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으로 시장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속출하자 재정을 활용한 수요 창출을 치유책으로 제시했다. 이후 그의 유효수요 창출 이론은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들의 단골 처방전으로 활용됐다. 국가가 재정이라는 마중물을 부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새로운 수요가 창출돼서 침체에 빠진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실제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는 있는 것으로 입증되자, 각국 정부는 수시로 케인스 처방전을 꺼내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J노믹스)도 그 뿌리는 케인스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바마정부가 의회에 보낸 1호 법안이 경기부양법안이었다. 대량 실업으로 소비할 여력이 없는 국민 대신 정부가 돈을 풀어서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가 돌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미국판 추가경정예산안이었다. 야당인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지출은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고 증가 일로인 재정적자만 키운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와 집권 민주당은 부양정책을 밀어붙여 집권 8년 동안 소방관과 경찰관, 교사 같은 공공 일자리를 늘렸다. 소득·자산 양극화 해소를 통한 중산층 복원,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회복이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국가 부채는 늘었지만 경기는 살아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에 육박했던 실업률은 지난달 16년 만에 최저치인 4.3%까지 떨어졌다. 


조남규 경제부장

J노믹스도 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퀀텀점프(대약진) 시키려면 구조개혁이라는 쓴 약을 피해선 안 된다. 미국의 경기 회복은 오바마의 재정투입에 기업가의 혁신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성장 지체병에 걸려있던 영국과 독일은 구조개혁 수술을 통해 회생했다. 친노동자 정당인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구조개혁법안 통과에 총리직을 거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치감각이 무뎌서 노동개혁을 밀어붙인 것이 아니다. 그 여파로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권을 내줘야 했지만 독일은 살아났다. 국익을 당리당략에 우선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경제를 살려내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들 선진국의 구조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수십년 동안 촘촘히 구축해온 사회안전망이었다. 일자리 상실이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에서는 구조개혁의 진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산·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타협을 이끌어 내기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거, 보육 등 국민의 기본적 복지 수준을 높이고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J노믹스의 지향점은 과녁을 제대로 겨냥한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비전 2030’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로드맵이었다. 이 로드맵이 폐기되지 않고 이명박정부로 계승됐다면 박근혜정부의 구조개혁은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구조개혁 과업은 ‘비전2030’을 제시했던 정부의 계승자에게로 넘어갔다. 

조남규 경제부장

 

*아래는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이 2017년 9월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를 인터뷰한 내용.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유럽의 병자'라 불리던 독일에서 노동 및 연금·복지 개혁을 감행해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만든 인물이다. 인기 없고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한 대가로 슈뢰더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떠났다. 지난 8일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와 기업 다 개혁에 반발했다. 하지만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의 결과를 보면 '어젠다 2010' 개혁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500만명이 넘던 독일 실업자는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실업률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 포퓰리즘이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 슈뢰더는 "실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근원이라면 정치인들이 이 불안을 진지하게 성찰해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잃어버린 일자리를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할 방안을 강구하고, 평생 교육의 기회를 넓혀 재취업 기회도 적극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중도 좌파 정당인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집권하던 당시(1998~2005년)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또는 제로 성장이 이어졌다. 독일 통일의 반짝 호황은 사라지고 막대한 통일 비용, 5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의 누적된 복지 부담이 경제를 짓눌렀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혁신, 성장, 일, 지속 가능성'이라는 표제의 '어젠다 2010' 개혁안을 발표했다. 50년간 손보지 않은 복지에 메스를 가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정책이었다. 해고를 쉽게 하고, 32개월이던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12개월로 줄이고, 연금 수령 시기도 늦췄다. 노조는 슈뢰더를 '사회 부적응 자폭꾼'이라 공격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개혁을 밀고 나갔다.

―사민당의 전통 지지층이 노동자 계층인데 지지 기반을 무너뜨릴 노동 개혁을 한 이유가 뭔가.

