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 오래 오래 사세요.”

“오래 살아서 한국을 다시 찾고 싶구나.”

지난 19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북쪽에 위치한 ‘참전용사 마을’(Armed Forces Retirement Home).


                                                 해나 킴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웬들 쉐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을 맞아 기자와 함께 참전용사 마을을 찾은 해나 킴(한국명 김한나)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웬들 쉐핀(89)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준 인연의 끈은 한국전쟁이었다. 쉐핀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참전해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2009년. 해나 킴은 쉐핀과 같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미 의회를 움직였다. 의회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를 통과시키기에 앞서 그는 연방하원 435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인연이었다. 지난해 한국전쟁 60주년 행사장에서 해나 킴을 봤다는 쉐핀은 그가 들어서자 반색하며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쉐핀은 “내 아들도 주한미군으로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했다”면서 “며느리도 한국 여성이라서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느리의 성은 김씨였는데 결혼한 뒤에 킴벌리가 됐다”면서 너털웃음을 했다. 휴게실에 모였던 다른 참전용사들도 쉐핀의 너스레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워싱턴 DC 참전용사 마을 입구. 한국전 참전용사 125명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650명의 퇴역 군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중 125명이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참전용사 마을 디렉터인 데이비드 왓킨스는 “참전용사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이 83세”라면서 “해가 갈수록 주민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마을은 조지 워싱턴대 병원 등과 계약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역전의 용사들도 세월의 흐름만은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400명을 웃돌던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수도 최근 들어 급감 추세라고 한다.

6·25전쟁 기념일이 임박하면 참전용사 마을은 한국전쟁이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한국전쟁 60주년이었던 지난해엔 온통 한국전 기념 행사와 공연 얘기로 만발했다. 당시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개최된 리틀 엔젤스 예술단 공연이 특히 감동적이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왓킨스는 “미군이 세계 여러 곳으로 파병됐지만 한국처럼 우리 같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나도 한국전 참전용사였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웃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전 참전용사 월터 킷슨은 “우리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정중하게 대접받았다”면서 “우리의 영혼을 울린 방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초청을 받은 킷슨 등 6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한동안 주민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참전용사 마을은 1851년 노병과 상이 군인들을 위한 보호 시설로 시작됐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별장이 눈에 띈다.
 

                                                                                                                        링컨 커티지


                                                                                                     링컨 대통령이 사용한 책상

‘사병들의 숙소’로 불렸던 이 건물은 링컨 대통령이 즐겨 찾으면서 ‘링컨 커티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병들의 안식처로 시작된 유래에 따라 지금도 장교들은 마을 주민이 될 수 없다. 참전용사 배우자도 입소 자격이 없어 통상 배우자와 사별한 참전용사들이 주민이 된다. 그래서일까. 참전용사 마을엔 노년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해나 킴이 작별 인사를 하자 쉐핀은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해질 무렵 참전용사 마을을 빠져나오는 기자의 마음도 무거웠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참전용사 마을 디렉터인 데이비드 왓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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