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지위 높아지고 소득 늘어…전통적 역할 뒤바뀐 가정 많아


 칼리 피오리나가 1999년 여성으론 처음으로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을 때 피오리나의 남편은 아내를 ‘내조’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피오리나 남편 프랭크의 사직은 컴퓨터 업계 첫 CEO 탄생 뉴스와 함께 장안의 화제가 됐다. 앞서 1994년 투자회사 찰스 슈워브에서 첫 여성 CEO로 돈 르포어가 임명되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그의 남편 켄 글래든이 회사 측의 사직 권고를 받아 직장을 그만둔 사실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하지만 요즘 미국에선 잘나가는 아내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안에 들어앉는 남편들의 얘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여성 CEO 18명 중에서 제록스 CEO인 우르술라 번스와 펩시코 회장 겸 CEO인 인드라 누이, 웰포인트 CEO인 안젤라 브랠리 등 7명이 ‘전업주부’ 역할을 하고 있는 남편을 두고 있다고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보도했다.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 역할이 뒤바뀐 세태는 사회 각 부문에서 목도되는 여성들의 약진 때문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여성 CEO는 1970년 단 한 명도 없었으나 2012년 1월 현재 18명으로 늘었다.



아내의 소득이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7%에서 36%로 커졌다.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30살 이하의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 남성들보다 소득이 높은 것으로 조사돼 여성의 소득 우위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질 전망이다.

내조 남편의 증가를 가져온 또 다른 원인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남성들의 실직률이 여성 실직률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여성 파워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조 남편들의 수도 대폭 늘었다. 아내 대신 5살 이하 자녀를 정기적으로 돌보는 남편의 수는 1988년 19%에서 2010년 32%로 증가한 것으로 미 인구센서스국은 집계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독려해온 린다 히르슈만 변호사는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 역전되면서 남자들은 갑자기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담당해온 가사 업무를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슈퍼 엄마의 탄생은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르포어는 가끔 자녀들이 자신의 영향을 받아서 너무 소극적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힘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직장 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 남은 아빠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대한 인식도 정반대로 하게된다. 르포어의 회상이다.
 "하루는 딸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아빠는 매일 회사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딸이 이렇게 말하더라. '바보같은 소리말아, 아빠는 집에 있는 사람이잖아"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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