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싸움터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스버그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147년 전엔 북군과 남군이 미 연방의 진로를 놓고 사활을 건 전투를 벌였지만 지금은 게티스버그 국립공원 인근에 카지노를 설립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게티스버그 주민이자 개발업자인 데이비드 르뱅이 얼마 전 게티스버그 국립공원 인근 호텔에 카지노 위락 단지를 조성하겠다며 펜실베이니아주에 카지노 영업 허가권을 신청하면서 비롯됐다. 게티스버그 주민들은 두 편으로 갈려 있다. 한편은 르뱅의 지역경제 활성화 주장에 동조한다. 르뱅은 카지노 유치로 게티스버그 공원이 속한 애덤스 카운티에 연 6600만달러 상당의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고 1000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다른 한편은 카지노 설립이 남북전쟁 전사자들을 모독하고 게티스버그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7일(현지 시간) 찾은 게티스버그에서는 카지노 설립을 둘러싼 긴장감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게티스버그 공원 근처에는 ‘No Casino’(카지노 반대), ‘Pro Casino’(카지노 찬성)라고 적힌 표지판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공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태미 휴스는 “찬반 여론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어서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친구들의 의견도 찬반으로 갈려 있다”고 말했다. 찬성론자인 주민 제이 퍼디는 “남북전쟁 시대에도 군인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도박을 했다”면서 “그들은 영웅일 뿐 성인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게티스버그 칼리지 교수를 지낸 데이비드 크라우너는 “도박은 게티스 버그의 위엄이나 경건함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론을 폈다.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카지노 설립 관련 공청회에서도 찬반 양측은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영화 ‘게티스버그’를 감독한 로널드 맥스웰은 “폴란드는 카틴 숲 학살 현장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근처에 카지노 설립을 허용하지 않았다”면서 “게티스버그에 카지노를 설립하겠다는 발상은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 카지노를 설립하겠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 전역의 반대론자들은 3만명의 청원을 받아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재정난에 시달리는 애덤스 카운티는 카지노 설립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지역 내 비영리그룹인 ‘게티스버그 보존협회’도 최근 이사회를 열어 카지노 설립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게티스버그 전투가 끝나고 격전지를 찾아 남군과 북국 전사자들을 추모한 뒤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연설을 했다. 1863년 여름, 북군에 승리를 안긴 게티스버그 전투가 이번엔 어느 쪽의 승리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게티스버그=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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