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선의로 시작된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세일즈 앤드 리스백’(sales and lease back) 정책이 그럴 것 같다. 이 제도는 대출로 집을 샀다가 생계가 곤란해진 ‘하우스푸어’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주택을 매입한 뒤 월세나 전세로 재임대해서 하우스푸어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새해 예산안에 1000억원을 잡아놨다. 국민의 세금이 민간주택 소유주에게 투입되는 것이다. 이는 공공재인 임대주택 건설이나 무주택자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누구나 부동산에 투자(투기)할 때는 부지불식간에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에 따른다. 설사 자신이 바보처럼 실제 가치보다 비싼 값을 주고 집을 샀더라도 나중에 누군가 더 비싼 값에 사주길 바란다. 집값이 상승하는 국면에선 이 이론이 잘 적용된다. 금리 인상이나 실직 등으로 빚 부담이 커져도 ‘더 큰 바보’가 나타나서 곤란한 상황을 해소시켜 준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는 시점에선 상투를 잡은 ‘마지막 바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리스크가 없다면 누구나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나설 것이다. 시장이 돌아가는 단순하지만 엄중한 원칙이다.  

문재인정부의 세일즈 앤드 리스백 정책은 이 원칙에 배치된다. 정부가 투자 실패를 보상해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왜 정부가 ‘마지막 바보’ 역할을 맡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문재인정부가 이 정책에 투입하겠다는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자의 주거복지에 써야 할 공적자금이다. 이 돈으로 주택 소유주를 지원하는 정책은 공정한가. 향후 금리 인상기에 하우스푸어가 더 늘어나면 한정된 예산을 누구에게 먼저 투입할 것인가. 매입가 책정도 쉽지 않은 일이다. 형평성 시비도 피할 수 없다. 정부도 이런 부담감 때문인지 하우스푸어 주택을 채권자인 시중은행이 직접 매입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소유주의 책임을 정부가 떠맡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제 그 책임을 애꿎은 시중은행에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다. 원래대로 정부가 책임지든지 정책 자체를 폐기하는 게 옳다.  

우리보다 앞서 하우스푸어 지원 논란을 겪은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집권 초인 2009년 2월 ‘주택소유안정화계획’(Homeowners Affordability and Stable Plan)을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집값이 대출금 아래로 내려간 ‘깡통주택’ 소유주를 구제하는 조치였다. 집을 압류당할 처지에 놓인 수백만명이 구제 대상에 올랐다. 오바마 정부는 수백억 달러의 회생자금을 투입해 가계부채 일부를 조정해 줬다. ‘깡통주택’ 소유주 가운데는 투기꾼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대출의 덫에 걸린 실소유주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기 전만 해도 부동산 투자로 한몫 챙겼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던 시절이었다. 금융기관은 소득이 없거나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출 상품을 팔았다. 이런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금융위기를 불렀다. 뱅크런이 일어나자 곳곳에서 은행들이 무너졌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깡통주택 소유주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미 정부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를 투입했다.  

그러자 한쪽에선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금융기관을 내가 낸 세금으로 구제하지 말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금융기관만 살리려는 재무부 관료들에 맞서 집을 차압당할 위기에 놓인 주택 소유주들도 구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 반대쪽에선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세금으로 지원하지 말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오바마 정부의 주택소유안정화계획은 선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지만 누군가는 이 조치에 분개했다. CNBC의 편집장인 릭 샌텔리가 “정부가 무책임한 사람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려 한다”면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을 임기 내내 괴롭힌 ‘티 파티’(Tea Party) 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야당인 공화당은 티 파티 세력의 지원으로 이듬해 중간선거에서 압승했다. 명분도 실효성도 약한 정책 하나가 정권의 토대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남규 경제부장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