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드아일랜드주 결혼협회(RIM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로드아일랜드 주민 중 59%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률은 2006년 동일한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드아일랜드주는 타 주에서 결혼한 동성 커플도 법적 부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4일 미 연방 법원이 캘리포니아주의 동성결혼 금지 조치를 위헌이라고 판결한 이후 로드아일랜드주를 비롯한 미 전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미 전역은 동성결혼 합법화를 둘러싼 전쟁터가 되고 있다. 보수 진보 세력 간에 낙태 전쟁 이후 최대의 이슈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동성결혼 논쟁 진앙,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동성결혼 허용 문제를 놓고 찬반 양측의 승부가 여러 번 엇갈렸다.

2000년 주민들이 투표로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규정한 ‘연방 결혼보호법’을 채택했을 당시만 해도 동성결혼 반대론자들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성결혼 지지자인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2004년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 인증서를 발급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의 공론화에 나섰다.

이후 주 대법원은 2008년 5월 동성애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주 정부의 동성결혼 금지 조치를 뒤집는 판결로 동성결혼 찬반 진영의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켰다. 주 정부는 이 판결에 따라 그해 6월부터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했다.

그러자 동성결혼 반대 진영은 11월 미 대선 투표와 함께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 헌법 수정안(주민 발의 8·Proposition 8)을 주민 투표에 부쳐 52%의 찬성으로 수정안을 채택했다.

이로써 동성결혼이 다시 금지됐다. 주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이 같은 헌법 수정안을 지지하는 판결로 찬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수정안 발효 이전에 결혼한 동성 커플들의 법적 부부 관계는 예외로 인정했다.

◆동성결혼 판결

주민발의 8호는 미 연방 샌프란시스코 법원의 본 워커 판사에 의해 번복됐다. 워커 판사는 지난 4일 “주민발의 8호는 동성 커플인 원고들의 헌법상 평등 보호와 공형한 절차를 밟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동성결혼 반대 진영의 불복으로 항소심으로 넘겨져 법적 공방 2라운드가 시작됐다. 하지만 1심 판결만으로도 그 의미는 작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동성결혼 반대 진영의 전략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반대 진영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아이오와주 등에서 캘리포니아의 주민 발의 8호와 같은 방식의 주민 투표를 밀어붙이려 했으나 연방 법원이 주민 발의 8호 자체를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이 계획이 무산될 지경에 놓였다. 1심 판결이 미 연방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지난 십여년간 진행된 동성결혼 합법화 논쟁은 획기적 전기를 맞게 된다. 지난 2월 ABC 방송-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40세 이하 연령층에서는 10명 중 6명꼴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동성결혼 반대 진영의 맞불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5개 주와 워싱턴 DC를 제외한 나머지 주들은 대부분이 동성결혼을 금지한 ‘연방 결혼보호법’을 채택하고 있다. 31개 주는 아예 주민투표로 동성결혼 금지를 주 헌법에 못 박았다. 이런 확고한 법적 기반 위에서 동성결혼 반대 진영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주류를 점하고 있다.

동성결혼 반대파가 캘리포니아주 주민발의 8호를 무효화한 미 연방 샌프란시스코 판결에 분개하는 것은 주민들의 총의가 판결 하나로 부인됐기 때문이다. 동성결혼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결혼을위한조직’의 브라이언 브라운 국장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심지어는 동성결혼 찬성론자 중에서도 주민의 52%가 찬성한 조치를 판사가 명령으로 뒤집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주민들이 과반수로 결정한 조치를 번복하려면 투표나 입법을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결혼 실태, 주마다 제각각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실태는 50개 주가 모두 다르다. 미국인에게 동성결혼 문제는 종교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가 충돌하는 복합적 갈등 이슈이기 때문이다. 경로는 다르지만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는 매사추세츠, 아이오와, 코네티컷, 버몬트, 뉴 햄프셔 등 5개 주다. 올 초 워싱턴 DC가 이들 5개 주의 동성결혼 합법화 흐름에 동참했다.

뉴욕주 등은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지만 이미 다른 주에서 법적 부부가 된 동성 커플을 부부로 인정해 준다. 동성결혼은 금지됐지만 동성 커플을 ‘시민 결합’(civil union)으로 보거나 ‘파트너’ 형태로 간주해서 법적 부부들에게 제공되는 혜택의 일부나 전부를 제공하는 주들도 있다.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 워싱턴, 오리건, 네바다, 위스콘신, 메인, 로드아일랜드, 뉴저지, 하와이주 등이다.

미국의 부부들은 사회보장과 세금, 의료보험 등 각종 분야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동성애자들이 부부가 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면에는 이런 경제적 요인도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성결혼 합법화 논쟁은 코앞에 닥친 미국 중간선거 후보자들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미 연방 샌프란시스코 법원 판결로 촉발된 동성결혼 논란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저울질하며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판결 직후 “동성애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 연방 차원에서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법원이 동성결혼 금지 조치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는 했으나 연방법상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규정돼 있는 현실을 고려한 절충 입장이랄 수 있다.

 데이비드 엑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MSNBC에 출연, “오바마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결혼 문제는 각 주가 판단해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며 캘리포니아주 주민들이 투표로 결정한 동성결혼 금지조치를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한층 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동성결혼 이슈 자체를 쟁점화하는 것이 선거 전략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미주리주 켄자스시티에서 열린 공화당 전국위(RNC) 회의는 중간선거 이슈를 동성결혼이나 이민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으로 확대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라는 입장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에서는 전폭적인 지지 입장을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동성결혼 합법화 진영에 가담했다가 부동층 유권자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결혼 찬반 진영은 모두 이번 중간선거를 동성결혼 찬반 대리전으로 삼을 태세여서 일선 선거현장에서는 당 지도부의 전략과는 무관하게 동성결혼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동성결혼 지지 정치행동위원회(PAC)는 오는 중간선거에서 동성결혼 반대 후보자에 대한 낙선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 부지사직에 출마한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 캠프에는 동성결혼 지지자들이 몰려가 앞다퉈 선거운동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대로 동성결혼 반대 진영은 뉴섬 후보 같은 동성결혼 찬성후보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선거 전략가인 로버트 쉬럼은 “미국인들의 인식이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다소 진보화한 만큼 동성결혼 문제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문화전쟁 양상을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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