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공무원 노조 간 전쟁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공공 부문 노조원들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최근 위스콘신주가 발효시킨 반(反)노조 법안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위스콘신주 의회는 지난 10일 공무원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연금· 건강보험의 공무원 부담액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을 통과시켰다.

위스콘신주가 기치를 치켜든 이후 오하이오와 미시간, 아이오와, 인디애나 등 다른 주들도 속속 공무원 노조에 선전포고를 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정치권과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무원 노조가 졸지에 정부의 ‘공적 1호’로 전락한 것이다. 주 정부와 공무원 노조가 정면 충돌하게된 배경과 정치적 파장 등을 살펴본다.

 ◆곳간 빈 주 정부, 공무원 노조에 메스=미국 주 정부의 재정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 주의회 연합회에 따르면, 일리노이주는 2012 회계연도(2011년 10월1일∼2012년 9월30일)에만 150 억 달러 규모의 재정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체 예산의 45%에 달하는 수치다. 위스콘신주도 같은 기간 18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다른 주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처지는 비슷하다. 재정 적자의 주범은 덩치가 커진 공무원 조직 운영 비용이었다. 특히 공무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금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미 예산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예상 연금 지급액을 현가로 환산한 ‘미적립 연금채무’는 전체 채무의 25%를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 등을 기초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공무원의 급여와 연금 등을 포함한 연 평균 보상(average compensation)은 7만 달러(2009 회계연도 기준)로 민간 기업 근로자들(6만1000달러)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공공 부문 근로자 수는 늘었다. 공무원들의 ‘철 밥통’ 지위가 강화된 배경엔 공무원 노조가 자리잡고 있다. 민간 부문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1977년 23%에서 2010년 8%로 낮아졌지만 공무원의 노조 가입률은 1977년 당시 40%가 2010년에도 유지되고 있다. 연방정부 공무원 노조(AFGE)와 지방정부 공무원노조(AFSCME), 우체국직원 노조(APWU), 미 교원노조(AFT) 등이 대표적인 공무원 노조들이다. 공무원 노조는 강력한 이익 집단으로 성장, 각종 선거에서 ‘큰 정부’ 기조의 민주당을 후원하며 증세를 통한 공무원 고용 보장과 복지 증진을 추구해왔다. 재정 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주 정부가 공무원 노조를 공격 타깃으로 선정한 것은 이런 배경 속에서다.
 
공무원 노조 격파 나선 ‘티 파티’=철옹성 같은 공무원 노조에 도전장을 던진 주 정부 뒤엔 ‘티 파티’ 운동으로 대표되는 조세 저항 여론이 버티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티 파티 세력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우위의 정치 지형을 만들어냈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주 의회(상·하원 통합)는 33개에서 53개로 크게 는 반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주 의회는 52개에서 32개로 대폭 줄었다. 공화당 주지사도 24명에서 31명으로 늘었다. 민주당 우세 지역이었던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미시간, 오하이오, 아이오와 등도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공화당은 이들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던 공무원 노조 활동을 제약하려하고 있다. 대부분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주들이어서 공화당 정부는 재정적자 감축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위스콘신주도 공화당이 지난 선거에서 탈환한 지역으로 스콧 워커 주지사는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과 손 잡고 공무원 노조에 맞섰다. 재정 적자라는 동일한 문제를 놓고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일리노이주에선 공무원 조직의 거품을 빼는 대신 증세라는 해법을 선택했다. 일리노이주 의회는 연초 소득세와 법인세를 대폭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무원 노조가 민주당 의회를 움직인 결과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승리를 위해 뛰었던 조직들은 워커 주지사가 반 노조법을 발의한 직후 공무원 노조를 겨냥한 TV 광고를 내보내며 측면지원하고 있다. 공화당 전략가인 칼 로브가 설립한 ‘크로스로드 GPS’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노조 지원 발언을 소개하며 공무원 노조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친 노조 성향의 민주당을 후원하고 있다는 TV 광고를 미 전역에 내보냈다. 지난 해 공화당 후보 지원을 위해 7000만 달러를 모금했던 크로스로드 GPS는 이번에도 반 노조법 지지 확산을 위한 광고 비용으로 75만 달러를 투입했다.
 
반격 나선 공무원 노조=위스콘신주의 반(反) 공무원노조법 가결을 계기로 노동계도 반 노조법 확대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반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 지방정부 공무원 노조(AFSCME) 회장인 제랄드 메켄티는 “공공 부문 노조의 단체 협상권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멤피스 청소부들의 권리를 옹호하다 숨진 역사가 웅변하듯, 우리들이 오랜 세월 투쟁을 통해 획득한 신성한 권리”라면서 “위스콘신주의 반 노조법 채택은 워커 주지사의 오만을 넘어 미국의 기본 가치를 내팽개친 반역사적 조치”라고 분개했다. 노동계는 AFSCME를 중심으로 반 노조법을 발의한 워커 주지사와 이를 통과시킨 위스콘신주 의회 의원들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의 중산층을 복원하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단체 협상권을 강화해 평범한 근로자들이 합리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위스콘신주의 반 노조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반 노조법 추진이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미명 하에 실질적으로는 부유층의 감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여론은 반 노조법에 다소 부정적이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 등의 조사에서는 여론이 재정 적자 보다 반 노조법 시행으로 인한 실업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위스콘신주의 반노조법 제정이 2012년 대선 등을 앞두고 전통적인 지지 세력인 노조를 결집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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