"독일 실업자가 500만명에 육박했다. 사회 안전망도 위협받았다.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는 재정이 감당할 수준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재정은 교육과 R&D(연구·개발)에도 투입돼야 하는 돈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타파해서 더 유연하게 만들고, 사회보장 중에서도 특히 연금과 실업수당을 개혁해야 한다고 봤다. 네덜란드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했지만 독일에서는 노사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그래서 정부 주도 개혁에 나섰다.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개혁에 노조와 기업 다 반발했다. 노조는 개혁이 과하다 했고, 기업은 개혁이 부족하다 했다. 오늘날 결과가 증명하듯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 독일은 개혁으로 유럽 내 다른 어떤 국가와도 큰 차이를 갖는 위치에 올라가 있다."

―집권당 내에서도 반대가 있지 않았나. 노조는 어떻게 설득했나.

"독일 의회는 절반만 넘으면 된다. 집권당은 어떤 개혁 법안도 가능하다. 당시 적녹 연정(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이었는데 연정 파트너라고 무조건 '예스'는 아니다. 녹색당도, 사민당 내부도 설득해야 했다. 사민당 지역별 콘퍼런스를 비롯해 수많은 회합에서 '어젠다 2010'을 몇 시간씩 설명했다. 노조도 설득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이념적으로 교조화되어 설득이 쉽지 않았다. 나를 향해 격렬한 시위도 벌였다. 노조와의 대화에서 '이 개혁은 결국 관철될 것이다. 이것으로 상황 끝(더 이상 토론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 후로 내 별명이 '상황 끝 총리(Basta Kanzler·바스타 칸츨러)'가 됐다. 긍정적 성과가 나타나면서 노조 시위도 줄었지만 그렇다고 노조가 '총리 말이 옳았다'고 대놓고 인정하진 않는다."

 
―어려운 개혁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해보자. '우리나라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90%가 응답한다. 막상 개혁으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90%가 반대로 돌아선다. 독일이나 한국처럼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민주사회에서 국민에게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개혁 결정은 오늘 내려야 하는데, 효과는 최소한 2~3년 지나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 사이에 선거가 있으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국민은 당장 드러나는 부정적 측면만 보지 앞으로의 긍정적 효과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 지도자라면 반드시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어떤 정치인도 선거에 패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직책을 잃어버릴 위험 부담도 감내하고 개혁을 추진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총선 패배로 개혁을 후회하지 않았나.

"안타깝게도 내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부터 개혁 효과가 나타났다. 후임자 메르켈 총리는 내가 한 개혁의 긍정적 과실을 수확한 셈이다. 메르켈 총리도 이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을 보면 '어젠다 2010'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차세대가 미래에 평가내릴 것을 생각한다면 개혁의 성과를 알기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제3의 길' '신(新)중도'를 선언했다. 왜 좌파 정당의 노선 변화를 시도했나.

"유럽 중도 좌파 정당들은 '분배를 통한 정의 실현'에 역점을 뒀다. 토니 블레어와 나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경제가 성장해야 그에 기초해 분배도 할 수 있다고 봤다. 독일 사민당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좌파 성향이 더 강했고 그런 변화가 없었다. 사회당 출신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노조와 국민의 반발을 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개혁을 못했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지금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한다. 개혁 여부가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 경제의 차이를 가져왔다."

―한국 정부는 독일을 모델로 탈원전을 추진한다. 당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짓던 원전도 공사 중단한 적 있나.

"그건 없었다. 우리는 원전 건설을 신규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에너지 대기업들과 토론을 통해 어떤 시점에 탈원전을 할 것인지 합의를 이룬 뒤 법안을 마련했다. 기업들은 40년이 필요하다고 했고, 연정 파트너 녹색당은 25년을 주장했다. 그 중간쯤인 2032년에 원전을 통한 마지막 전력 생산을 하기로 합의했다. 탈원전을 몇년 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누구도 단언 못한다. 독일은 그 정도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기에 시한을 그리 정한 것이다. 메르켈 정부에서 탈원전 법안을 무효화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재추진했다. 그런데 2032년이 아니라 2022년으로 앞당겼다. 이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 너무 촉박하다. 탈원전 시한을 정할 때는 대체 에너지원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독일은 햇빛이 많지 않아 태양광은 충분치 않았고 풍력에서 특히 세계적으로 앞서나가게 됐다."

