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이기심과 탐욕이 뒤범벅된 채로 굴러간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정책이 때론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이유다. 정책 집행자들이 디테일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2011년부터 추진 중인 ‘창업선도대학’ 정책이 그런 사례다. 창업선도대학을 통해 유망 (예비)창업자를 발굴해 창업준비부터 창업 후 성장단계까지 창업 전 단계를 패키지 방식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기술이 전 재산인 창업자들에게 오랫동안 희망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한국 경제는 3%대 성장에도 만족해야 하는 저성장시대를 맞았다. 청년 실업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창업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 실업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꾸준히 씨앗을 심어가다 보면 다양한 수종들이 한국 경제 생태계를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만들 것이다. 거목으로 성장한 창업 기업들은 수천, 수만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단기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진득하게 밀고 나가야 할 정책이다.
그런데 잘 굴러가던 이 정책은 정치색깔이 덧칠되면서 본래 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신청조건에 정규직 채용 항목이 추가되면서부터다. 정부는 정규직 직원을 채용하면 지원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채용 직원에게는 최저임금과 4대 보험을 제공해야 하고 지원협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강제조항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조건이 붙자 그 조건에 맞춘 신청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업자들의 자금 사정이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다. 창업선도대학으로 계속 지정되길 원하는 대학들이 중기부의 입맛에 맞춰 지원대상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원금이 절실한 ‘나홀로 창업자’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고용조건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짜 직원을 만들어내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런 창업이 오래갈 리 없다. 그런 지원금은 모래 위에 뿌려진 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사라진 지원금은 이중의 손실이다. 그 과정에서 자격 있는 지원자의 창업 성공 가능성까지 날려보냈기 때문이다. 본지에 소개된 사물인터넷(IoT) 기술개발자도 그런 희생자들 중 한 사람이다. 이 개발자는 관련 특허도 여러 건 출원하는 등 나름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기술력을 갖췄지만 정부가 내건 고용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창업지원을 받지 못했다. 벤처신화를 꿈꿨던 그는 지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2018년 8월22일자 1면 참조>
고용의무 인센티브가 도입된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이 아니고는 7년 동안 유지한 정책의 돌연한 변경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마침 본지 보도를 계기로 중기부가 창업 지원신청과 관련한 고용의무 인센티브를 내년부터는 없애기로 결정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일자리 숫자만 늘리자는 식의 정책은 곤란하다. 통계청의 고용통계가 나올 때마다 취업자 수가 몇 명 늘었는지에만 관심을 보이는 작금의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풍토가 고용의무 인센티브 같은 시행착오를 부른다. 일자리 전쟁이라지만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 한국에는 일자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가급적 양질의 일자리를 늘린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 세금을 투입해서 기껏 만들어 놓은 일자리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필시 질이 낮은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일자리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단지 일자리 숫자를 늘렸다는 생색을 내려고 구조조정이 필요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쏟아붓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됐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속담을 잊지 말자.
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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