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은 ‘조국 선거’로 기록될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부터 조국 전 법무장관 변수가 개입됐다. 조국 사태에 관한 사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후보들은 가차없이 제거됐다. 금태섭 의원이 대표적이다. 금 의원은 당 안팎의 친(親)조국 세력에게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도 “마음에 빚이 있다”는 조국을 ‘감히’ 공격했으니 말이다. 이번 민주당 공천에서는 과거 비(非)문재인 진영에 섰던 중진 의원들도 속속 나가떨어졌다. 이런 판국에 비주류인 금 의원이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금 의원 쳐내기’ 같은 인적 청산은 민주당 지도부가 꺼리던 사태 전개였다. 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가 문제적 인물인 조국 찬반 구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리했다. 다른 후보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금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진 친조국 인사를 다른 지역에 전략공천해줄 정도였다. 그런데도 당원 투표와 여론 조사 결과는 금 의원 축출로 나왔다. 당 안팎의 친조국 세력이 결집한 결과였다.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서도 조국이 전면에 등장했다. 민주당이 총선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의 플랫폼으로 삼은 ‘시민을위하여’는 친조국 인사들이 만든 정당이다. 개가 물어뜯는 방식으로 조국을 지키겠다면서 태동한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가 ‘시민을위하여’의 뿌리다.

민주당 계열의 비례대표용 정당인 열린민주당은 참여 인사 면면이 ‘조국 지킴이’ 정당이나 다름없다. 이 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은 대놓고 “총선 결과에 따라 조 전 장관의 운명이 결정된다”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이 기대는 언덕은 조국 지지자들이다. 이번 총선부터 적용되는 개정 선거법으로 득표율 3%가 넘는 정당이 과거보다 더 많은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게 됐다. 길 닦아 놓으니까 깍쟁이가 먼저 지나가는 격이다.

소수정당의 진출을 돕겠다면서 개정 선거법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대표는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개정 취지를 훼손하더니 이제 총선 이후 열린민주당과도 연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내 1당을 지키는 일이 아무리 화급해도 공당(公黨)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강성 지지층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미국 정치에서도 ‘티파티’라는 우파 시민운동 세력이 한동안 기승을 부린 적이 있었다. 2010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도 성향의 공화당 중진 정치인들이 줄줄이 경선에서 낙마했는데 그 배경에 티파티 세력이 있었다.

당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면 정당 민주주의가 훼손된다. 이들의 표는 항상 과다 대표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1인 1표가 원칙이지만 정치 현실에서 1표의 힘은 동일하지 않다. 강성 지지층의 표는 침묵하는 다수의 표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 공론장에서 소수의 극성 지지층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이런 공론장에서는 상식이나 합리와는 거리가 먼 결론이 내려지곤 한다. 이럴 때 당이 중심을 잡고 과도한 목소리를 제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체로 당은 강성 지지층에 편승하는 쪽을 택한다.

미국의 티파티도 공화당을 좌지우지하면서 당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티파티의 지지 덕에 당선된 의원들은 사사건건 민주당과 싸우고 연방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급기야 정부 폐쇄 사태를 초래하고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파국을 불렀다. 그 시절 미국 의회 신뢰도는 곤두박질쳤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티파티가 지지한 공화당 대선 후보는 갓 입당한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의 제물이 됐다. 유권자들은 의회를 싸움판으로 만든 세력에 등을 돌렸다.

강성 지지층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당선된 정치인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대로 ‘개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치 수준은 저열해질 것이고 정치권은 도매금으로 욕을 먹을 것이다. 싸우는 국회를 좋아한다는 국민은 소수다. 대다수 정치인들은 생산적 국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도 정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강성 지지층을 이용하는 정치 탓이다.

조남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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