―에너지 기업과 합의는 누가 끌어냈나.

"내가 직접 몇년에 걸쳐 토론했다. 기업과 합의는 2002년 성사됐다. 정부가 연방 하원의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을 그냥 통과시켜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탈원전은 정부 의지뿐 아니라 에너지 기업도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적절한 에너지 대안이 있어야만 합의도 이뤄질 수 있다. 이해 당사자를 참여시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과정도 힘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일 하라고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시대 흐름에 맞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협상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017년 9월15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 내용.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고용의 안정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맞교환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김 부총리는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본지와 인터뷰에서 "(저성장에 빠진)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며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같이 확보하는 '한국형 고용 안정·유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성과연봉제 폐지 같은 친(親)노동 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경제부총리가 노동시장 구조 변화라는 새 화두를 던진 것이다.

다만 김 부총리는 고용 안전망 강화를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고용 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일자리를 잃을 경우 곧바로 절벽으로 떨어진다. 고용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논의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직전 평균 임금(월급)의 최대 50%를 최장 8개월간 받을 수 있다. 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실직 전 월급의 65%를 최장 15개월간 지급하고 있다.

집값 안정 대책으로 거론되는 보유세 인상과 관련, 김 부총리는 "현재로는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과세나 보유세·거래세 비중 조정 같은 이슈는 곧 구성될 조세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내년 상황을 보면서 인상 속도와 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결정하겠다. 그때는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공약에 '문자 그대로(literally)' 구속받지 않고 신축적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아래는 한국경제 주용석 기자가 박승 전 총재를 인터뷰해 2017년 9월25일자에 보도한 기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81)는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이던 ‘국민성장’에 합류하면서 자신을 ‘중도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좌우를 넘나든다. 과거 보수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질타하고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면서도 진보 정부가 꺼리는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1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박 전 총재를 만났다.

▷지금 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연 4~5% 성장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연 2~3%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성장 환경이 달라졌는데 보수 정부에서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로 성장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모델을 그대로 쓰면서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낙수효과 엔진이 고장났습니다. 수출은 과거처럼 우리 경제를 끌고 갈 힘이 없습니다. 대기업이 국내 투자도 잘 안 하고 설령 투자를 해도 고용이 거의 안 늘어요.” 

▷그래서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는 건가요.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측면의 성장 엔진입니다.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민간 소비를 늘려주는 겁니다. 과거처럼 선(先)성장, 후(後)복지가 아니라 성장·복지 병행 정책으로 가는 거예요. 이것이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인데,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생산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공급 측면의 성장 엔진이 필요한데, 그걸 위해선 생산성 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개혁, 규제개혁을 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이 노동계인데, 노동개혁이 잘 될까요.

박승 전 총재가 대학생 시절 쓴 일기를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총재는 자신의 일기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동개혁을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후) 문 대통령에게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노동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국은 노조가 꼭 필요한 영세 사업장에는 노조가 없고, 노조가 없어도 되는 고임금 사업장에는 강성노조가 있어서 노동 기득권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가 노동 여건을 개선하고 복지를 늘려야 하지만 동시에 노조도 산업 평화를 위해 불합리한 투쟁을 자제해야 합니다. 파업 없는 노사 관계를 위해 노사분규 중재기구를 둬 파업 전에 반드시 이 기구를 거치도록 하고 중재기구의 반대에도 파업하려면 조합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규제개혁도 속도가 더딥니다. 

