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6
“오늘의 코인(가상화폐), 최초의 그린 에너지 코인. 비트코인보다 400배 적은 에너지 소모…가장 저평가된 코인.”
지난해 말 사이버 보안업계의 거물인 존 맥아피 MGT캐피털 최고경영자가 이런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 그러자 몇 년째 바닥을 기던 해당 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이 코인을 오랫동안 채굴해온 지인은 뜻밖의 성탄절 선물을 받았다. 거액의 평가금액을 맛본 지인은 코인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요즘엔 하락세여서 차익을 실현하는 게 어떠냐고 권해 봤지만 그는 더 큰 차익을 기대하면서 필자의 조언을 귓등으로 흘리고 있다.
가상화폐 열기가 뜨겁다. 가상화폐를 한몫 잡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 나갈 미래 혁신기술로 보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투기를 하고 후자는 투자를 한다. 어느 쪽이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버블이 생겨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나 18세기 미시시피사, 남해회사 버블이 그랬다. 당시 금융 중심지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에 신종 튤립이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구근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 튤립은 번식시키기 힘들었다. 품귀현상이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 때마침 도입된 옵션 거래로 튤립 구근을 사고파는 권리가 매매되면서 거품이 더 커졌다. 미시시피사는 프랑스 식민 시절 북미대륙 미시시피 지역의 개발·교역권이 수익의 원천이었다.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속출하자 너도나도 주식거래소로 몰려갔다. 영국 남해회사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의 무역독점권을 보유한 회사였지만 속은 껍데기였다. 스페인이 해상봉쇄에 나서면서 무역업 자체가 이뤄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남해회사는 새로운 투자자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로 한동안 주가를 끌어올렸다. 어느 시점에 사람들이 튤립 구근을 팔기 시작하자 시세는 폭락했다. 미시시피와 남미 지역 사업이 신통치 않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은 미시시피사와 남해회사 주식을 투매했다. 거품이 터졌다.
가상화폐 버블은 이전 버블들과는 다를까. 넷스케이프 공동설립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다르다고 단언한다. 그는 2014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1975년이 PC의 해, 1993년 인터넷의 해였다면 2014년은 비트코인의 해”라면서 PC나 인터넷도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대다수가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이 PC와 인터넷처럼 상용화된다면 비트코인은 살아남을 것이다. 이런 추정은 희귀한 튤립 구근이 관상용을 넘어서 수출 상품이 됐다면, 남해회사의 식민지 무역이 번성했다면, 미시시피 개발에 나섰던 사람들이 금광이라도 발견했다면 버블은 투자자나 투기꾼에게 이익이 됐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는 이치와 같다.
새로운 기술은 버블을 만들어낸다. 버블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버블이 신기술 발전과정에서 동력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 기축통화라는 달러화에도 거품이 끼어 있다. 그 거품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달러화는 건재하다.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 국방력 등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신봉자들은 가상화폐가 블록체인이라는 혁신기술을 동력으로 삼아서 더욱 번성해 나갈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달러 패권에 맞설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믿음이 가상화폐 버블을 지속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비트코인은 내재적 가치가 전혀 없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신뢰가 사라지면 가치가 0으로 폭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 교수)고 경고한다. 미국이 달러화 패권을 지키기 위해 비트코인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우리 정부는 후자의 입장에서 가상화폐를 옥죄고 있지만 가상화폐 신봉자들은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다. 디지털로 호흡하는 이들에게는 국경도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정부가 뭐라 하든 가상화폐 리듬에 맞춰 춤을 출 것이다. 음악은 지속될 수도, 어느 순간 느닷없이 멈출 수도 있다. 그건 시장에서 결정된다. 결정권은 정부가 갖고 있지 않다. 정부가 좌지우지해서도 안 된다. 다만 가상화폐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은 버블의 역사가 꾸준히 입증해온 한 가지 사실만은 명심해야 한다. 음악이 멈추면 잔치도 끝난다.
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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