근 김 전 재판관의 저서를 소개하는 글에서 “12척 대 133척, 이 불가사의한 승리를 영화로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이 책은 막연했던 영화 ‘명량’에 강한 확신을 주었다”고 썼다.
―‘명량’이 연일 관람객 동원 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다. 흐믓하겠다.
“김 감독을 도와서 ‘명량’을 명품으로 만들어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면 내가 백번, 이백번 강연해서 몇 만 명에게 이순신을 알리는 것보다 더 이순신을 국민에게 가깝게 맺어주는 것 아니겠나. 김 감독이 소중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명량’ 촬영 전에 지내는 고사(告祀)에도 참석했고 촬영 현장도 찾았다. 김 감독을 만난 뒤로는 이순신 강연에서 주로 명량해전을 주제로 삼았다. 강연 말미엔 김 감독 자랑과 영화 ‘명량’ 선전을 잊지 않았다.”
―‘명량’의 흥행 성공 저변엔 영화 외적인 뭔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이 이순신 같은 인물을 갈망하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자기의 명예,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지켜내려는 지극한 나라 사랑과 위험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솔선수범해 정성을 다하는 지도자 이순신의 무한책임의식이 국민의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도망친 선장이나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 당시 도망친 군 간부도 앞에 놓을 가치와 뒤에 놓아야 할 가치를 전도시켜 자기만 살고 보자 해서 도망간 게 아닐까.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을 약재로는 이순신 정신이 가장 큰 보약이라 생각된다.”
―영화 ‘명량’이 떴으니 책도 많이 팔릴 것 같다.
“출판사에서 신문에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웃음) 지금까지 3만5000부 정도 팔렸는데 인세는 1원도 받지 않았다. 인세로는 ‘이순신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순신 독서감상문 행사도 개최한다.”
그 말을 듣고 책을 확인해보니 ‘수익금 전액은 충무공사상 선양기금으로 사용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부박한 질문을 던진 기자는 민망해졌다.
―‘이순신 아카데미’는 뭔가.
“누구나 이순신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이순신 강좌다. 원래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순신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이순신 학교’를 만들 계획이었다. 세월호 참사나 군 총기·폭행 사건도 인성이 바로서야 해결되는 문제다. 교육부가 추진하면 힘을 받을 것 같아서 6년 전쯤 교육부에 문의했다. 서너 달 뒤에 ‘참 훌륭한 생각이다. 그 문제는 두고두고 연구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지금도 연구 중인지 답신은 없다. 그러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순신은 자조정신을 강조했는데 내가 너무 정부에 의존하려 하지 않았나. 이순신이 저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손쉬운 일부터 해보자고 시작한 게 이순신 아카데미다.”
-영화 ‘명량’의 감상평을 말씀해주신다면.
“우선 재미있고 현실감있게 전투를 재현해 낸 작품으로 작품 자체로서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제가 그 영화를 보며 주목한 것은 김한민감독이 명량해전의 조선 수군의 승리원인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였는데, 조선수군이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 장수 이순신은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을 찾아가는 진지한 노력이 있었다고 보인다. 사실 명량승첩의 사실을 밝힐 객관적 사료가 없기 때문에 상당부분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김감독의 추리는 전체적으로 훌륭했다고 본다. 나는 쓰러져가는 대장선을 백성들이 힘을 합쳐 바로 세우는 장면이 멋졌다.”
-어떤 계기로 이순신에게 매료가 됐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군법무관시절 이순신을 주제로 강연준비를 하면서 운명적으로 빨려 들어갔다고나 할까요. 지금 와서보니 사회적 병리현상에 관심을 가져오던 중 그 병을 낫게 할 치료제를 이순신에게서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이순신 공부가 지속되었다고 생각된다.”
-정치권을 비롯, 국가적 리더십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순신의 진면목이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이순신의 삶이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지도자는 자신들의 사사로운 가치나 욕심앞에 항상 우리 모두에 대한 공공의 가치와 이익을 놓는, 즉 목숨바쳐 나라사랑하는 지도자, 맡은 바 정성을 다해 공적책임을 완수하는 지도자들이 많아져야 오늘날 이 국가사회가 아픔에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서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허점 찾기에 온갖 노력을 보았지만 단 한 군데 흠잡을 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썼다. 세상에 흠이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읽혔다.
“흠을 찾아내어 제가 과장된 표현을 한 점을 나무라 주시면 저도 영광이겠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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