“서비스 규제 개혁안은 여야가 다 좋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빼고라도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규제개혁이 절대 필요합니다. 드론도, 빅데이터도, 인터넷뱅크도 규제가 풀려야 제대로 작동을 할 텐데 참 답답해요.”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최저임금이 최저생계비도 보장 못 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이나 산업, 영세 사업장이 견뎌낼 수 있는 범위를 감안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목표를 정해서 ‘언제까지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상률이 적당할까요. 

“아무 계산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할 순 없지만 최저임금을 올리고 정부가 (인상분 일부를) 보전해주는 건 잘못이라고 봐요.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건 비정상입니다.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모를까, 결국 세금으로 주는 건데 지속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정부가 보전해주지 않아도 되는 범위만큼만 올려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서 ‘서민 증세는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지 공약을 하면서 마치 증세는 없는 것처럼 하는 건 잘못입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복지를 주는 것만 약속할 게 아니라 고통 감내도 동시에 요구해야 합니다. 증세를 안 하면 결국 재정적자를 키우거나 복지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어요. 정부는 ‘5년간 이러이러한 복지를 주겠다. 대신 세금은 얼마를, 어떻게 걷겠다’는 로드맵을 내놔야 합니다.” 

▷증세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합니까. 

“중장기적으로 볼 때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그러고도 모자라면 부가가치세 순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득세는 고소득자가 더 부담하더라도 적어도 중산층 이상은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법인세도 그렇습니다.”

▷법인세는 세계적으로 내리는 추세입니다.

“다른 나라는 법인세가 높기 때문에 낮추는 겁니다.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30%가 넘습니다. 우리는 법인세 명목세율이 22%지만 실효세율은 (각종 비과세·감면 때문에) 10%대 중반 아닙니까. 지금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성 자산만 200조원입니다. 법인세 인상은 단순히 복지 재원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기업이 안 하는 고용과 투자를 대신 하고 일자리를 늘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해방 이후 지난 정부까지 모두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으로 봤습니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물가가 30배 정도 올랐는데 땅값은 3000배 뛰었습니다. 최근에도 경제성장률보다 집값 상승률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 그 결과는 ‘빈곤화 성장’입니다. 경제는 성장했는데 삶의 질은 갈수록 후퇴하는 거예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고 (생산) 원가를 상승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키죠. 그래서 부동산 경기 부양은 일시적으로 남고, 영원히 밑지는 정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이 아니라 국민생활 안정 수단으로 봐야 합니다. 부동산을 재산 형성 수단에서 제거하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 부동산 값을 떨어뜨리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제 주장은 ‘장기적으로 부동산 값을 현상 유지하면서 가계 소득을 계속 올려주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강조하는 겁니다. 한국은 보유세가 낮습니다. 집값 대비 보유세가 미국이 1.5%, 일본이 1%인데 한국은 0.15%입니다.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는 낮춰야 합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한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정책금리가 2년쯤 뒤에는 연 3% 수준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당장 금리를 안 올린다고 해도 내년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우리 경제 성장이 정상화될 때 적정금리는 연 3% 내외라고 봅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대학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장관, 한은 총재를 모두 지낸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2012년 대선과 올해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도왔다. 이번 대선에선 문 후보의 개인 싱크탱크이던 ‘국민성장’의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는 ‘흙수저’다. 논밭에서 일하고 땔감을 해가며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 시절에도 농사를 짓다가 시험 때만 서울로 올라가 공부한 적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어릴 적 논에서 일할 때 농민들의 땀 냄새, 흙냄새, 푸른 모 냄새가 어우러진 냄새가 내 코에 입력돼 70년이 지나서도 머리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 냄새를 떠올리며 자신의 호를 ‘푸른 벼’라는 의미의 청도(靑稻)로 지었다.
 
한은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으며 교수, 장관 등을 거쳐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2006년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한은 총재를 지냈다.

△1936년 전북 김제 △이리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1988년) △건설부 장관(1988~1989년) △한국경제학회장(1999~2000년) △한은 총재(2002~2006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2016~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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