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분야 고급 인재들 “美는 연구천국 최대 장점”
독보적 기술·美특허 취득
매년 수백명씩 현지 정착

한국인 최초로 미국 하버드 대학 종신교수가 된 박홍근(45) 교수는 한국인 노벨과학상에 근접한 과학자들 중 한 명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수석 입학한 뒤 서울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과학 영재다. 서울대 졸업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9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박 교수는 자신이 개척한 분자전자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며 화학과 물리학, 의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학문 연구로 하버드에서도 초고속 승진을 거듭, 교수로 임용된 지 5년 만에 종신교수가 됐다.

그는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았을까. 박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미국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한국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연구 투자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박 교수를 붙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천재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미국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가 “2010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어야 마땅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던 김필립(44)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나 생물물리학(Biophysics) 분야의 선두 주자인 하택집(44) 미 일리노이대 교수도 미국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과학 인재들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물리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 교수는 2005년 미국 과학계 최대 규모 연구비인 ‘하워드 휴즈 그랜트’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조건 없는 연구비 덕에 실용화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네티컷대의 주경선(49) 교수는 올해로 미국 생활 26년째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핵물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주 교수는 미국 과학재단(NSF)에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착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유학생 대부분은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에 와서 공부한다”면서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일자리가 생기면 갈 생각이었으나 코네티컷대 교수 기회가 먼저 주어져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주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받고 유학길에 오른 K씨(49)는 현재 미국 서부의 실리콘 밸리 인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K씨는 박사 후 연구원 기간에 유수의 한국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아들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다 미국 정착을 결심한 케이스다. 그는 “한국 유학생들 상당수가 자녀의 교육 문제를 걱정하다가 한국행을 포기하고 있다”면서 “해외 인재들을 끌어들이려면 대학뿐 아니라 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 시스템 전반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체부자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열이면 열 모두 미국에서 먼저 일자리를 찾는다고 그는 전했다.

◆매년 수백 명의 천재를 빼앗기는 한국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L씨(34)는 최근 취업 이민 1순위 자격으로 미국에 이민했다.

L씨는 독보적인 폐수 처리 방식을 개발, 외국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미국 특허를 따냈다. 미국은 L씨를 ‘특수한 능력 소유자’로 인정, 영주권을 줬다. 미국은 취업 이민 1순위(EB-1)에 해당하는 사람을 ‘우선 취업인’(priority workers)으로 분류한다. 자격 조건이 엄격하지만 조건을 갖춘다면 이민 신청이 신속하게 처리된다. 미국이 2010년 한 해 동안 EB-1 자격으로 영주권을 부여한 외국인 인재는 4만1055명에 달한다. 이 중엔 한국인도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재미 과학계는 추산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인재들을 흡수하는 또 다른 제도는 ‘노동허가 면제’(NIW) 제도다. 이는 공적인 분야에서 국가적 규모의 일을 수행하면서 미국의 국가 이익에 중대한 기여를 한 외국인을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특별히 배려하는 제도이다. 주로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 정부 연구기관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유학생들이 수혜 대상이다. 이민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최근엔 MIT에서 유학한 뒤 미 공군연구소에서 탄도 미사일 궤도 추적 프로그램을 개발한 Y씨와 쥐를 이용한 암세포 연구 분야에서 획기적 업적을 세운 K씨 등이 이 제도를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 이들은 필수 서류인 미 연방공무원 3명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냈다. 미 정부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추천서를 발급하는 것이다.

◆한국, 인재 유치전략 없다

대학과 민간 기업의 해외 인재 유치 노력 등에 힘입어 해외 인재들이 일부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으나 가뭄에 콩 나듯 한 실정이다.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는 올 3월부터 2년간 모교인 서울대 초빙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물리학과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얼마 전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워싱턴을 순회하며 미국의 한국 인재들을 선발했다. 주경선 교수는 “한국 대학의 연구 여건이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의 지원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국부다] 전종준 美 이민전문 변호사 인터뷰




“꼭 필요한 인재 이민법 걸렸다면 한사람 위한 영주권 법안 내기도”


“미국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면 세계 누구라도 영입해 미국인으로 만든다.”

전종준(사진) 미국 이민전문 변호사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민법이 만들어진 1960년대부터 해외 인재들의 미국 이민 창구인 취업 이민 1, 2순위 쿼터(할당 숫자)를 줄이지 않았다”면서 “매년 수만 명씩 유입되는 해외 인재들이 미국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해외 인재들을 견인하나.

“이민 정책이다. 취업 이민하기 위해선 고용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 인재를 대상으로 한 1순위 이민은 고용주가 없어도 된다. 과학이나 예술, 교육, 경영, 체육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이 그 대상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떠올리면 된다. 1순위 수준은 아니어도 특출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2순위에 해당된다. 1, 2순위는 심사가 엄격하기 때문에 매년 쿼터가 남아돈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독보적이지 않으면 선택되지 않는다. 수많은 박사들 중 한 명이어선 안 된다. 미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그 누구여야 한다.”

―미국은 이민 정책 외에 어떤 인재 충원 정책을 활용하고 있나.

“정말 필요한 인재인데 이민법상 부적격자인 때에는 연방 의원이 그 인재를 위해 영주권 신청 법안을 발의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왕왕 그런 사례가 있다. 유능한 인재들은 비공식적으로 영주권을 주기도 한다.”

-미국 대학에서 과학이나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사람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아이디어 차원이다. 과학 분야 해외 인재들을 미국에 남게 하자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불법 체류자 구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이민 개혁 법안의 일부이기 때문에 실제 그런 법안이 발의될지는 미지수다. 의회에서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세계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영주권 정책은 매년 바뀌나.

“상황에 따라 의회에서 정한다. 한 나라에서 전체 7%를 초과하면 더 이상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다. 인도와 중국은 매년 쿼터를 채울 정도로 미국 이민이 활발하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초일류 국가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나.

“로마 제국은 1000년이 지속됐다. 미국의 역사는 300년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중심 국가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교육과 환경 등 많은 분야에서 메리트(장점)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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