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 일행이 3박4일의 「역사적」 방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28일 밤. 한국 정부와 언론의 촉각은 페리 일행에게로 쏠렸다. 분단 이후 북한에 간 최고위급 미국 인사,미 대통령 특사 자격 등의 수식어를 넘어,페리 조정관의 방북 성과는 환반도의 장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이날 오후 주한 미대사관에 페리-김정일 면담 여부 등 주요 내용을 사전통보해 줄 것을 요청했고 언론도 비상대기했다. 그러나 방북 결과에 대해 다음날 오전까지 미국으로 부터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29일 한-미-일 3자협의회 때 종합 설명할텐데뭘 미리 알려하느냐는 투였다는 것이다. 결국 외교부 당국자들은 자정 넘어서까지 미국의 입만 바라보다 귀가해야 했다. 한 당국자는 『미국은 김정일 면담 여부만 단편적으로 공개될 경우 방북 성과가 왜곡될 수 있어 종합적으로 설명할 때까지 비공개하려는 것 같다』고 선의로 해석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후 이 당국자의 선의는 무참히 배반당했다. 한국 시각으로 29일 새벽 2시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이 김정일 면담 무산을 기자들에게 공식 확인한 것이다. 페리 일행과 미 대사관은 『본국에 보고하기 전 한국 정부에 먼저 말해줄 수 는 없다』고 했으나,29일 페리 조정관 스스로 평양에서 돌아오자마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윌리엄 코헨 국방장관 등에게 방북 결과를 브리핑했다고 밝혔다.

28일 밤의 상황은 미국의 정보독점 차원을 넘어 대북 협상이 북-미 구도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을 미국은 알아야 할 것 같다.<조남규 정치부기자> 1999년 5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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