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악습 밤샘조사 없애라/검찰­경찰서 「인권침해」 다반사
[세계일보]|1997-01-20|01면 |종합 |뉴스 |1307자

◎“진술강요는 사실상 고문”/선진국선 인권보장차원 원칙적 금지올들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제 시행으로 피의자의 인권이 부쩍 신장되면서 차제에 검찰과 경찰의 고질적인 인권침해 수사관행인 밤샘조사도 근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9일 법조계와 학계 인권단체에 따르면 현행법상 밤샘조사를 금지한 명문규정은 없지만 철야신문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피의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비민주적인 수사방법이라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런 이유에서 철야조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한지 오래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철야신문이 「전가의 보도」처럼 행해지고 있다. 특히 검­경은 법원의 피의자 인권신장 노력에 발맞춰 이를 시정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영장실질심사제 시행에 따른 불편만 강조하면서 『밤샘조사는 수사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강변하는 실정이다.

◇수사실태=밤샘조사는 최고 수사기관인 대검 중앙수사부에서부터 일선 경찰서까지 모든 수사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과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한 이성호 전 복지부 장관 부인 박성애씨가 각각 오후에 검찰청사에 출두,밤을 새워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최근 서울고법에서 뇌물수수 혐의부분 무죄선고를 받은 이성환 과천시장의 수뢰의혹사건 피의자와 참고인들도 법정에서 『검찰이 거의 잠을 재우지 않은 채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의견=서울대 한인섭 교수(형법)는 밤샘조사에 대해 『헌법상 권리인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고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이재상 교수(형법)도 『밤샘조사가 위법은 아니지만 피의자가 피로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회 법사위 안상수 의원(신한국당·변호사)은 『밤샘조사는 피의자에 대한 가혹행위』라고 전제하고 『밤샘조사 관행이 고쳐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국회 차원의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대해 『피의자를 장시간 조사할 경우 대부분 일정시간 잠을 재운다』고 밝히고 『수사의 연속성과 48시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밤샘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외국 사례=영국은 피의자에게 하루 8시간 수면을 보장하도록 한 명문규정을 두고 있고,독일도 피의자를 피곤하게 하거나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되는 신문방법을 형사소송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또 일본의 경우 판례가 원칙적으로 밤샘조사를 통해 얻은 자백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고 사건의 경중,피의자 혐의정도,피의자의 태도 등을 고려해 불가피한 때만 증거로 채택한다.〈조남규 기자〉

