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아제르바이잔 방문에 동행했을 당시 수도인 바쿠에서 한국어가 유창한 현지 대학생들과 조우한 적이 있다. 바쿠 국립대 학생들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대화 도중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배우면서 한국을 동경하게됐다”고 말해 기자를 감동시켰다.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바쿠 국립대에 개설된 한국어와 한국학 과목은 KF(Korea Foundation·한국국제교류재단)가 파견한 한국 객원교수가 담당한다. KF는 한국어·한국학 진흥, 문화예술교류, 인적교류 및 지한파 육성 활동 등을 통해 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는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국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유현석 KF 이사장을 지난 19일 서울시 중구 KF문화센터 집무실에서 만났다.
―국제교류재단 대신 ‘KF’로 부르는 게 더 기억하기 쉬운 것 같다.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에서 C만 빼면 되니….
“다른 데서도 그런 말을 들었다. 두 번 들었으니 바꿔야겠다. 국제교류재단은 지자체마다 다 있다. 비슷한 게 너무 많아 국민들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른다. 외교부는 할 수 없는, 해외 싱크탱크 지원이랄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예산 배정에서 밀리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대외원조 활동도 한국의 국격(國格)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한국어를 포함해 문화적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
―KF와 코이카 예산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우리가 500억원 정도이고 코이카가 6600억원 정도다. 코이카는 올해 600억원 늘었다.”
―코이카의 10분의 1 수준인데 국회나 정부가 KF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는 KF가 중요하다. 원조는 수혜국 입장에서 별 느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중남미 어느 나라는 중국이 쏟아붓는 원조에 비해 소액에 불과한 우리의 원조를 그다지 감사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KF의 초청 대상 인사들은 1주일만 한국에 머물다가면 모두 한국의 팬이 된다. 아프리카 초청 인사는 대부분 대통령급 인사다. 그러면 그 나라 주재 한국대사는 일하기가 아주 편해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코이카의 원조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제사회 지도층, 오피니언 리더를 움직이는 KF의 활동도 중요하니깐 어느 정도는 (예산 배정 등에서)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올 예산안 편성 때 좀 더 배정해달라고 요청하지 그랬나.
“예산은 예산당국의 논리가 있다. 중요하다고 설명하면 지금 중요하지 않은 예산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대통령 관심 사업이라고 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다행히 지금 국회 상임위에 한국학 지원(15억원), 지자체 국제교류 역량강화 사업 예산(7억원)이 올라가 있다. 그런데 살아돌아올 확률이 높지 않아 걱정이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지역에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한국학 지원 예산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예산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인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 한국 드라마, 한국 가수가 인기를 끌고 ‘한류(韓流)’ 열풍이 불면서 한국어과, 한국어 강좌를 개설해달라는 신청이 들어오고 있는데 예산 문제로 10개가 들어오면 1개도 해주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 나라들의 대학에 한국어 강좌 하나 개설하는 데 비용은 얼마나 소요되나.
“강좌를 열려면 일단 교수가 있어야 하는데 가장 싸게 보내는 게 객원교수를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면 1년에 6만달러 정도 필요하다. 우리가 5, 6년 계약해서 그 교수의 인건비를 지원하면 해당 학교에서 종신직으로 고용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최근 우리와 관계가 악화된 일본에도 공을 들이고 있나.
“일본은 주로 민간 차원에서 고위 인사, 학생 초청해서 하는 문화교류다. 정무적인 부분은 조금 어렵다.”
―내년은 한·일 국교 수립 50주년이다. 경색 국면을 풀어내기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양국 국민으로 한·일합창단을 만들어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제3국에서 공연하기로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한·일합창단 프로그램 관련해서 우리는 외교부 승인을 받았는데 일본국제교류기금은 아직 일본 외무성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양국 국민이 화합의 노래를 부르겠다는데 일본 정부가 안 해줄 이유가 있나.
“그렇죠. 그런데 아직까지 오케이 안해서 (일본국제교류기금 측에) 승인 못 받으면 다른 일본 파트너를 찾겠다고 얘기했다. 실제 한·중·일 3국이 함께하는 민간교류 프로그램이 여러 개 있는데 일본이 소극적이다. 한·중·일 예술인 공연도 지난해 일본이 참가하지 않아서 한·중 두 나라만 했다. 3국 미술전에도 일본은 잘 안 온다.”
―중국 쪽 민간교류는 어떤가.
“중국과는 활발하다. 고위급 포럼도 있고 초청사업도 많다. 중국은 매우 적극적이다.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기만 하면 참여하겠다고 한다. 돈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 기회(한·일관계가 소원한 계기)에 우리를 끌어안으려는 중국의 외교 공세가 느껴진다.”
―KF 입장에서 좀 조심스럽겠다. 외교부에서 말리는 일은 없나.
“그렇지는 않다. 교류는 좋은 것이다. 외교부도 정치색 들어가는 교류는 경계하지만 중국에서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인적교류다. 중국 내 혐한(嫌韓)감정 등 양국 간에는 오해가 많다. 중국은 인적교류를 많이 하려고 한다. 중국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일본은 굉장히 조심한다.”
―이러다가 한·중관계가 한·일관계보다 더 좋아지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
“민간 차원의 인적교류가 늘어난다고 해서 정무적으로 바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 외교부도 그렇고 저희 사업 방향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한·일관계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움직인다. 우리도 일본과의 사업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한·중·일 차세대 포럼이 중단된 지 6년 만에 살아났다. 3국의 45세 이하 국회의원, 언론인, 기업인, 문화계 인사, 시민사회 인사 등이 참석 대상이다. 이들이 3박4일씩 세 나라에 머물면서 교류하는데 12일 정도 하루종일 붙어다니면서 찜질방에도 가고 술도 먹고 하면서 어울리다 보면 정말 친구가 된다.”
―KF가 차세대 리더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차세대들은 사고가 열려 있고 한국에 대한 인상이 기본적으로 좋다. 올드 제네레이션은 한국 하면 가난, 전쟁, 독재를 떠올린다. 차세대들에겐 이런 게 없다.각국 의회 보좌관, 국무성 초급 관리 등을 초청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최근 KF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이어 브루킹스연구소에도 ‘코리아 체어(한국석좌연구직)’를 개설했다.
“미국은 한국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앞으로 우드로윌슨센터와 미국외교협회(CFR) 등에도 한국센터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런 걸 만들려면 처음에 기금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300만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미국 싱크탱크 지원 관련 예산은 연간 7억원으로 일본의 10분 1 수준이다. 차세대 전문가 그룹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및 미국 내 한국 관련 여론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미국 내 지한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한국정책전문가를 육성하는 싱크탱크 사업 강화가 시급하다.”
―현재 준비 중인 사업은.
“국내에는 150만에 이르는 국내거주 외국인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의 노력 여부에 따라 한국에 우호적 또는 적대적이 될 수 있다. 이들 국내거주 외국인에 대한 체계적, 통합적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청중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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