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그런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다. 사람들은 투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절대권력을 만들어냈다. 절대권력의 보호를 받는 대신 그 권력에 복종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홉스는 국가권력의 기원을 이런 논리로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절대권력에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서에 등장하는 바다괴물이다. 홉스가 활동했던 17세기의 영국은 왕권이 약화되면서 내전이 빈발했다. 내전은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배경이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리바이어던이 귀환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인을 비롯한 미국의 엘리트 기득권층이 미국인을 도탄에 빠뜨렸다면서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자신이 워싱턴의 오물을 일소하겠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기득권층의 탐욕을 제어해 주길 바랐다. 17세기 영국과 21세기 미국은 시대를 넘어선 공통점이 있다. 기득권층의 탐욕과 민초들의 고통,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을 바라는 열망 등이다. 미국 공화당이 지난 25일 내놓은 성탄절 성명은 ‘트럼프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대변한 것이었다. “2000년 전 인류 구원의 약속을 위해 구세주가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이 있었다. 동방박사가 그날 밤 구세주를 영접했듯이 이번 성탄절도 ‘새로운 왕’(New King)의 복음을 예고하고 있다.”
조남규 국제부장 |
2016년의 미국은 포퓰리스트가 등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워싱턴 정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부와 소득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졌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인종 갈등과 테러는 미국인의 안전을 위협했다. 그때 성공신화와 쇼맨십, 국수주의로 무장한 트럼프가 나타나 미국인을 열광시켰다. 포퓰리즘은 구체제를 개혁하는 순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자칫 국수주의와 독재로 흐를 위험성도 있다.
포퓰리즘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내곤 한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백인 우월주의를 은근히 부추기며 소수인종과 여성, 무슬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더 불편한 진실은 포퓰리스트가 권력을 장악한 뒤 지지자를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차기 정부의 주요 직책에 내정한 월가 출신 인사나 억만장자 후원자들은 대선 캠페인 기간 트럼프가 목청 높여 성토했던 ‘돈 정치’의 주범들이다.
군주제를 옹호한 홉스였지만 절대권력의 의무는 ‘좋은 통치’라는 말도 했다. 통치행위가 사람들에게 손상을 입힐 경우 이는 자연법과 신법(神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할 위기에 놓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트럼프 당선자는 물론이고 한국의 차기 대선주자들도 홉스의 경고를 마음속에 새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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