“영장청구 시한짧아 불가피”/밤샘조사­검찰입장
[세계일보]|1997-01-20|02면 |종합 |기획,연재 |2654자

◎편의 봐줘가며 범행확인 어려워/진술임의성 법정서 다툴 사안철야조사에 관한 검찰의 입장은 제한된 수사기간에 은폐된 범행을 밝혀내 범법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수뢰 혐의가 짙은 피의자를 계속 추궁해 진술의 모순을 발견했는데도 늦은 밤이라고 조사를 중단한다면 무슨 수로 자백을 받아내느냐는 얘기다.
검찰은 우선 「철야조사」라는 용어부터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야간에 조사를 하는 것일 뿐 잠을 안재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야간조사」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심경변화등이 감지돼 수사를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 야간조사를 하는 것이지 특정한 진술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검찰관계자들은 말한다. 야간조사가 밤샘조사로 이어진다고 해도 고의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검 중수부의 한 검사는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뇌물사건에서 검찰이 피의자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서 어떻게 48시간내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검찰도 일부 수사팀의 의욕이 지나쳐 야간조사가 밤샘조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이 검찰 수사의 강압성을 인정,무죄를 선고한 이성환 과천시장의 수뢰사건도 이 경우라고 한 검찰관계자는 설명했다.
검찰은 실제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를 밤새도록 재우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밝혔다. 대검청사에 출두해 조사받으면서 혐의사실을 완강하게 부인,검찰을 당황스럽게 했던 이양호 전 국방장관도 철야조사를 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피의자들이 조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야간조사를 자처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잠을 재워도 대개 심리적 불안으로 오랫동안 자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설사 수사의 연속성을 위해 철야조사를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문제는 없다는 것이 검찰이 시각이다.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영장에 의하지 않고도 피의자 신문장소를 선택하고 체포장소의 압수 수색등을 할 수 있는 강제처분 권한이 제한적이나마 허용된다는 것. 압수 수색의 경우 특수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야간집행을 금하지만 피의자 조사에 있어서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이같은 강제처분의 맥락에서 조사시간을 임의로 정할 수 있다고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영장실질심사제 실시와 형사소송법의 「1회 공판기일전 증인신문」 조항 위헌결정 등으로 수사기관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수사권이 민생치안과 사회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국가 기능인 만큼 제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철야조사의 합법성 여부는 법정에서 개별사건을 심리하면서 진술의 임의성을 놓고 다툴 사안이지 일률적으로 안된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조진태 기자〉
◎전문가 의견/“피의자 방어권 무력화”/심리적 불안­자포자기상태 야기/헌법보장 행복추구권리 침해
재야법조인과 법학자들은 밤샘조사가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비민주적 수사관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먼저 밤샘조사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밤샘조사는 고문의 일종으로 헌법상 고문받지 아니할 권리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의 침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백형구 변호사는 밤샘조사가 필연적으로 행복추구권의 요소인 피의자의 수면권과 휴식권 등을 침해한다는 점을 근거로 「밤샘조사 위법론」을 편다. 밤샘조사가 헌법상 법률로만 제한하도록 규정한 기본권(행복추구권)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침해하고 있다는 것.
서울대 한인섭 교수(형법)도 『보통 사람들에게 잠이 많이 오는 자정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이뤄지는 밤샘조사는 피의자의 방어능력을 포기시키는 고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권영성 교수(헌법)는 밤샘조사의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철야신문이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또 피의자가 사려깊게 판단,진술할 수 없는 정도의 심리적 불안 및 자포자기 상태를 야기한다는 점도 밤샘조사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박인제 변호사는 『밤샘조사는 가수면 상태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꼼꼼히 검토하지 않은 채 손도장을 찍거나 자포자기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하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밤샘조사 관행 근절대책으로 △수사기관의 노력과 제도개선 △판결을 통한 법원의 제동 △피의자 개개인의 적극적인 권리주장 등을 내놓았다.
서울지법 민형기 판사는 『밤샘조사 관행은 수사기관이 피의자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피의자 자백에 앞서 다른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는 쪽으로 수사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법원이 밤샘조사를 통해 얻어낸 자백의 증거능력 인정에 좀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면 수사기관의 밤샘조사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30시간동안 잠잘 기회를 주지 않고 신문을 계속해 받은 자백의 증거능력을,미국에서는 잠을 재우지 않고 2일동안 계속 신문한 끝에 얻은 자백의 증거능력을 각각 부정한 판례가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피의자 스스로 밤샘조사에 불응하고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자백의 증거능력을 다퉈야 한다』며 『밤샘조사로 인한 권리침해로 손해를 입은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남규 기자>

본사 「수사악습 밤샘조사 없애라」/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
[세계일보]|1997-02-19|20면 |사회 |뉴스 |281자
한국기자협회(회장 남영진)는 18일 제76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회의를 열어 기획보도부문에 세계일보 사회부 정호원­ 함영훈 기자 등 법조팀의 「수사악습 밤샘조사 없애라」 등 3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기획보도부문=수사악습 밤샘조사 없애라(세계일보 사회부 정호원 함영훈 조진태 조남규 박희준 김도경 조철현 기자) ◇취재보도부문=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인터뷰(SBS 경제부 유영규,보도영상부 정영희 기자) ◇지역취재보도부문=용접노동자 망간중독 및 파킨슨씨병 발병(부산일보 사회부 김기진 기자)


 검찰 기자 짬밥이 군대로 치면 상병 정도된 어느 날,
이선호 당시 법조팀장이 불렀다.
검찰의 밤샘조사 관행을 짚어보자는 주문이 내려왔다.
당시만 해도 검찰 기자들은
밤샘 조사를 당연시했다.
늦은 저녁 서초동 검찰청사 취재에 나설 때면
으레 어느 검사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를 살피곤 했다.
특수부 등에서 밤샘조사가 이뤄지면
'큰 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밤샘 조사 자체엔 무신경했다.
방송의 철야조사 전달도
밤새 수사하는 검찰의 노고를 전했으면 전했지
밤샘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피의자는 일단 범죄 혐의가 있는 자이니,
밤새 족쳐서라도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일반의 정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정서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이 기사가 나간 뒤 검찰은 밤샘조사 자제 선언을 했다.
실제 밤샘 조사가 근절되지 않았지만
이번 기사는 검찰이 당연시해오던 밤샘조사를
눈치보면서 하도록 견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 기사로 한국언론재단이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그날 밤 우리 법조팀은 밤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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