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가 촉발시킨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막을 내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이라크전쟁 종식을 공시 선언했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끝나가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달부터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에 들어가 2014년까지 마무리하고 군사 지휘권 및 치안 유지권을 아프간 정부에 이양할 계획이다.
전쟁은 끝나가지만 대테러 전쟁이 남긴 후유증은 깊다.
10년에 걸친 전쟁기간에 6000명이 넘는 미군이 전사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사상자도 수십만명에 달한다. 두 전쟁에 투입된 천문학적 규모의 전비는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했다. 미 브라운 대학의 왓슨 국제관계연구소 최근 발표한 ‘전쟁 비용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4조4000억달러를 썼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2012 회계연도 총예산을 웃도는 금액이다.
백악관은 올 초 공개한 아프간전쟁 평가 전략보고서에서 “극단주의 테러 위협의 싹을 잘랐다”고 자평했지만, 9·11테러가 낳은 두 전쟁은 또 다른 테러를 부르면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알카에다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반미 테러조직이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테러 전쟁을 언급하면서 단 한 차례도 ‘승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의 악순환,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수렁 속에서 좀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는 9·11테러를 계기로 새로 씌어졌다.
미 본토가 사상 처음으로 공격당한 9·11테러 이후 미국은 달라졌다. 미국은 더 이상 국제적 현안에 개입하길 꺼리는 ‘고립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변화는 전면적이고 심층적이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9·11이 확실하게 나의 대통령직 수행 항로를 변경시켰다”고 토로했다. 부시 행정부는 미 본토 방위를 국방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공격받은 미국은 거대한 병참기지로 변했다. 모든 자원은 대테러 전쟁에 집중됐다.
9·11이 낳은 ‘부시 독트린’은 미국의 달라진 외교·안보 정책을 웅변한다.
미국은 2002년 안보정책 기조를 ‘억제와 봉쇄’에서 ‘선제공격’으로 전환했다. 선제공격 전략은 말 그대로 적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선제공격 전략의 첫 타깃이 됐다. 부시 정부는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빌미로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라크전쟁을 개시했다. 미국의 동맹관계도 재조정됐다. 미국의 편에 서지 않는 국가는 ‘미국의 적’으로 규정됐다. 9·11은 미국민들의 의식도 변화시켰다. 최근 미 브루킹스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1.6%가 미래의 가장 큰 위협으로 테러리즘을 첫손에 꼽았다. 청소년기에 9·11를 경험한 이른바 ‘9·11세대’는 미 적십자사가 행한 조사에서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고문 등 어떤 수단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미국인들은 9·11 이후 테러의 공포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최근 미 동북부를 강타했던 지진을 테러로 오해했을 정도다. 9·11테러 현장인 뉴욕에서는 최소 1만명의 시민, 경찰, 소방관 등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테러 경고 방송과 검색대 통과는 미국인들에게 일상사가 됐다. 지난 5월 미국에서 가나로 향하던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보잉 767 여객기 내에서 두 승객의 사소한 다툼으로 소동이 벌어지자 F-16 전투기가 출격했다. 미국 사회의 테러 공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화다.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도 커졌다.
9·11 이후 이슬람교도에겐 테러주의자의 낙인이 찍혔다.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9·11테러 10년을 맞아 미국 내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2%는 미 정부가 이슬람교도들을 감시, 경계의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답했다. 43%는 지난 1년간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갖은 조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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