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명 경찰청장은 세월호 사태 와중에 중도 퇴진한 이성한 전 청장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찰, 이 전 청장은 그 책임을 지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옷을 벗었다. 강 청장은 추락한 경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각오로 1년을 달려왔다. 오는 25일 취임 1년이 되는 강 청장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청사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라고 역설했다. 그는 “경찰청장으로서 법이 부여한 임기 2년 동안 아무런 과오 없이 국민과 경찰을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의 목표일 뿐 그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면서 “반드시 실천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맞는 강신명 경찰청장이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나.

“취임하자마자 ‘112 청장’을 자임했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다. 국민의 입장에서 평생 한두 번 112 신고하는데 얼마나 절박하고 심각한 상황이었겠느냐. 그 순간에 경찰이 달려와서 위기에서 구해준다면 국민은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무법과 무질서의 상징인 조직폭력배 소탕에도 주력했다. 법이 통하지 않는 폭력배가 있다면 법치국가라 할 수 없고 경찰의 존재 이유도 없다. 112 잘하고 조폭 제압 잘하는 게 기초 치안이라고 생각한다. ‘양은이파’ 같은 범죄단체만 조폭이 아니다. 국민은 술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노점상으로부터 자릿세를 갈취하는 깡패도 조폭이라고 본다. 폭력배는 잡초와 같아서 주기적으로 뽑아내야 한다. 오는 9월부터는 동네 건달까지 단속 대상을 확대할 생각이다.”

-‘거악의 퇴치’처럼 좀 거창한 각오일 줄 알았는데 굉장히 미시적이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방법은 기초 치안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기 중에 반드시 이 목표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기본이다. 임기 2년 차에는 ‘생활 법치’에 더 주력할 생각이다. 생활 법치의 핵심 축은 교통질서와 집회질서다. 재임 중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도 모두 해결했다. 행정적인 미제사건은 있을 수 있지만 경찰청장이 생각하는 미제사건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시화호 토막살해 사건이나 안산 인질 살해 사건, 잠원동 새마을금고 사건, 용산 아파트 쇠구슬 테러 같은 주요 사건의 범인은 모두 잡았다.”


-평소 시위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재임 기간 시위 문화가 개선됐다고 평가하나.

“시위 문화는 그 나라의 법질서 수준에 비례한다. 일부 과격세력의 시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폭력시위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모인 시위대가 남대문 쪽으로 행진하면서 차를 막고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지금은 1000명씩 끊어서 신호에 맞춰서 행진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한다. 전교조 시위대가 제일 잘 지킨다. 물론 ‘우리가 왜 경찰 말을 들어야 하느냐’면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단체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도 종종 논란 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소음기준을 5db(데시벨)씩 하향 조정했는데 10분간 내는 소음의 평균을 단속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5분 동안 120db 넘는 소음을 내다가 나머지 5분 동안 소음을 뚝 떨어뜨리면 단속 기준을 넘지 않는다. 이를 다른 나라처럼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집회·시위도 법 테두리 내의 기본권 행사는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교통체증과 소음은 엄격하게 관리하고 경찰관 폭행 등 불법행위는 반드시 사법조치해 준법 시위 문화가 확립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

-올 초 경찰 승진시험에서 만점을 받고도 승진에서 탈락한 사례가 속출해 논란이 일었다. 100점 맞고도 떨어지면 당사자는 억울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경찰 조직을 망친 게 승진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승진자 절반을 시험으로 뽑다 보니 승진시험이 치러지는 1월이 다가오면 경찰이 전부 공부만 한다. 국민들은 승진 시험 공부하는 경찰을 이해 못한다. 누구는 빵 씹어먹으며 잠복근무하는데 누구는 두어 달 공부하고 승진해서 상사로 복귀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경찰 내부의 사기가 저하된다. 경찰이 모두 공부만 하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우나. 솔직히 취임 초반엔 경찰 승진시험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 제도가 70년된 것이라서 당장 없애면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 시험은 쉽게 내고 근무평정을 많이 반영하는 식으로 개선했다. 앞으로 근무평정의 변별력을 높이고 객관화해서 일을 열심히 한 경찰이 인정받고 승진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은 없나.


“경찰 조직 내부의 사기 진작 부분이다. 지난 1년간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면서 지나치게 업무 중심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른 셈이다. 이제 현장 경찰관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다수 경찰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근속승진 제도다. 순경은 5년, 경장은 6년, 경사는 7년6개월의 근속연수를 채우면 승진 대상자의 20%에 한해 승진할 수 있다. 일반 공무원은 1급에서 9급까지 9단계인데 경찰은 치안정감에서 순경까지 10단계다. 일반 공무원보다 1단계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근속승진에 걸리는 시간도 일반 공무원보다 더 길다. 그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두 번째는 경찰 공무원을 공안직에 포함시키고 싶다. 같은 공안 업무를 하는 검찰이나 법무부 공무원은 공안직이지만, 경찰은 일반직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공안직이 일반직에 비해 급여가 다소 많다. 공안직 분류가 어렵다면, 경찰의 치안활동수당을 기본급여에 포함해 정근수당이나 퇴직금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추진됐다가 무산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강 청장의 생각은 무엇인가.

“수사권 조정 문제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계속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합리적인 수사권 조정방안은 경찰이 1차 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2차 수사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국적으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현실적으로 94%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법적으로는 수사권이 없는 조직이다. 이런 경찰 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국민들은 아무 권한이 없는 경찰에게 수사를 받고 그다음에 권한이 있는 검사에게서 검증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일본 경찰은 경감 이상 간부가 부분적인 영장 청구권까지 갖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 단계까지라도 경찰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사건 중에서 민생 수사만이라도 경찰에 맡겨달라는 것이 우리 경찰의 바람이다. 교통사고나 단순절도 같은 사건까지 검찰이 지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검찰은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주지 못하는 근거로 경찰의 수사 능력 부족을 거론하고 있다. 경찰의 비리 가능성도 이유로 든다.


“비리는 비리로 접근해야지 비리 있는 조직이니까 자율적으로 수사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인원 대비 비리 비율은 검찰 수사관이 경찰보다 더 높다. 자질론으로 얘기하면 우리에게도 경찰대, 변호사 출신 자원이 있다. 다만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재임 기간에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도록 소신을 갖고 추진하겠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박세준 기자

◆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남 합천(1964년) ▲대구 청구고 ▲경찰대(2기) ▲서울 송파경찰서장 ▲안전행정부 치안정책관 ▲경찰청 수사·정보국장 ▲경북지방경찰청장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 ▲서울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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