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tolerance)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 차이를 존중하고 끌어안는 힘이다.

본격적인 다문화·다민족 시대, 남북 대결의 골이 깊어지는 시점에 ‘코리안 톨레랑스’의 길을 모색해 본다.



재미 한인 사회는 2011년 벽두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미 전역의 한인타운에서는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인 지난 13일을 전후해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잇따라 개최됐다. 1903년 1월 13일 최초의 한국인 이민자 102명이 미국 땅(하와이 호놀룰루)을 밟은 이후 어느덧 한 세기가 흘렀다. 재미동포 250만 시대가 됐다. 미 연방 상·하원은 2005년 만장일치로 ‘미주 한인의 날’을 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애넌데일 지역에 형성된 한인타운. 미국 사회에 융화된 재미 동포의 현주소를 말해주듯 한국어 간판과 영어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미 버지니아주 11선거구 출신인 제리 코널리 연방 하원의원(민주)은 지난 7일 최정범 한인연합회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내용을 담은 발의문을 의회에 제출했다. 코널리 의원은 발의문에서 “페어팩스 카운티가 속한 11선거구에서 한인 사회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코널리 의원의 발의문은 한인 사회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웅변하는 사례다. 워싱턴DC 인근의 대표적 한인타운인 애넌데일과 센터빌은 모두 코널리의 선거구인 페어팩스 카운티에 속해 있다. 애넌데일과 센터빌에 각각 2만5000, 3만4000명 정도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한인 단체들에 대한 재정 지원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초기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영어·기술 교육 프로그램(한사랑종합학교)은 페어팩스 카운티의 재정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카운티는 지난해 한사랑종합학교 지원금으로만 13만 달러를 배정했다. 카운티 차원에서 한인들을 위한 세미나와 취업 박람회를 개최하고 카운티 프로그램을 한글로 홍보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와 버지니아주 정부 등은 한인 사회의 취업박람회에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인 사회가 처음부터 미국 사회의 환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재미 한인들이 1990년대 들어 애넌데일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지역은 백인들의 세상이었다. 대다수 재미 한인들은 세탁소와 식당, 당구장, 만화방 등과 같은 영세 자영업이나 배관공, 청소부 등과 같은 허드렛일에 종사했다. 황원균 전 북버지니아한인회 회장은 “당시만 해도 언어 장벽을 비롯한 문화 차이 탓에 미국 주류 사회 편입은 고사하고 미국인들과의 정상적인 소통도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런 배타적 분위기는 애넌데일 거리에 한국 간판을 단 상점이 늘고 한인 사회의 경제력이 커진 2000년대 들어서도 좀체 개선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가 2005년 애넌데일 한인타운을 조명하는 특집기사에서 “과거 백인 지역이었던 애넌데일이 한글 간판을 내단 한국 상점들이 즐비한 한인타운으로 바뀌면서 한인 사회와 백인 사회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을 정도였다.

한인 사회는 적극적으로 미국 주류 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했다. 뜻있는 교민들이 나서 애넌데일 지역을 돌며 거리 청소를 시작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은 한국어 간판을 영어 간판으로 바꿔 달았다. 각종 선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한인들의 목소리를 키웠다. 그 결과 2009년 재미 한인 2세인 마크 김 후보가 한인으론 최초로 버지니아주 하원에 입성하게 됐다. 한인들의 직종도 한국인 상대의 영세 자영업에서 교육과 의료, 부동산 등 미국인을 고객으로 하는 전문직종으로 다양하게 분화했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애넌데일 상권에 한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이 지역이 다시 번창하게 되자 미국 사회도 한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인 단체의 리더십도 영어가 자유로운 세대로 교체되면서 미국 사회와의 벽도 차츰 낮아졌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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